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영국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상만이 있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였던 김어준씨가 한 말이다. 고상만 보좌관은 1998년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수많은 군 사망사고의 진실을 파헤쳤다.
 "영국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상만이 있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였던 김어준씨가 한 말이다. 고상만 보좌관은 1998년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수많은 군 사망사고의 진실을 파헤쳤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국회의원의 권한을 드릴 테니, 군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정책과 입법 활동에 저와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설 연휴 '백수' 고상만(43)씨에게 5급 보좌관직을 제안하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고씨는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승낙했다. 김 의원은 "낮은 직급인데도 승낙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고씨는 3월 보좌관 명함을 팠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군 사망사고 문제에 대해 고상만 보좌관만큼 도와줄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였던 김어준씨는 "영국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상만이 있다"고 했다. 고 보좌관은 1998년 '김훈 중위 사망 사건관련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수많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담당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 경력을 빠뜨릴 수 없다.

그를 두고 최고의 조사 전문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군 사망사고 유족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그다. 유족들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고 보좌관은 "169기의 시신과 유골함이 최대 42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각 군 냉동고와 보급 창고에 방치돼 있다, 유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국방부와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9월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한 김광진 의원과 고상만 보좌관 콤비의 첫 입법 성과가 나온다. 고 보좌관은 "자살한 군인은 여전히 '개죽음'이다, 바뀌어야 한다"면서 "국가는 징병제에서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서 생활하다가 죽은 군인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자살했다면 어떤 부대적 요인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전우애는 군 병원 냉동고과 보급창고에 잠들어 있는 부하·동료 사병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2011년 이명박 정부 동안 매년 129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그중 8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보좌관은 "사흘에 1명씩 군인이 죽는다, 군 사망사고는 과거의 문제이자 오늘의 문제인 만큼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오전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고상만 보좌관을 만났다.

[고 김훈 중위와의 만남] "'개죽음'을 군 의문사로 바꿔놓았다"

고상만 보좌관이 의문사와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90년 3월의 일이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김용갑 총학생회장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는 "나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고,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도망가면 죽은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주기 추모제 때 학교를 점거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는 다시 의문사와 마주했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죽음이다.

김씨의 동료였던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며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고 보좌관은 김기설씨의 자필 명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강씨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학에서 제적된 상태였던 고상만 보좌관은 곧장 '강기훈씨 무죄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들어갔다. 인권운동가의 길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후 여러 민주화·인권단체에서 일한 고 보좌관에게 1998년 2월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80만 원의 활동비와 점심을 약속했다. 활동비 25만 원을 받고 있던 고 보좌관의 첫 마디는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 쓰죠?"였다. 그만큼 대가 없이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천주교인권위의 문을 두드렸다. "형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도와 달라"고 했다. 고 김훈 중위의 동생이었다.

김훈 중위는 같은 해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GP(경계초소) 벙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방부는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고인의 가족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 판문점 경비대대 대원들이 북한과 내통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김훈 중위의 죽음은 온 나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훈 중위는 이 부대의 소대장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이 들끓자, 국방부는 군 창설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의문사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합동조사단(특조단)을 꾸렸다. 고 보좌관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그까짓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요란을 떠느냐'는 국방부 모 대령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특조단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고 보좌관은 "이후 15년 동안 대법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국가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가 모두 유족의 손을 들어줬지만, 군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면서도 "김훈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싸움은 군대에서의 '개죽음'을 의문사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 장준하 선생과의 만남] 대선 앞두고 사표를 던진 까닭은?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 장준하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 장준하 선생 관련 자료를 국가기록원이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 장준하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 장준하 선생 관련 자료를 국가기록원이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고상만 보좌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 또 있다. 바로 고 장준하 선생이다. 1993년 한 방송에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마주한 그는 10년 뒤인 2003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조사하는 팀장이 됐다. 그는 "김희수 상임위원이 내게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기회가 온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1975년 사고 당시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씨 녹취 테이프, 1988년 포천경찰서의 재조사 자료 등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며 "다들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했지만, 포천경찰서 창고에 가서 하루 종일 종이뭉치를 뒤져 기적적으로 찾아냈다"고 밝혔다.

결국 그의 팀은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단 1년의 조사기관과 국정원 등의 자료제출 거부 탓에 누가 장준하 선생을 죽였는지 등 구체적인 진실은 밝히기 어려웠다. 결국 의문사위는 '진상규명 불능' 결론을 내렸다. 고 보좌관은 "그래도 진실에 몇 발자국 다가갔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 장준하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 장준하 선생 관련 자료를 국가기록원이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달 동안 집필에 매달렸다.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은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 추락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 장준하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 장준하 선생 관련 자료를 국가기록원이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달 동안 집필에 매달렸다.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은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 추락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후 고 보좌관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을 거쳐 서울교육청 감사관실 공무원이 됐다. 그러던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의 유골 감정으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외면했다. 또한 국가기록원이 의문사위 조사 자료를 '70년 비공개' 결정을 내린 사실이 밝혀졌다.

18대 대선을 3주 앞둔 2012년 11월 그는 서울교육청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날 자신이 쓴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고 보좌관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공무원직을 내놓고 책을 냈다"고 전했다.

[김광진 의원과의 만남] "국가는 사망군인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고상만 보좌관은 지난 2월 김광진 의원이 보좌관 자리를 제안했을 때 깊게 고민했다. 김 의원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김 보좌관은 "지금까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강조했는데, 이런 기회를 날려버릴 수 없었다"며 김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동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다양한 기사를 통해 군 사망사고와 장준하 선생 의문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3월 국회 입성 후 고 보좌관이 처음 한 일은 전국의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5개의 단체로 나눠져 있었다. 두 달 동안 유족들을 만났다. 자책하고 있는 유족들에게 "아들을 군에 보냈는데, 국방부가 지켜주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 죄인 취급을 하지 말고 국민과 국회의원들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유족들에게 문자 메시지도 보냈다. 10분 뒤 한 사망 군인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아들을 잃은 10년 동안 국가로부터 연락 한 번 못 받았다"며 통곡했다. 이어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한 달 부가가치세가 600만 원이 넘는다, 국방부로부터 아들의 시신과 위로금 500만 원을 받았다, 이 나라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부대적 요인이 밝혀지지 않은 자살 군인에 대한 사망위로금은 500만 원이 전부다. 5월 24일 전국의 유족들이 국회에 모여, 아들 잃은 절규를 쏟아냈다.

군 사망사고 유족들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고상만 보좌관은 "169기의 시신과 유골함이 최대 42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각 군 냉동고와 보급 창고에 방치돼있다, 유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국방부와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군 사망사고 유족들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고상만 보좌관은 "169기의 시신과 유골함이 최대 42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각 군 냉동고와 보급 창고에 방치돼있다, 유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국방부와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들의 호소에 새누리당 소속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기세를 모아 김광진 의원과 고상만 보좌관은 군 사망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고인과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 발의 예정인 '의무복무 중 사망군인에 대한 관한 특별법'(가칭)에 모든 사망 군인에게 국립묘지 안장, 국가보훈처의 위로금·연금 혜택이 포함된 국가유공자 예우를 해주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가칭)도 발의할 예정이다. 사망사고를 조사하는 군 헌병대에 대한 유족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고 보좌관은 "군 내부의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징병제 하에서 국가는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보좌관으로서의 꿈을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군이 변하고,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더욱 민주화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의 예정인 두 가지 법안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져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고 보좌관은 논쟁 속으로 첫 발을 뗐다.

"직급을 낮춰 보좌관 제안... 흔쾌히 승낙했다"
김광진 의원이 본 고상만 보좌관은?

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뒤 단상을 내려서자 이 대회를 주관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다가가 부축하고 있다.
 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뒤 단상을 내려서자 이 대회를 주관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다가가 부축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고상만 보좌관에게 보좌관직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방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초 장병들의 의식주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1년에 130여명의 군인이 죽는다는 통계를 봤다. 이들의 죽음을 먼저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전문성이 필요했다. 또한 오랜 기간 진행된 싸움이었기 때문에 종합적인 통찰력을 가진 분이 필요했다.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고 보좌관의 글을 보고, 그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고 보좌관이 보좌관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고민을 많이 했다.
"고 보좌관의 경력을 감안하면, 4급 보좌관으로 모셔오는 게 맞다. 하지만 의원실에 5급 보좌관 자리 하나만 비어있었다. 고 보좌관에게 직급 문제를 떠나서 같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고 보좌관 주변에서는 반대를 많이 했다고 했지만, 결국 함께 일하게 됐다. 고마운 일이다."

- 같이 일해 보니 어떤가?
"팀워크가 잘 맞다. 고 보좌관은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의원실에 와서 중심추를 잘 잡아주는 것 같다. 활동 능력뿐만 아니라, 의원실을 조율하는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저는 역사 전공을 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을 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고 보좌관도 그런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잘 맞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고 보좌관만큼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은 드물 것이다."

- 준비 중인 군 사망사고 관련 법안에 대한 군의 반발이 예상된다.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법안에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없다. 다만 군 내부의 반발이 있다. 개별 군 사망사고 결론이 뒤집어질 경우,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전쟁 중 전사자와 자살한 군인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에 못마땅해 하는 군인들도 있다. 자살 군인에게 순직이라는 용어를 내줄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출퇴근 없이 부대에서 생활하다가 죽는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공무수행 중 사망이라고 볼 수 있다."

- 앞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론전을 벌여야 한다. 두 가지 여론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의문사로 불리는 군 사망사고가 군사 정권시절에만 일어난 게 아니고 사흘의 한 명씩 군인이 죽는 오늘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이라는 것은 온전한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이러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태그:#나는 보좌관이다, #고상만 보좌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