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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도 드문 안성 흰돌리마을 산골에 웬 할아버지 한 사람이 움막생활을 한다. 올해 74세의 나이에 그가 산골 움막에서 혼자 사는 이유가 뭘까?

할아버지의 이름 정환희, 이름 그대로 그의 미소가 일품이다. 요즘 한창 블루베리 수확기라 하루가 바쁘다.
▲ 정환희 할아버지의 이름 정환희, 이름 그대로 그의 미소가 일품이다. 요즘 한창 블루베리 수확기라 하루가 바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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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54년, 그걸로 잔뼈 굵어

원래 평택에서 살았던 할아버지. 아직 평택에 자신의 집이 있다.  그 집은 할아버지의 평생 피와 땀의 결실이다. 할아버지는 막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 20세부터 지금까지도 막노동을 다닌다. 무려 54년 째 막노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외국건설현장 돈벌이가 한창일 무렵,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에도 갔다 왔다. 이때 관급공사의 노하우를 익혔기에 지금도 막노동 현장에서 할아버지를 찾는다. 까다로운 관급공사에 잘 맞춰 해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일러 '정 미장'이라고 한다. 시멘트를 벽에 바르는 미장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적(벽돌 쌓는 것)과 목수일도 전문가다. 그가 일을 하면 속도는 조금 느려도 꼼꼼하게 해낸다. '정 미장'이 하는 일이면 뒤탈이 없다는 평을 듣고 살았다. 칠순의 나이에도 일하러 오라고 불림을 받는 이유다. 블루베리농장 일이 없을 때는 지금도 막노동하러 나가곤 한다.

정환희 할아버지가 5년 째 홀로 생활하는 산골 움막이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모든 생활을 한다. 블루베리 밭 한 쪽에 움막이 있다.
▲ 움막 정환희 할아버지가 5년 째 홀로 생활하는 산골 움막이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모든 생활을 한다. 블루베리 밭 한 쪽에 움막이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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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농장은 노후대책

점차 나이도 들고, 근력도 약해지자 다른 살길을 생각해야 했다. 육체적 노동을 죽을 때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 찾아낸 블루베리 농사. 그는 일단 농장에서 블루베리 20만 원 어치를 사서 집 마당에서 키웠다. 열매가 괜찮게 열리는 걸 보고 도전해볼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 바로 농장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 농장 저 농장에서 일해 돈도 벌고,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제대로 알려면 최소한 사계절은 겪어봐야 안다며 2년을 남의 농장에서 일했다. 평소 그의 꼼꼼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준비하던 중 할아버지의 아내가 돌아가셨다. 6년 전의 일이다. 소위 독거어르신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찾아온 적적함도 달래고, 계획한 일도 해야 될 시기라고 여겼다.

땅을 찾아 헤매던 중 지금의 장소를 알게 되었다. 임대해서 사용했다. 평생 막노동해서 산 자신의 집은 세를 놓았다. 평택에서 안성 산골로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봐야 몸만 나오는 거였다. 지금의 움막으로 이사를 했다.

정환희 할아버지의 땀이 모이고 모여 이렇게 블루베리로 영글었다. 이 블루베리를 산새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시나브로 훔쳐 먹는단다.
▲ 블루베리 정환희 할아버지의 땀이 모이고 모여 이렇게 블루베리로 영글었다. 이 블루베리를 산새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시나브로 훔쳐 먹는단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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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 600평에 블루베리나무를 심었다. 첫술에 배부르랴. 할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가 평소에 신용을 쌓아 놓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블루베리를 사갔다. 지금도 농원에는 변변한 간판하나 없다. 굳이 간판이 없어도 할아버지 자체가 간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산새 출퇴근 시간이 내 출퇴근 시간

"참새, 산까치 등 산새들이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는 겨. 그런데 요즘 참새 이것들이 출근 시간을 안 지키네 그랴. 들쭉날쭉이여. "

그랬다. 할아버지의 요즘 기상 시간은 5시께. 산새들은 보통 5시가 넘어야 블루베리 밭으로 출근한다. 뭐하려고. 물론 블루베리를 훔쳐 먹으려고. 간혹 산새들이 출근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아 할아버지가 산새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단다. 그렇게 되면 새들이 블루베리를 마구 따먹는다고.

할아버지가 중간에 블루베리 배달을 나가면 그때는 새들이 블루베리 잔치를 벌인다고. 주변에서 놀던 새들이 사돈 팔촌 이모고모 다 부른단다. 할아버지의 출장은 새들의 천국이라는 것. 새들은 "저 할아버지, 언제 배달 안 나가나"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거다.

할아버지의 퇴근 시간은 9시. 요즘 산새들은 오후 8시 30분이 넘으면 자러 간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새들의 취침시간이다. 그걸 확인한 할아버지는 그제야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새들의 출퇴근 시간이 할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새들보다 출근은 조금 일찍, 퇴근은 조금 늦게 하는 게다.

요즘(6월 중순~7월 말)이 한창 수확기다.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요즘 새들과 한창 전쟁 중이다. 새들만 없으면 손해 볼 일이 없다. 새들이 오면 제대로 따 먹지도 않고, 쪼아 놓기만 한단다. 그러면 벌레들이 들끓어 이중 피해를 입는다는 것. 다행히 그물을 쳐놓은 상태라 고라니 등 들짐승들은 덤벼들지 않는다고. 날개 달린 새들만 관리하면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혼자서 블루베리 묘목도 기른다고 했다. 블루베리 가지를 잘라서 심으면 묘목이 된다고 했다.  씨 없이 번식하는 뿌리식물이기에 그렇다고 했다.
▲ 묘목 할아버지는 혼자서 블루베리 묘목도 기른다고 했다. 블루베리 가지를 잘라서 심으면 묘목이 된다고 했다. 씨 없이 번식하는 뿌리식물이기에 그렇다고 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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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홀로 블루베리 관리, 수확, 배달, 포장판매까지 한다. 씨 없이 뿌리로 번식하는 블루베리묘목도 직접 키워 팔고 농장나무로도 사용한단다. 혼자 있지만 적적할 틈이 없다. 앞으로도 평생 할 거라고 했다. 올해는 이렇게 하는데 내년엔 힘이 부쳐서 사람을 써야겠다고 했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산새들과의 '출퇴근 실랑이'로 하루가 바쁘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0일 정환희 할아버지의 산골 움막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정환희, #독거어르신, #노후대책, #블루베리 ,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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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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