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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실.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자율학습 시간인지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없다. 앉아 있는 학생들은 공부를 하거나, 졸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다. 아무 소리도 없다. 지루함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진다. 학생 하나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엎드린다.

그때, 볼펜을 똑딱이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진다. 똑딱 똑딱. 볼펜을 만지던 학생은 스윽 교실의 눈치를 보고는 계속 볼펜으로 소리를 낸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그것은 조용한 교실에 대한 반항인 듯이, 아니면 참아 왔던 자기 소리에 대한 욕구인 듯이, 교실 안에 울려 퍼진다. 보통의 교실이라면, 누군가가 시끄럽다고 했을 것이고, 그 학생은 볼펜을 만지는 것을 멈췄을 게다. 그리고 교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교실은, 조금 특이하다. 아무도 볼펜 소리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제재를 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볼펜 소리에 자신들의 소리를 합치기 시작한다. 어느 학생은 책장을 넘기고, 어느 학생은 책상을 주먹으로 두들기고, 어느 학생은 작심한 듯 볼펜 두 개를 가지고 책상 모서리를 두들긴다.

이제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박자를 갖춘 음악으로 변해 버린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한 학생이 대걸레를 집어 든다. 대걸레로 무슨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순간 그 학생이 기타를 치듯이 대걸레를 잡는다. 대걸레에서는 놀랍게도 베이스 기타 소리가 난다.

자던 학생들이 깨어난다.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를 보며 웃는다. 누군가가 노트에 피아노를 그린다. 이제까지는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풀던 노트에. 그가 피아노를 손가락으로 누르자, 놀랍게도 피아노 소리가 난다. 학생들은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 학생을 바라본다.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책상 위에 올라앉고, 교실 뒤로 나간다. 교실 뒤로 나간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학생이 빗자루를 들고 전자 기타를 친다. 소화기를 들고 색소폰을 분다. 책상 위에 올라앉았던 학생이 노래를 시작한다. 게임을 하던 스마트폰도 음악에 합류한다. 이제 교실은 아주 다른 공간이 돼 버린다.

그들의 놀이는, 누군가가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 오신다"고 말하며 끝난다. 언제 그랬냐 싶게 제자리를 찾아 앉은 학생들은 아까처럼 책을 책상 위에 펼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부한다.

잠 못 들게 만드는 4분짜리 동영상

4분여의 짧은 영상, '하이스쿨 잼'(High School Jam)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영상은 지난 2011년 7월 유튜브에 게재된 지 하루 만에 1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이 영상은 각종 SNS매체를 따라 전해지면서 더 널리 알려졌고, 이 영상을 찍은 학생은 유명해졌다. 그는 놀랍게도 이 영상을 찍을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이 영상을 찍기 전에도 꾸준히 학교에서 친구들을 모아 여러 주제의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단다. 그는 그 특기를 살려 연세대학교에 입학했고, 지금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의 영상, 특히 이 '하이스쿨 잼'을 보고 감동하고, 영상을 공부하길 희망하고 있다. 지금도 다양한 SNS매체에서, 그의 뒤를 따르고 싶은 학생들이 그에게 팔로우를 요청하고 친구 신청을 한다. 고등학생이 만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토리에 편집 기술까지. 이 영상이 유명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영상을 만든 그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는지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이 영상에 담긴 메시지는 그것만이 아니다. 단순히 그를 따르고, 그와 같이 영상을 촬영하고, 그와 같이 명문대에 합격하기를 꿈꾸는 것이 이 영상이 가진 메시지의 전부라고 보기에는 이 영상이 너무나 아깝다. 영상 속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음에 기인한다.

나는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의 울림을 기억한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공연히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 안은 채 몇 번이고 이 영상을 봤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영상은 뭔가를 강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달의 뒷면 같은 아픈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 영상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누가 아름다운 그들을 침묵으로 이끌었나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 보지 않고 앉아 있는 교실, 이 시대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모습니다.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 보지 않고 앉아 있는 교실, 이 시대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모습니다. ⓒ Project SH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으면, 나는 반에서 몇 명이 내 앞에 있고, 몇 명이 내 뒤에 있는지를 따졌다. 누군가 나를 지나가면 그 아이가 내 앞에 있는 학생인지 뒤에 있는 학생인지를 생각했다. 때로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고,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같은 교복을 입었으나, 학생들은 결코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서로에게 적이었다. 학생들은 늘 배워왔던 것처럼 홀로 공부를 했다.

여느 학교에서나 그렇듯 내가 나온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함부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침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침묵도 해야 했다. 어떤 것에 대해서 반발심이 생겨도 학교의 일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입은 닫고, 눈은 교과서를 보고, 정리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게 학생들이 해야 하는 일의 전부였다.

어느 수업에서도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어느 수업에서도 공동체를 가르치지 않았다. 어느 수업에서도 지금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어느 수업에서도, 누군가를 진정 그 자신이 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이 영상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소리들을 낸다. 교실은 더 이상 침묵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처음에는 소음이었던 볼펜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갖춰 가면서 소리를 보태가는 그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된다. 소리가 소리로 전해지면서 그들은 앞만 보던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의자에서 일어서고 춤을 추고 어울린다. 소리는 하나가 되고, 그들도 하나가 된다. 흐리멍덩했던 눈에서 생기가 돈다.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웃는다. 교실이 이전의 교실과 완전히 달라진 것은, 그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리로 자발적으로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그들 스스로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이뤘을 때의 최대 가치를 얻고 있다.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말이다.

나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메시지를 들었다. 누가 그들을 가두는가. 누가 그들을 개별자로 흩어 놓는가. 누가 그들에게,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가르치는가. 이토록 아름다운 그들에게.

나는 다시 영상의 초반부로 돌아간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교실,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앉아만 있는 교실, 각자 자신들의 공부에 빠져 있는 교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다.


#하이스쿨 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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