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물의 행성이지 않나?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바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地球)라고 할 게 아니라 '수구'(水球)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다만 사람들이 바다 위에 사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살고 있으니 지구라고 표기하는 것일 테다.
생각할수록 이기적이다. 인간중심주의, 유럽중심주의, 뭐 그런 승자정복의 문명들 말이다. 비단 그런 문명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내가 발을 내딛고 사는 목포만 해도 그렇다. 목포와 무안을 통합하고, 또 신안까지 하나로 연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신안에는 섬들이 참 많다. 다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이다. 바다가 감싸고 있는 섬들이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대지가 사람들을 낳고 품듯이 바다가 섬 사람들을 낳고 품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 그런 섬들이 신안에 있는 섬들 뿐이겠는가? 국내의 2689개 섬들도 마찬가지일터다.
강제윤 시인의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는 그렇게 섬을 품고, 섬사람들의 애환을 품고, 심지어 섬에 사는 가축들을 보듬어 안은 '여행기록시'다. 길가의 풀과 나무와 들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바람이 전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시 이야기다. 빠르게 질주하는 속도의 노예이기보다 목적지 없이 해찰을 부리며 걷는 '여행화보집'이기도 하다.
우리는 걷기 위해 자주 섬으로 가야 한다.이 나라에서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길은 섬길이다.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먼 섬일수록 섬길은 걷기의 천국이다.외지인들이 섬으로 차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섬에게도, 섬을 찾은 사람들 자신에게도...중략섬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기억을 철저하게 잊어야 한다.한 번도 땅에서 발 떼어본 적 없는 것처럼 걸어라.호흡조차도 발로 하라.어느 순간 섬은, 대지는 온 몸을 열고 그대를 받아들일 것이다.이 책에 담긴 '한 번도 땅에서 발 떼어본 적 없는 것처럼'이란 시다.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섬이야말로 생각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노다지와 같다는 셈이다. 섬에 있는 오솔길, 흙길들이 실은 그렇게 '사유의 확장' 기능을 되찾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온 몸을 열고 받아들이는 섬의 품으로 우리도 그렇게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가파도,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선 섬 집들의 방어막은 돌담이다. 돌담은 언뜻 성곽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다가가면 허술하다.구멍투성이 허점 많은 전선.어떻게 저 혼자 서 있기도 버거운 돌담이 강력한 바람 군단을 막아내며 견뎌온 것일까?바람의 군사들이 신호음을 내며 구멍을 빠져나간다.중략바람과 싸우지 않고 섬을 지켜온 돌담의 전략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 살 수 없어바람의 샛길을 내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바람의 통로'라는 시다. 가파도 돌담 사이를 두 꼬맹이 녀석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이 이 시의 화보로 들어 있다. 한 녀석은 운동화를 신었고, 다른 한 녀석은 노란 장화를 신고 그 사이를 지나간다. 비바람이 얼마나 거칠고 심한지 우산이 휘어 있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어릴 적 비바람을 맞서며 우산을 앞으로 기울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다 바람이 역풍으로 다가오면 우산이 휙 날리고 만다. 힘이 없을 경우엔 저 만치 우산이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시인은 그 비바람을 '강력한 바람 군단'으로 표기한다. 섬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보낼 전략을 키워왔다고 한다. 돌담의 전략이 바로 그것이란다. 바람에게 샛길을 내주고 바람과 함께 사는 섬과 섬 사람들의 지혜 말이다.
어쩌면 지금 한창 무르익고 있는 남북실무자회담 속에 그런 전략이 숨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로가 티격태격 자기 주장만 드세게 몰아부친다면 그저 튕겨나갈 뿐이다. 숭숭 뚫린 저 구멍처럼 서로에게 빠져나갈 구멍도 내 주면서 대화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그대는 어떤가? 그대 삶에 뭔가 막히고 뒤틀리고 꼬인 게 없는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시인의 섬마을 여행기를 따라 생각의 지평을 더 활짝 넓혔으면 한다. 아름다운 화보집 같은 예쁜 사진들이 이 책 속에 촘촘히 박혀 있으니, 그 속에서 그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환히 열리는 그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