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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는 "전교조가 점령한 학교"라는, 그 '삐딱한' 의도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괴담이 있다. 거짓말이고 유언비어다. 실제 통계가 그렇다. 2012년을 기준으로 경기도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 중 전교조 조합원은 14%임에 반해 교총 회원은 31%이다. 무려 두 배나 차이가 난다. 전교조 소속 교사가 전혀 없는 혁신학교도 경기도에 20개 교, 서울에 5개 교나 있다.

설령 백 번 양보해서 전 교사가 전교조 소속인 혁신학교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입만 열면 "전교조는 종북의 심장"이라고 말하며 공포(?)에 떠는 이들의 주장마따나 아이들이 '종북주의자'가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반혁신학교주의자들'(이하 '그들')이여, 전교조를 물고 늘어지는 짓 좀 제발 그만하자.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혁신학교 말이 나올 때마다 전교조를 들먹일까. 그들은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혁신학교에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부러움이 질시로 바뀌어 꼬투리를 잡고 싶은 나머지 눈을 부라리고 있던 차에, 진작부터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전교조가 마침 그 언저리에 보였던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도 '삐딱한' 해석이라고 보지만, 달리 특별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워서 하는 말이다.

실제 혁신학교가 발전하거나 성장하는 속도는 기존의 그 어떤 학교교육 정책보다 월등하다. 김상곤 교육감이 경기도 혁신학교를 도입한 때가 2009년도였다. 출범 당시 혁신학교 수는 13개 교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경기도 혁신학교 수는 무려 195개 교에 달한다. 15배가 늘어난 수치다. 2010년에 20개 교로 시작된 전북 혁신학교도 현재 100개 교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교육사에 이렇게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학교교육의 예가 또 있을까.

이런 양적 성장만 있는 게 아니다. '무늬만' 혁신교육을 펼치는 혁신학교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대다수 혁신학교는 학생과 교사는 물론이고 학부모들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행복하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상황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에도 그리던 일이 아닌가. 과문한 나로선 혁신학교 이전에 그 어떤 학교교육 정책이 학생과 교사를 이렇게 행복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혁신학교가 갈 길은 아직 멀다. '혁신'이라는 말이 학교교육에서 갖고 있어야 하는 철학적 · 교육학적 의미나 의의는 무엇일까. 혁신교육을 통해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나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또 무엇일까. 다른 것은 모두 제쳐 두고라도, 당장 혁신교육에 따른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며, 현장 수업과 평가 등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혁신교육의 총론을 벗어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혁신교육이나 혁신학교에 관한 이론적 · 실천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
 <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
ⓒ 맘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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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최근에 나온 이 책 <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혁신교육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철학과 교육학적 배경, 현장에서 혁신교육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배경이나 조건 등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모두 현장 교사 출신(현직에 있는 저자도 있다)인 데다가, '김상곤표' 경기 혁신학교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교육연구원 정책개발팀에 소속되어 있는 점도 책 내용의 실질성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혁신교육은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와 관련된 저자들의 주장을 거칠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철저한 민주주의, 역량 중심의 교육, 학교교육과정의 재구성 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을 잠깐 살펴보자.

나는 학교 안의 민주주의가 학교구성원들의 자율과 자치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수직적인 위계구조 중심의 학교 문화를 수평적인 평등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학교의 '제왕'으로 불리는 교장 때문이다.

'같은 울타리'에서 근무하는 교장과 교사의 직업만족도에 현격한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책에 인용된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만족도조사에서 초등학교 교장은 1위, 중고등학교 교장은 49위로 나타났으나 교사는 90위로 나왔다-기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학교는 '한 지붕 두 가족', '교장만의 만족'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교장의 직무만족이 학생의 학교 만족과 교사의 직무만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은 교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23쪽)

저자들은 대한민국 교장의 이 문제 많은 리더십을 '거래적 리더십'으로 부른다. 저자들에 따르면, 거래적 리더십은 상황적 보상을 전제로 하는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다. 거래적 리더십 체제에서 교사는 교장과의 약속(?)에 따라(이는 흔히 '업무 분장'이라는 해괴한 용어로 표현된다.-기자) 사전에 정해진 일만 하면 된다.

승진이나 돈 욕심이 있어서 업무를 교장 눈에 쏙 들게만 처리하면 좋은 평가를 받아 근무 평정이나 성과급 등급 산정에서 유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느 교사가 창조성을 발휘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싶어하겠는가. 저자들이, 대한민국의 교장들이 기존의 거래적 리더십을 버리고 변혁적 리더십을 가져야 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저자들은 변혁적 리더십의 특징으로 인간 존중·솔선수범·변화 선도·교수학습 실천의 리더십을 든다. 교장이 으리으리하게 치장된 교장실에만 있을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 곁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훈계하고 지시하기만 하는 교장이 아니라 먼저 실천하고 바뀌고 배워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는 교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고만 드는 교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혁신학교를 변혁적 리더십을 가진 교장과 교사가 만드는 '새로운 학교'라고 말한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혁신학교의 또 다른 주안점은 역량 중심 교육과 학교교육과정의 재구성이다. 혁신학교의 교육은, 국영수와 같은 개별 주지 교과 중심의 지식 습득이 아니라 통합적인 교수학습과정에서 길러지는 문제 해결력이나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등의 핵심 역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학교교육과정을 개별 학교 현장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체들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교과 교사들 간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조 체제나 학습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을 둘러보면 상황이 여의치 않다. 교사들은 갈수록 파편화·개별화하고 있다. 그들은 구래(舊來)의 근무 평정과 2000년대 이후 도입한 교원평가, 교원 성과급 평가 등 갖가지 평가 체제의 굴레에 얽매여 있어 상호 견제와 대립, 반목의 불씨를 가득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상대평가에 따라 이루어지는 성과급 등급 산정 문제 때문에 교사들이 낯 뜨거운 설전을 벌이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이 학습 공동체를 꾸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세 벽돌공 이야기가 있다. 벽돌공 세 명이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뻑뻑 흘리며 벽돌을 쌓고 있다.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이들에게 똑같은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한 명은 "보면 모르나. 지금 벽돌을 쌓고 있다"고 대답한다. 다른 한 사람은 "몰라서 묻나.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나는 지금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어느 벽돌동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가. 자신이 하는 일을 아주 '쿨하게'(?) 벽돌 쌓기로 말한 첫 번째 벽돌공? 아니면 물질 만능인 이 시대에 걸맞게 타산적인 대답을 한 둘째 벽돌공? 다 좋다. 그들은 지금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기본적인 자각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벽돌쌓기를 '성당 짓기'와 연결한 세 번째 벽돌동의 대답을 들고 싶다. 그런데 이 대답은, 혁신학교에서든 일반학교에서든 교사가 스스로를 뜯어 고쳐 새롭게 하고자 할 때 어떤 교육적 태도와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를 잘 암시해주기도 한다. 교육 목표와 비전에 대한 자신만의 창의적인 태도나 관점과 같은 것 말이다.

혹여 당신도 셋째 벽돌공의 대답을 택했는가. 그렇다면 당장 이 책을 손에 쥐어 보기 바란다. 당신이 우리나라 미래교육의 비전과 당신 자신의 교육관을 성찰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 (서용선 외 5인 지음 | 맘에드림 | 2013. 5. 1 | 280쪽 | 1만 4천 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혁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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