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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배가 딸이 타고 온 배-자동차 수출입 운반선
멀리 보이는 배가 딸이 타고 온 배-자동차 수출입 운반선 ⓒ 이경모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땐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오랫동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을 만나러 가면 목과 가슴이 뜨거워지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지난 11일. 내가 그랬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해운회사에 취업해 설 명절을 8일 앞두고 출항했다. 6개월이 다 되어 배에서 내리는 딸을 만나러 목포신항에 갔다.

사람이 만나고 싶거나 보고 싶은 마음이 애틋하고 간절할 때는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다. 먼 바다에서는 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런데다 이번에 딸은 3등 항해사(선장,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 다음 항해사)로 첫 출항이어서, 업무파악도 해야 하고 윗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전화나 문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40여 일 휴가를 받아 배에서 내리는 딸을 만나러 꽃다발을 준비해 목포로 가는 길엔 장맛비도 잠시 속살을 감추고 우리 가족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아빠 웬 꽃다발?"
"조금 늦었지만 딸 생일 축하하고, 무사히 항해 마치고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딸을 환영하는 꽃다발이야."

7월 1일이 딸의 생일이다. 생일날 미역국은 차치하고 통화도 할 수 없었다. 이런 특별한 날은 더 자식이 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미국에서 생일을 맞았다는 딸도 그날은 더 많이 가족이 그리웠단다. 가족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했다는 딸을 포옹하며 눈물이 찔끔 났지만 서로 뜨거운 포옹을 하며 삼켰다.

딸이 간호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해양대학에 입학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귀한 딸을 남자들도 힘들다는 배를 태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과 진취적인 생각을 했다며 누구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딸이 고2 때 항해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말을 해줬다. 그랬더니 인터넷을 뒤지고 해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선배를 찾아 자문을 얻고는 선장이 되겠다며 해양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번 출항 후 연락이 자주 되지 않을 때는 짠한 마음이 들어, 잠시였지만 해양대학교에 보낸 것을 후회도 하고 딸이 힘들어하면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아빠, 돈 벌기 힘들어요. 제가 번 돈이지만 아껴 쓸게요. 그리고 아빠 저 배 계속 탑니다."

배에서 내리면 회가 제일 먹고 싶다고 해 간 횟집에서 딸이 한 말이다. 출산을 하고 애를 낳지 않겠다는 엄마들도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출산 계획을 세운다.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는가. 먼 바다에서는 뱃멀미와 싸우며 그립고 고단한 일상을 바다에 많이도 버렸을 딸, 며칠 있다가 말을 해도 될 텐데 배를 타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오후. 띵동~ 문자가 도착했다.

1500만 원 입금했습니다.

딸이 보낸 문자다. 조카들 선물도 사고 할머니 용돈도 드리고 휴가 동안 쓸 돈을 남겨 놓고 몽땅 내 통장에 입금했다. 알토란 같은 돈이다. 장맛비에 훌쩍 커버린 가게 앞 율마(꽃말 : 성실함 침착함)처럼 몇 개월 만에 많이 큰 딸이 자랑스럽다. 팔불출이라고 해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첨단정보라인> 8월호에 싣습니다.



#이경모#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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