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갈등 해결을 위해 구성되었던 '전문가 협의체'가 활동 마감 시한을 앞두고 서면 투표를 강행해 주민들이 '날치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7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아래 대책위)에 따르면, 전문가협의체는 5일 소집된 회의에서 보고서 채택을 결정짓지 못했다. 그런데 6일 백수현 위원장(동국대 교수)이 위원들한테 전자우편(이메을)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는 것.
전문가협의체는 8일까지만 활동하게 되어있다. 협의체는 이 기간 중 보고서를 국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국회 산업통산자원위는 오는 11일 전체 회의를 열어 보고서를 검토한 뒤 권고안을 낸다는 계획이다.
전문가협의체는 국회(여당.야당)와 한국전력-주민 추천(각 3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었다. 백수현 교수와 김발호 홍익대 교수,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 김영창 아주대 겸임교수, 하승수 변호사,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문승일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정태호 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장연수 동국대 교수다.
전문가협의체는 한국전력공사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송전탑 공사(울산 울주-부산 기장-경남 양산-밀양-창녕)를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노선 변경'과 '지중화' 등을 검토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 5월 20일부터 공사를 재개했는데 주민들이 몸으로 막으면서 반대했고, 갈등이 깊어지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전문가 협의체' 구성을 했던 것이다. 전문가협의체는 활동기간이 40일이고, 한국전력은 이 기간 동안 공사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서면 결과 보고서 제출되면 밀양 분노"전문가협의체는 지난 5일 사실상 최종 회의를 열었지만 보고서 채택은 하지 못했다. 이날 주민·야당 추천 위원들은 한국전력 추천위원들이 한국전력의 자료를 베껴 보고서를 냈다고 지적하면서 사퇴를 요구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날 백수현 위원장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하고, 믿어 주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속에 백 위원장이 A4용지 1장짜리 서면에 '3가지 의제'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자는 긴급제안을 했다.
이에 주민측 참관인들은 "수천명의 목숨이 달린 일을 OX 퀴즈하듯이 처리하자는 거냐"며 격렬하게 반발했던 것. 주민 추천위원 일부는 용지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이날 결국 표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백수현 위원장이 6일 저녁 이메일을 통해 위원들에게 '서면 투표'를 다시 요청했던 것이다. 백 위원장은 '기존 선로를 활용한 우회송전 가능여부'와 '밀양구간 선로 지중화 구성과 기타 대안에 대한 의견', '그 외 밀양 송전탑 건설의 대안'을 위원들에게 물었다.
대책위는 전문가협의체가 회의를 통하지 않고 위원들의 검토의견을 이메일로 받아 보고서에 담겠다고 하는 것은 '날치기'라 보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주민 추천위원인 하승수 변호사는 "백수현 위원장이 어떻게든 공사강행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라는 임무를 어디선가 부여받은 것이 분명하다"며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40일 동안 심도있는 기술적 검토를 요하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가능성이 상존하는 문제를 초등학교 시험문제보다도 더 유치한 방식으로 달랑 A4 1장에 다 적으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위원들을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닌 정치적 거수기로 여기는 것이며, 밀양 주민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7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우리가 밀양이다"는 제목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렸는데, 밀양지역 주민 350여명이 상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