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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슈리성(首里城) 남쪽에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예쁜 길이 있다. 오키나와에서 나는 류큐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 돌길은 킨조초(金城町)에 자리 잡은 돌다다미길이라는 뜻의 킨조초 이시타다미미치(石畳道)라고 불린다. '이시타다미'란 네모지고 판판한 돌을 다다미 깔듯이 깐 도로를 말한다. 작은 유적지이더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일본에서 이 길은 '일본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유명한 길이다.

시키나엔(識名園)을 출발한 우리의 차는 언덕의 정말 작은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시키나엔 언덕이 꽤 높아서 우리가 탄 차는 슈리성(首里城) 쪽을 향해 심한 경사의 길을 내려갔다. 길가의 작은 집들은 시멘트 본연의 색인 듯한 회색 집들이 대부분이다. 날씨가 습하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일부러 여러 색을 칠하지 않은 것 같다.

이시타디미 입구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대 길로 선정된 돌길이다.
이시타디미 입구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대 길로 선정된 돌길이다. ⓒ 노시경

이 길은 슈리성 쪽에서 내려오면 나중에 다시 올라오기가 꽤 힘든 길이다. 요새와 같은 왕궁 아래에 자리한 길이라서 경사가 아주 심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이시타다미의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올라가서 이시타다미를 답사하고 슈리성 근처의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은 경사의 길인데 다행히 날씨가 덥지 않아 다행이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옛길의 분위기에 젖어 길을 나섰다.

킨조초 이시타다미는 역사가 담겨 있는 길이다. 류큐 석회암으로 포장된 이 돌다다미길은 16세기초 류큐 시대 슈리성 남쪽의 귀족들 저택이 즐비한 킨조초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당시 류큐왕국은 슈리성에서부터 나하 항과 오키나와 본도의 남부지방까지 무려 약 22km에 달하는 구간의 주요 도로들을 4m 폭으로 포장, 정비하였다.

그 후 이 돌길은 류큐 귀족들이 왕궁으로 향할 때 이용하는 길이 되었고 류큐의 백성들이 국왕 책봉 시에 슈리성을 구경갈 때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돌길은 역사의 의미가 더해지는 뜻깊은 길이다.

이시타다미 민가 민가의 붉은 지붕과 돌담이 고즈넉하다.
이시타다미 민가민가의 붉은 지붕과 돌담이 고즈넉하다. ⓒ 노시경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역사의 옛길이 태평양전쟁 당시에 미군의 일본군 소탕작전 때 이용되었다. 그래서 이 역사적인 돌다다미길은 태평양 전쟁에서 거의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전쟁의 상처에서 용케 살아남은 길은 마다마도우(真玉道)의 일부 구간인데, 현재 약 340m가 남아 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시타다미는 류큐에서 건설된 옛 도로의 가장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만이 남은 옛길이 지금은 관광코스가 되어 일본과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나는 이 길에서 고도(古都) 슈리(首里)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와 주변을 돌아보며 오키나와의 옛길을 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골목 삼거리의 벽마다 박혀있는 이시간토우(石敢當)라는 돌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이시간토우는 재앙을 방지하는 돌인데, 일본 내에서도 이 오키나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전통이다. 삼거리는 교통사고가 많이 날 수 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삼거리에 이 이시간토우를 박아놓으면 도깨비가 뛰어오다가 이시간토우를 보고 멈춘다는 전설이 있다.

이시간토우 삼거리마다 자리를 잡은 이 돌은 교통사고 등 재앙을 막는 돌이다.
이시간토우삼거리마다 자리를 잡은 이 돌은 교통사고 등 재앙을 막는 돌이다. ⓒ 노시경

돌다다미길은 예쁜 옛길의 운치가 있다. 돌길의 명성에 비해서 지나는 사람은 별로 없어 한적하기까지 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을 하고 여유를 즐겼다. 돌길 옆에는 남국의 정취를 풍기는 류큐왕국의 빨간 지붕 집들이 참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집들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인기척이 없고 한적하다. 길이 잘 보존되고 유지되는 모습도 보기가 좋다.

돌길도 오키나와 석회암으로 박혀 있고 아담한 성벽같은 돌담들도 석회암으로 단단하게 쌓여 있다. 돌담 안으로는 집주인들이 조경실력을 뽐내는 아열대의 나무들이 자라고 돌담 위에도 관엽식물들의 녹색 천지다. 돌담을 호위하는 아열대 나무들은 동백나무를 닮았는데 각각의 이름과 함께 꼼꼼한 설명문이 붙어 있다. 나무 아래에 가득 자라는 작은 들꽃은 보는 사람을 괜히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돌길 위에서, 돌담의 호위를 받으며 골목의 남국정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시타다미 걷기 한 가족이 경사진 이시타다미를 걸어서 내려가고 있다.
이시타다미 걷기한 가족이 경사진 이시타다미를 걸어서 내려가고 있다. ⓒ 노시경

나에게 이시타다미 지도는 없지만 돌길은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서 나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올라온 길을 돌아서 내려다보면서 또 돌길을 올라갔다.

이 돌다다미길은 오키나와 여행 계획을 짤 때 실제 모습이 가장 궁금하던 곳이었다. 이름이 돌다다미길이니 돌을 어떻게 가공해서 다다미처럼 길을 놓았을지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직접 보니 류큐 왕국의 단단한 포석(鋪石)과 민가의 높은 돌담이 옛 모습 그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아있다. 돌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 여행을 시작한 나는 이토록 멋진 길을 홀로 걸었다면 상당히 안타까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사 문패 위 시사 얼굴에는 해학이 담겨 있다.
시사문패 위 시사 얼굴에는 해학이 담겨 있다. ⓒ 노시경

집집마다 대문의 기둥 위에는 익살스런 모습의 시사(シーサー)들이 있다. 재앙을 몰아내는 상서로운 동물들은 대개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곳 오키나와의 시사들은 대부분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있다. 웃고 있는 시사를 향한 오키나와인들의 굳은 믿음이 분명히 오키나와인들이 스스로 잘 견디게 해준 힘이 되었을 것이다.

킨조초 이시타다미의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이 마을의 동네 정자 같은 휴식처, 가나구시쿠무라야(金城村屋, かなぐしくむらや-)가 있다. 1996년에 지어진 이 공간은 동네 주민들의 공공 휴게공간이자 마을의 회의소로 쓰이고 있다. 이 자유 공간은 아무나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나와 아내는 이 한적한 기와집의 다다미에 걸터앉았다. 약간 흘린 땀을 닦으며 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가나구시쿠무라야 이시타다미 마을 주민의 회합 장소로서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가나구시쿠무라야이시타다미 마을 주민의 회합 장소로서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 노시경

나는 이 휴식처 바로 앞 자판기에서 시원한 사과차 주스를 한 개 뽑았다. 냉장 자판기에서 방금 나온 주스는 약간 더운 바깥 세상과는 달리 한 모금마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나는 아내와 주스를 나눠 마시며 시원한 바람을 맞이했다. 맑은 날,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류큐왕국 때부터 500년 동안 태풍과 전쟁도 견뎌낸 돌길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아래를 보는 시야가 확 트이니 마음도 시원해진다.

가나구시쿠무라야 앞에는 우리나라의 당산나무같이 거대하게 자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나무 아래에는 킨조초 이시타다미 주변의 문화재 지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를 보니 나와 아내는 킨조초 이시타다미의 한 중앙에 앉아 있었다. 다다미 위로 올라가서 다다미 방의 내부도 둘러보았다. 방 내부에는 이 마을 사람들이 오키나와 전통복장을 입고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과 함께 이시타다미 관광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마을 주민에게 수여된 표창장이 정연하게 걸려 있다. 

단지 나의 아내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키나와의 모기였다. 나는 이 오키나와 가옥도 둘러보고 주변 돌담의 사진도 찍으러 돌아다녔기에 모기에 물리지 않았지만 마루에 걸터앉은 아내를 향해서는 모기가 조용히 다녀갔다. 외국의 모기라서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모기에 물린 아내는 마루에 앉아서 조금 더 휴식을 취했다.

아내의 다리 주변을 배회하던 모기 2마리는 내가 휘두르는 손을 피해 가옥의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가 계속 다시 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손뼉을 쳐서 순식간에 모기를 잘 잡는 모기 사냥꾼이지만 손에 피를 묻히기 는 싫었다. 나는 오키나와 모기가 나타날 때마다 쫓아버리기만 했다.

이시다타미 식당 오키나와 전통주와 정식으로 유명한 집이다.
이시다타미 식당오키나와 전통주와 정식으로 유명한 집이다. ⓒ 노시경

가나구시쿠무라야 앞에 있는 이시다타미(石だたみ)라는 식당은 이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식당이다. 식당 이름이 길 이름인 이시타다미(石ただみ)와 비슷해서 웃음이 나온다. 소박한 식당 안에는 식당의 역사를 홍보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인들이 걸려 있다. 오키나와 전통의 마을 안에서 식당 주인이 직접 만든 독한 오키나와 전통주와 정식, 그리고 소바와 튀김을 전통의 맛 그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가나구시쿠무라야에서 일어나서 돌길을 조금만 오르면 가나구시쿠 다이히카와(金城大樋川)라는 용천수 우물이 있다. 왕이 살던 슈리성 주변에는 용천수 우물이 산재하는데 슈리성 아래에 귀족들이 살던 이 마을에도 운치 있는 용천수 우물들이 많다. 높은 언덕 위의 우물인데도 예상 외로 우물 안에 물이 풍부하다.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회색의 성벽 같은 석벽과 열대 나무가 이국적이고 신비하다.

용천수 우물 마을의 여러 곳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은 맑고 풍부하다.
용천수 우물마을의 여러 곳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은 맑고 풍부하다. ⓒ 노시경

땅 속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를 받는 석재 홈통 가운데에는 물의 신을 모시는 돌비석이 조그맣게 서 있다. 너무 작아서 겨우 찾은 돌비석은 귀엽기까지 하다. 오키나와의 우물에는 반드시 우물 가운데에 이러한 돌비석이 있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우물물을 마시면서 돌비석에게 항상 기도를 올린다. 그들은 물의 신에게 필요한 물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기도를 올리는데 이는 바로 자연을 경외하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시로야 테라스에서 언덕 아래의 마을을 구경하는 맛이 일품이다.
시로야테라스에서 언덕 아래의 마을을 구경하는 맛이 일품이다. ⓒ 노시경

돌다다미길 윗길에 오르니 경치 좋은 카페, 시로야(しろや)가 있다. 테라스가 있는 탁 트인 오픈 카페에서 오르막길을 오른 숨도 돌리고 언덕을 타고 오르는 바람을 쐰다. 온통 흰색으로 치장된 카페의 조용한 테라스에서는 나하 시 외곽의 주거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하늘을 볼 수 있는 이 곳은 일몰이 너무나 아름다운 카페라고 하나 일몰 시간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서 잠시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길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나카노카와(仲之川)라는 또 하나의 용천수 우물이 깊은 숲 속에 숨어 있다. 높은 언덕 민가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맑은 용천수가 솟아나는지 다시 한번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캄보디아 앙코르(Angkor)의 밀림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우물 주변은 고요하다.

나카노카와 마치 밀림 속 샘물처럼 신비롭다.
나카노카와마치 밀림 속 샘물처럼 신비롭다. ⓒ 노시경

다다미길 입구 표지판을 마지막으로 차가 다니는 차도가 눈에 들어온다. 이 일대 지도를 손에 들고 있지 않으니 다음 목적지인 슈리성 주변의 맛집을 찾아가기가 영 답답하다. 택시가 지나가면 가까운 거리이니 잠시 택시를 이용해서 가려고 했으나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차도는 버스, 택시, 승용차 모두 1대도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차가 지나가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까지 되기 시작했다. 찻길은 그늘도 없어서 오키나와의 높은 태양을 실감해야 했다.

잠시 난감해하고 있을 즈음, 저 멀리서 택시가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고 무작정 택시를 탔다. 에어컨의 혜택을 받는 오키나와의 택시 안은 시원했다. 나는 택시 기사가 알아듣지 못 할 수도 있는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내가 가려는 식당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는 내가 가려는 식당의 이름도 알지 못했고 나의 설명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위치도 정확히 모르는 식당을 못하는 일본어로 설명해야 했다. 돌발상황, 하지만 나는 이런 여행이 즐겁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2013년 5월 20일~23일의 일본 오키나와 여행 기록입니다.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오키나와#나하#이시타다미#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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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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