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4일 오후 3시 25분]대학과 종교계, 사회단체 등에 이어 전국 역사학자 225명도 시국선언 발표를 통해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은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범죄"라고 비판했다.
역사학자 225명은 4일 오전 11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전국의 역사학자들이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격문 형식을 통해 국정원의 선거·정치 개입 의혹을 이렇게 규정하며 "군사독재 시절의 중앙정보부·안기부가 공화당·민정당과 함께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 내내 정치공작에 몰두하고, 사회 현안마다 여론 조작을 일삼은 데 이어 마침내 선거에 개입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세계 정보기관 역사상 최초로 최고급 국가기밀을 스스로 유포하는 사실상의 '반국가 행위'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국정원의 논리를 따른다면 원세훈이 지시한 '원장님 지시사항'을 비롯한 각종 정치공작 내용과 거기에 들어간 국민세금인 예산, 참여한 인명까지 '진실로 공익을 위해서'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순민 명지대학교 교수는 특히 박근혜 정부의 무대응을 "정부가 권력 정당성의 선거개입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궁극적인 수혜자인데 이를 말하지 않는 것은 동조자이며 공조자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이들은 ▲ 검찰의 재수사와 불법행위 관련자 엄벌 ▲ 법적·제도적 개혁 및 보완책 마련 ▲ 이명박 전 대통령 기소 ▲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있는 조치 등을 촉구했다.
"대통령기록원 전문이 공개돼야 할 이유 없다" 또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논란과 관련, 이들은 "국정원이 대통령기록물을 왜곡 편집해서 새누리당에 제공한 것이 '1차 범죄'이며, 국정원이 마음대로 공개할 수 없는 전문을 공개한 것이 '2차 범죄'"라 평하며 "이를 방관하고 동조한 국회의 대다수 의원들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일식 회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작 자기가 국정운영하면서 남에게 보여지기 싫은 기록들은 몽땅 비밀로 유지하도록 자물쇠를 걸고 자신들은 '남북정상대화록'으로 장난을 쳤다"며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짓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연태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대통령기록원의 전문이 공개돼야 할 이유가 없다"며 "현재 공개된 전문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발언 사이 내재된 것을 읽는 것도 역사학적 문맥"이라며 "회담 전문을 살펴보니 그 안에는 노 대통령 특유의 발언 스타일은 담겨있고, 그게 세련되고 점잖은 풍은 아니지만 NLL을 포기했다고 단정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록의 핵심은 최고 위정자의 정치적 독주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의 투명화를 위하는 것이 역사기록의 핵심인데 이에 대한 잘못된 행위로 역사 퇴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훼손된 국가기록물 체제를 다시 혁신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일식 회장은 "이번 시국선언문 작성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확인했다"며 "국회의 원문 통과를 보고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되겠다고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225명이 모였다"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홍순민 교수도 "역사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이 시점에서 역사학자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