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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질그릇입니다. 대략 BC 10세기 무렵 사용된 것입니다. 이 질그릇이 벼농사와 함께 일본 규슈에 전해져 야요이 문화가 시작됩니다.<국립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V, 국립광주박물관 학술총서 제49책, 2003.>
 한국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질그릇입니다. 대략 BC 10세기 무렵 사용된 것입니다. 이 질그릇이 벼농사와 함께 일본 규슈에 전해져 야요이 문화가 시작됩니다.<국립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V, 국립광주박물관 학술총서 제49책,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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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류코쿠대학 국제문화학부 민속학연구반에서 일본 야요이(彌生)문화의 특징에 대한 서광휘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서광휘 교수는 그동안 일본, 중국, 한국 등지에서 발굴된 환호취락에 대한 연구 결과와 고고학적 유물을 중심으로 강연했습니다. 

일본은 언제부터 벼농사를 지었을까요? 답은 야요이 시대라고 합니다. 야요이 시대에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일본 남부 규슈 지방으로 벼농사 기술이 전해졌답니다. 학자에 따라서 주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BC. 10 세기에서 8세기 까지를 야요이 시대라고 말합니다.

  일본 나고야시 미즈호(瑞?) 유적에서 발굴된 환호취락을 둘러싼 환호입니다. 거의 5 미터 깊이입니다.
 일본 나고야시 미즈호(瑞?) 유적에서 발굴된 환호취락을 둘러싼 환호입니다. 거의 5 미터 깊이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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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의 시작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벼농사 이전의 수렵 채취 시기에 사람들은 가족별, 씨족별로 이동하며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어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벼농사는 사람과 생활의 정착과 대량의 노동력과 농사 기술 및 농기구가 사용됩니다.

벼농사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여서 살면서 외부 공격을 막고, 내부 보호를 위해서 마을 주위에 호를 파서 마을을 만드는 환호취락이 만들어집니다. 이 환호취락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 벼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벼농사 전파 경로입니다. 중국에서는 대략 9 천 년 전 벼농사가 시작되어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에 벼농사가 전해집니다.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벼농사 전파 경로입니다. 중국에서는 대략 9 천 년 전 벼농사가 시작되어 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에 벼농사가 전해집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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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가을철 수확에 대한 감사제를 지내기도 하고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마을 대표자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등 집단 신앙도 생겼습니다. 신앙 행위에는 반드시 술이나 떡, 고기 등 제물이 사용되고 이 제물을 놓을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야요이 시대 만들어진 그릇은 조몽시대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요이 문화가 외부에서 전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요이 시대 만들어졌거나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질그릇은 조몽시대와 달리 붉은 빛의 밝은 색채를 띠고 무늬가 거의 없습니다. 또 그릇 두께가 얇으며 작은 항아리나 단지가 많고 주로 제물을 올려놓는 굽다리 그릇이 발견됐습니다.

  일본 시가현 야스시 도타쿠박물관에 전시된 도타쿠입니다. 이곳에서는 1960년대 신칸센 공사를 하면서 많은 도타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때 발견된 도타쿠를 모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가현 야스시 도타쿠박물관에 전시된 도타쿠입니다. 이곳에서는 1960년대 신칸센 공사를 하면서 많은 도타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때 발견된 도타쿠를 모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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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요이 시대 청동 유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타쿠입니다. 도타쿠의 용도에 대해서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생김새나 발굴되는 모양으로 보아 한반도 무당이 사용하는 작은 방울을 흉내 내어 만들기 시작하여 점차 커진 듯한데, 길이 1.6m 짜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도타쿠(銅鐸)는 타악기로서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되었고, 다양한 크기의 도타쿠가 한 무덤에서 무더기로 발굴 되는 것으로 보아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장강 유역에서 발굴된 질그릇 조각에 볍씨 흔적(오른쪽 아래 부근)이 남아있습니다. 서광휘 교수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장강 유역에서 발굴된 질그릇 조각에 볍씨 흔적(오른쪽 아래 부근)이 남아있습니다. 서광휘 교수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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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일본 규슈지방에 전해진 벼농사 문화로 시작된 야요이 문화는 점점 동쪽으로 전해져 오사카 지역인 긴키지방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다시 동진을 거듭하여 나고야를 거쳐서 도쿄, 동북지방에 전해집니다. 

지금부터 대략 2500년 전 시작된 일본 야요이 문화는 아무런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나 생활 흔적, 취락 유적 등을 통해서 미루어 추정할 뿐입니다. 여기에 고고학 연구의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시에 있는 온가가와(遠賀川) 강 유적에서 1970 년대 발굴된 야요이 시대 질그릇입니다. 색이나 무늬 모양들이 광주 신창동 유적 질그릇과 비슷합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시에 있는 온가가와(遠賀川) 강 유적에서 1970 년대 발굴된 야요이 시대 질그릇입니다. 색이나 무늬 모양들이 광주 신창동 유적 질그릇과 비슷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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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립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V, 국립광주박물관 학술총서 제49책, 2003.>
오사카부립 야요이문화 박물관, 야요이문화의 시작- 도이가하마유적과 히비키나다(響灘)주변, 2011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야요이 문화, #벼농사 전파 경로, #신창동 유적, #환호취락, #서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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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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