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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1일 오후 5시 30분]

전두환 전 대통령은 29만원 밖에 없어서 추징금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정의의 문제라며 <왜 나만 갖고 그래?>특별전을 여는 이하씨의 그림.
 전두환 전 대통령은 29만원 밖에 없어서 추징금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정의의 문제라며 <왜 나만 갖고 그래?>특별전을 여는 이하씨의 그림.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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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비자금 환수 촉구를 위한 특별전 '왜 나만 갖고 그래?'가 열린다. 전시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20일 방문한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서울 서교동) 사무실 겸 전시실 '룰루랄라'에서는 점심을 거른 작업팀들이 땀을 흘리며 작업하고 있었다.

비좁은 전시 공간! "왜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전시회를 여는가?"에 답은 질문하는 내가 더 잘 안다.

"찾아간 갤러리마다 전시회 계획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핑계를 댑니다. 하는 수 없어서 민예총 사무실을 빌렸는데 작품을 다 전시할 수 없어 계단에까지 작품을 걸고 있습니다." 

타락한 정치인들을 고발하는 화가 '이하'

전시회를 여는 작가인 '이하'씨는 본명이 '이병하'다.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미국인들이 '병하리'라고 부르는 게 싫어 예명을 '이하'로 썼다. 서양에서는 성이 뒤로 가고 이름이 앞으로 오기 때문에 '병하리'지만 '병아리'로 들려 싫었기 때문이다.

작품 전시 중인 이하씨가 포즈를 취해줬다
 작품 전시 중인 이하씨가 포즈를 취해줬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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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을 할수록 길어진다는 의미를 빗댄 이하씨의 그림
 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을 할수록 길어진다는 의미를 빗댄 이하씨의 그림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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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호리한 몸매에 착한 얼굴은 마음씨 좋은 시골농부 같은 인상이다. 인상만 봐서는 도저히 이런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은데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도 공간이 부족해 못 걸 만큼 그림이 많다. 순하디 순해 보이는 얼굴 어디서 저런 결기가 나오는 걸까?

이하씨는 2012년 12월 4일 투표독려 포스터를 부착했다. 그 후 문재인 & 안철수 포스터를 시작으로 일본대사관에 독도 및 정신대 항의 포스터를, 부산 시내에 박근혜, 연희동 일대에 전두환, 종로에 노무현, 종로2가에 박정희 & 김정일, 종로 일대에 이명박 포스터를 부착했다.

이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총 9번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2번 기소돼 7번의 재판을 받았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건 범죄가 아닙니다.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대답한다.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독사과를 그려 파문을 일으킨 이하씨의 작품도 전시된다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독사과를 그려 파문을 일으킨 이하씨의 작품도 전시된다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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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씨가 그린 이명박 전 대통령 작품. 무슨 의미일까?
 이하씨가 그린 이명박 전 대통령 작품. 무슨 의미일까?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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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며 거리에서 작품발표를 하는 것은 예술가의 몫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풍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풍부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의 재능을 쓰고 싶습니다."

그에게서 정치 풍자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를 들었다. 대학시절 평점이 2.16으로, 꼴찌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노가다' 판을 전전했다. 인테리어 일을 해보니 계속 일이 들어왔고 중간관리자인 십장이 돼 사람들을 불러 일하는 동안 돈도 꽤 벌었다.

막노동 일을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정말 타락했다는 것. 이 타락한 세상에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가 이들보다 더 타락하든가 아니면 이 게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되어 살든가" 타락과 타협하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그건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월이 가며 깨달음이 왔다. 이 타락의 근본은 정치라는 것. 타락한 정치가 그 사회에 타락의 메시지를 준다. 양심이나 정의가 아니라 권모술수와 불합리가 잘 사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선생들은 제자들에게,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타락한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선, '선빵'을 맞기 전에 먼저 선빵을 날리라고 교육하고, 착하게 살지 말라고 가르치고, 힘있는 자에게 고개 숙이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인생이 아닌, 세상이 만든 인생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독재자 시리즈에 이하씨가 그린 김정일
 독재자 시리즈에 이하씨가 그린 김정일
ⓒ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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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자신의 영혼을 가꾸기보다 외모만 열심히 가꾸고, 얼마나 멋진 일을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를 고민하는 싸구려 인간이 되어간다. "이 모든 싸구려 자본주의 세상의 근본엔 바로 싸구려 정치가 있다"는 이하씨는 "이 타락한 세상을 '엿먹이기' 위해 정치인들을 주로 그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뭔가는 그리지 말라는 법,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예술가의 당연한 권리를 지나친 법의 잣대로 판단하고 범죄자 이미지를 덧씌워 정치 풍자를 못하게 하는 건 상식이 아닙니다. 예술가에게 표현 형식이나 내용, 재료, 소재는 예술가의 선택의 몫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선택해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죠. 무엇은 그려도 되고 뭔가는 그리지 말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법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당한 법과 싸워 이겨야 우리 사회와 후대 작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토대가 마련된다고 믿는 그는 "예술가는 누구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독일 <슈피겔>지와 미국 <월스트리트>지에도 실렸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에 빠졌던 시절 한국을 찾은 외신기자들이 그를 찾아와 정치풍자 그림들을 촬영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 현실을 비판했다.

2013년 6월 1일 독일 슈피겔지에 게재된 이하씨의 작품. 남북이 긴박한 상황까지 갔던 한반도 상황과 표현의 자유가 억업된 한국 상황이 소개됐다고 한다. 오른쪽 아래는 이하씨의 사진이다
 2013년 6월 1일 독일 슈피겔지에 게재된 이하씨의 작품. 남북이 긴박한 상황까지 갔던 한반도 상황과 표현의 자유가 억업된 한국 상황이 소개됐다고 한다. 오른쪽 아래는 이하씨의 사진이다
ⓒ 슈피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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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려는 찰나에 이씨가 내손을 붙잡고 자신이 추진할 차기 작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다음에는 DMZ에서 나오는 철조망을 용접해 DMZ에 사는 동물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DMZ에 세우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한반도의 비극과 정치, 사회문제의 근본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하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가 의미하는 것은 한반도의 발전을 위해 남북한의 통일 또는 화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예술을 하고 싶고 그래서 처벌을 받는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이하씨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산이 되어야 하고 하늘이 되어야 한다. 수도승 같은 철학자가 되어 세상의 발전에 꼭 필요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끝을 맺었다. "외롭지만 이 길이 내 자신의 운명이고 내 자신의 인생"이라는 그의 말에서 결연한 의지를 엿본다.

공간 룰루랄라(02-739-6851~2)에서 전시되는 그의 모든 작품은 전시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 경매를 통해 판매한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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