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17일 오후까지도 5명의 실종자가 물 속에 잠겨 있다. 그들이 물에 잠기기 전 몇 차례 대피 기회가 있었지만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와 감리업체, 시공사 모두 이를 무시하거나 놓치면서 인명사고로 이어졌다.
대형 인명 피해 사건으로 번진 이번 수몰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 서울시와 시공업체, 감리업체가 밝힌 사고 직전 상황을 통해 분석해봤다.
사건이 일어난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 상수도관 공사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주가 발주했으며 (주)천호건설, (주)중흥건설, (유)신한건설이 공동 도급계약을 맺어 시공사로 참여했다. 전체 책임 감리는 (주)건화가 맡았으며, 실제 공사는 천호건설에서 하청을 준 ㈜동화지질이 맡았다. 공사기간은 2011년 9월 8일부터 2014년 4월 5일까지로, 총 사업비는 180억 9900만 원이며, 7월 중순 현재 전제 공사 중 74%가 진행됐다.
[경보 전달 체계] 대피 기회, 서울시·시공사·감리업체 모두 놓쳤다
가장 큰 문제는 경보 전달 체계였다. 사고 당일 팔당댐 방류량이 늘고 있었지만 이는 현장 노동자들에게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한강홍수통제소는 사고 당일 새벽부터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팔당댐 방류량과 한강 수위를 실시간 문자로 알렸다. 이날 오후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 집중호우가 예보된 상태였기 때문에 방류량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충분히 가능했다. 오후가 되면서 팔당댐은 모든 수문을 열었다. 한강홍수통제소는 오후 1시 30분·3시·4시 50분 세 차례에 걸쳐 방류량이 초당 1만 톤을 넘어섰다는 경고 문자를 보냈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명근 (주)건화 감리단장은 16일 언론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전 10시까지만 해도 시간당 초당 8000톤, 작게는 6000톤 정도를 방류했다"면서 "12시가 넘으면서 팔당 방류량이 늘어, 최고 1만6000톤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 단장은 "공사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팔당댐 방류 현황이나 한강 수위를 모니터링하는 줄 알았다"며 "모니터링을 통해 공사 현장에서 빠져나온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경보 전달 받지 못하고 물 들어차서야... 결국 7명 수몰사고가 일어나기 40분 전, 사고 위험을 알리는 메시지도 있었다. 16일 사고 현장 브리핑에서 박종휘 천호건설 현장소장은 "오후 4시 13분에 카카오톡(스마트폰 메신저)으로 현장 범람위기 사진을 받았다"며 "오후 4시 17분에 (하도급 업체) 공사 팀장에게 작업 중단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현장 근로자에게 내려졌는지 부분은 확인을 못했다,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하도급 업체는 이같은 지시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청업체인 동아지질 관계자는 "우리 직원들을 상대로 확인해본 결과 (철수하라는) 연락을 받은 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현장에서 수몰 직전 대피한 이아무개씨는 "물이 차오를 당시 터널 내에서 경보는 전혀 없었고 비상 인터폰도 울리지 않았다"며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도급 업체가 원청의 작업 중단 지시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는지 여부는 논란이다. 하지만 사고 발생 40여 분 전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경보가 전달됐다는 점은 현장의 경보 전달 체계가 안전 사고에 취약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책임감리제] 시는 발주만, 겉핥기식 안전 점검... "도의적 책임은 인정"
공사 발주 방식은 책임감리제다. 1994년 도입된 이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공사에 대해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성 떨어지는 공공기관 대신 감리 전문 업체에게 공사의 책임과 권한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책임감리제라는 이름으로 감리업체에 공사의 관리감독을 일임했다. 하지만 사고 경위를 보면 서울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울시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지점은 두 군데다. 오전 9시부터 30분까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급수부 시설과장 주재로 공사장 안전관리 점검 회의가 있었다. 상수도사업본부 직원이 감리 직원에게 현장 안전관리 철저를 지시했다. 이어서 오전 10시 15분 이명근 감리단장은 상수도 사업본부로 이상유무 없음을 보고했다. 국지성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오전에만 안전점검을 끝낸 것이다. 현장 확인 없이 전화 한 통으로 공사를 승인, 안이한 대처였다. 겉핥기식 안전점검을 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자체 감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찰 수사와는 별개지만 현장 매뉴얼, 수칙 등을 어겼는지에 대해 시 차원의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실종자 수색 작업이 끝나면 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관리제에 대해서는 "(시가) 완전히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발주처로서 공사를 승인한 책임이 있기에 도의적 책임은 있다"며 "법적 책임이 있다면 시 감사를 통해서 현장에서 제대로 대처 못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따져 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감사를 통해서 감리업체의 감독 부실, 시공업체, 하도급업체 등의 안전수칙 미준수 등이 확인될 경우 영업정지나 벌점, 시 사업 입찰 참가제한 등의 행정처벌을 고려하고 있다.
"사고 우려 지역에는 안전전문 감리제 필요"책임감리제에 대한 보완으로 안전감리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이번과 같은 수몰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 사고 우려 지역에서 이뤄지는 공사에는 안전전문 감리 업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회 건설위원회 소속 오봉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책임관리제는 공사를 설계한 업체가 공사 감리를 맡아 공사 진행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설계 이외에 현장 감리에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책임 감리 외에 안전감리 업체를 따로 두면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다"며 "사고 우발 지역을 중심으로 안전감리 업체도 계약을 맺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