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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험활동을 다시 점검하여 조금이라도 안전사고에 우려가 있을 경우 취소하라.

최근 태안군 안면도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숨진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전국 시도 교육청에 내린 지침이다. 주무부처로서 사고대책본부를 꾸린 교육부에 딱히 기대한 건 없지만, 낡은 레코드판처럼 해마다 똑같은 얘기를 대책이랍시고 들어야 하는 일선 학교 교사들은 괴롭다.

안전 불감증과 인재. 모르긴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인명 사고든 결국엔 인재로 판명됐고, 그 원인은 하나같이 안전불감증이었다. 그때마다 말단 관련자 몇 명이 본보기로 처벌받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들끓었던 여론이 잦아들면서 이내 깨끗이 잊혀졌다. 이것은 안전사고에 대한 예외 없는 우리 사회의 '공식'이 됐다.

경험상, 서둘러 지침을 내린 교육부의 '복안'은 이런 것이다. 소나기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일단 학교 체험활동을 전면 중지시켰다가 여론의 추이를 봐서 시나브로 허용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지침이야 언뜻 그럴 듯하지만, 안전사고 우려가 없는 체험활동이란 사실상 없다는 걸 교육부가 모를 리 없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일 뿐이다.

이번 사고가 어디 체험활동 탓인가. 마치 교통사고가 자동차 때문이라는 듯, 교육부는 체험활동 프로그램 자체를 매도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전에도 학교 체험활동 과정에서 이번과 유사한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지 못했으면서, 애먼 체험활동만 탓한 채 관련 부서끼리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른바 '해병대 캠프'로 불리는 극기 훈련 프로그램은 몇 해 전부터 TV의 예능 프로그램 등이 인기를 끌면서 유행처럼 번진 학교마다의 대표적인 체험활동이다. 인근 군부대마다 대민 사업의 일환으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병영 체험이 있을 정도다. 나약한 아이들에게 호연지기를 키운다는 미명하에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교육'이 아닌 '사업'이 돼갔다.

'우후죽순' 사설 업체 방치할 때는 언제고...

[사설 해병캠프 참사] 친구의 빈자리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여했다가 친구를 잃은 충남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19일 학교로 돌아왔다. 함께 떠났던 친구를 두고 혼자 돌아온 한 학생이 텅빈 교실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설 해병캠프 참사] 친구의 빈자리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여했다가 친구를 잃은 충남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19일 학교로 돌아왔다. 함께 떠났던 친구를 두고 혼자 돌아온 한 학생이 텅빈 교실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닌데, 정부는 마치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이 돈벌이를 위해 우후죽순 생겨난 사설 업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청소년 활동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레저 활동 시설 관리 문제로 치부했고, 레저 활동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학생 교육활동 문제로 판단해 교육부 소관으로 여겼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 활동이므로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우선이고, 또 연간 학사운영계획에 따른 학교장 재량 하에 치러지는 행사이니 개별 학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늘 그래왔듯, 업체 담당자와 학교장, 그리고 인솔 교사들이 처벌받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장담하건대, 관련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 중에 이번 참사에 책임을 지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 중 도의적 책임을 느껴 자진 사퇴하지 않는 다음에야 기실 법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끔 돼 있는 탓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책임에 관한 '폭탄 돌리기'가 가능하도록 돼 있으니, 외려 '물러난 놈만 바보'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구청 공무원인 친구가 술자리에서 건넨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왜 '철밥통'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죽자 사자 밤샘 공부를 하며 승진에 목매다는 줄 알아?"라며 질문하더니 이렇게 자답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봉급만 많아지는 게 아니야. 권한은 커지는데 반해 책임은 줄어들기 때문이지!"

사후약방문 식의 호들갑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업체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것과 체험활동 교관이 전문성 없는 무자격자라는 사실, 방학 즈음이면 업체들의 허위 과장 광고가 판을 치고 영업사원들의 학교 방문이 줄을 잇는다는 등의 소식이 연일 터져 나온다. 정부든 언론이든, 지금 관심의 반의 반만이라도 사전에 보여주었으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이때, 국방부는 생뚱맞게 '해병대 캠프'라는 명칭을 아무나 사용할 수 없도록 상표 등록을 검토하겠단다. 해병대라는 이름을 팔아 체험활동 사업을 하는 영세업체들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일 테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일 수는 없을 터, 되레 '해병대'라는 이름을 더럽히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닐는지. '조직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그들이니 말이다.

방학을 '대목'으로만 여기는 이에게 아이들 맡겨온 것 

거듭 강조하거니와 체험활동은 죄가 없다. 외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딱딱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책과 씨름해야 하는 가엾은 아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유일하다시피 한 '탈출구'다. 방과 후 수업에다, 방학 때마저 학교에 나가 수업을 받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취소시키기는커녕 더욱 권장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우선 '옥석'을 가려야 한다. 방학 때 잠깐 문을 열었다 닫는 영세업체들에 대해 인허가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사후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이 나서서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는다면, 학교는 업체와의 계약에 있어서 허위 과장 광고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저 방학을 '대목'으로만 여기는 그들에게 소중한 아이들을 맡길 순 없잖은가.

무엇보다도 우리 교사들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쓰라린 고백이지만, 지금껏 외부 업체에 위탁한 체험활동의 경우, 교사들에겐 휴가와 다름없었다. 학교에서 해당 장소까지 인솔은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교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업체 입장에서는 교사가 아이들 대열에 끼어있으면 불편하고, 교사도 굳이 함께하길 원하지 않는다. 업체와 교사가 서로를 '배려'하는 셈이다.

이러한 관행은 뿌리가 깊다. 이번 해병대 캠프와 같은 체험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청 단위의 단체수련활동과 심지어 수학여행까지도 아이들과 교사들이 '분리'되기 일쑤다. 듣자니까 일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는 늦은 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따로 야간 순찰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체험활동은 교육적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고 만다. 언제부턴가 학교는 수업이나 체육대회 등 학교 울타리 내에서 실시되는 교육을 제외하곤 모두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겉으로는 그들의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실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학교의 '조심스러운' 태도 탓이다.

외부 체험활동을 '휴가'로 여긴 교사들도 반성해야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지난해 학생회 임원 24명과 함께 지리산 종주 코스를 완주했다. 지금 고3 수험생이 된 그들은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지난해 학생회 임원 24명과 함께 지리산 종주 코스를 완주했다. 지금 고3 수험생이 된 그들은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 서부원

체험활동이든 뭐든 교육에 관한 한 '전문성'의 몫은 교사여야 한다. 그들에게 빼앗긴 '전문성'을 되찾아 와야 한다. '전문성'이라는 게 별 건가. 아이들과 늘 함께하려는 마음가짐이면 족하다. 이번 참사에서 보듯, 외부 업체에 교육을 일임한 채 마음을 놓아버린 게 인솔 교사들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뿌리 깊은 관행이었을지언정, 교사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사족 하나. 필자는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 등반을 해온 40대 교사다. 십여 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학교장과 선배 교사들로부터 위험하고 무모하다며 반대했다. 희망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고, 대피소 예약부터 응급처치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나 역시 두려웠다.

기꺼이 등반을 함께하겠다는 몇몇 동료 교사와 졸업생들이 있어 첫 번째 도전을 무사히 마치고, 완주 경험이 한 해 두 해 쌓여가다 보니 이제는 어엿한 '관행'이 되었다. 어느덧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칠 때 '반대'는 사라지고 '격려'만 남았다. 아이들도 3년 동안의 학교생활에서 맨 먼저 떠올리는 건 예외 없이 지리산에서 땀 흘렸던 기억이다.

지리산 종주 등반을 지금도 반대하는 한 선배 교사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안전사고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누구 한 명이라도 죽거나 다친다면 모든 책임을 자네가 뒤집어쓰게 될 걸세.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교육은 어디까지나 결과야. 결과에 따라 열정인지, 만용인지가 정해지는 거야. 괜한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상수지."

진심으로 후배 교사를 걱정해주는 말이었다. 그 조언을 이해할 순 있지만, 동의할 순 없었다. 그래서는 현실이 조금도 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리라 믿는다. 아울러, 정부와 교육청에 거듭 당부한다. 이번 참사로 체험활동의 교육적 가치가 결코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해병대 캠프 사고#학교 체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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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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