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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노는 사람, 임동창〉
▲ 책겉그림 〈노는 사람, 임동창〉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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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교회 담벼락에 기대어 햇볕을 쬐면서 고구마를 까먹던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녀석은 교회 연주용 피아노를 연습용 삼아 열심히 건반을 두드렸다. 동네 사람들은 허구 헌 날 건반 두드리는 소리에 지겹다며 야단을 쳤다. 하지만 연습벌레인 녀석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밤낮없이 연습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와 피아노를 두고 갈등하다가 학교를 접고 피아노에 전념했다.  녀석은 이길환 선생의 권유로 제 1회 <월간음악> 콩쿠르에 나갔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묶어서 하는 광주 예선에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4번 제1악장으로 쉽게 통과했고, 한양대학교 대강당의 서울 본선에선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제8번 F샵단조로 고등부 일등을 했다.

물론 거기에 만족할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은 작곡에도 깊이 빠졌고, '참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밀고 출가를 했고, 이후 군대 군악대에선 그 유명한 <보람행진곡>을 남기기도 했다. 최동선 선생을 만난 뒤로는 음대를 다녔고, 그 뒤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의 명인과 명창과도 만남을 가져 명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자전적 성장소설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임동창의 <노는 사람, 임동창>은 꼭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뭔가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몰입하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피아노 세계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허허롭게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나타내기까지 얼마나 피땀 어린 노력을 해야 했을까?

"불현듯 몸속으로 들어와버린 피아노 소리를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도솔미솔'…… 그 자리에서 <고향집>을 악보도 없이 비슷하게 흉내내어 쳤다. 잘 된다. 신기한 일이었다. 둘째날도 음악실에 가서 뚱땅뚱땅 피아노를 쳤다. 너무 잘 되었다."(13쪽)

바로 이것이었다. 임동창이 피아노에 처음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첫 음악시간에 김정권 음악 선생님이 연주한 <고향집>덕에 녀석은 피아노에 홀딱 빠진 것이다. 그날 이후 밥도, 잠도 그르고, 오직 피아노에 몰입하여, 음악의 대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피아노 하면 보통 서양음악의 선두 주자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피아노를 우리가락과 완전한 조우를 이룬 대가다. 징과 꽹과리와 가야금과 아쟁과 사물놀이패 등 우리가락과 어울리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세계를 드러낸다.

한 번은 보스니아-사라예보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을 때였다고 한다. 2012년 1월경 엄청나게 눈이 왔던 그 때, 해외에서 최초로 허튼 가락인 <가즌 풍류>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날 몇 곡을 쳤는지 모르지만 도무지 관중들이 일어날 기색이 없이 푹 빠졌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그 아름다운 선율에 황홀경에 빠졌고, 급기야 주루룩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교육이란 어찌 보면 '타이밍의 예술'이다. 때를 알아야 한다. 선생의 역할은 학생의 상태를 잘 들여다보고 적절한 때 적절하게 개입하거나 빠져주는 것이다. 기다려야 할 때, 나서야 할 때를 통찰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하게 행해야 한다. 적절하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 사람을 아는 공부가 공부의 전부이다. 그리고 나를 아는 공부가 곧 사람을 아는 공부다."(308쪽)

17살 때부터 학생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했다던 그. 그가 직접 겪은 체험담 속에서 그와 같은 교육세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나도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상담하고 있지만, 그가 이야기한 타이밍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은 전북 완주군에서 '풍류학교'를 열어 그곳의 학생들에게 자기 풍류성을 되찾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그. 그는 그런 풍류음악을 통해 사람과 나를 아는 공부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물론 그곳에는 나이 어린 많은 초등학생에서부터 60이 넘은 장년층까지, 모두 몰입하게 만든다고 한다.


노는 사람, 임동창 -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임동창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풍류, #〈고향집〉, #임동창, #〈노는 사람, 임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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