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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새로운 마을만들기 즉, 마을공동체가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에서 지향하는 이념이나 추구하는 삶에 대한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좋은 공동체의 모델이 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소외'를 만들어내는 부작용도 있었다면, 지금의 마을 만들기는 동네에 삶의 기반을 둔 주민들 모두가 함께 어울렸던 옛날의 시골장터와 같은 흥겨운 놀이를 기반으로 하여 각 개인의 재능을 마을안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방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의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새롭게 마을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복지'가 결여된 사회문제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주의를 쫒느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정(情)을 되찾자는 의미도 될 것이다. - 기자 말

서울시 영등포구의 영등포희망동네네트워크(이하 영희네)에 취재요청 전화를 걸었을때 이용희(39, 이하 용희씨) 운영위원장은 고민하는 듯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틀째에도 연락이 없었다. 영희네 카페에 들어가서 취재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그가 왜 머뭇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영희네는 준비모임을 거쳐 작년 9월에 (아직 정식으로 단체등록이 안 되어 있다) 발족되어 이제 첫 걸음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다.

"마을 이야기가 나와야 할텐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까 봐서요."

짐작한 것처럼 그는 아직 특별히 보여줄 게 없다는 듯 취재요청이 부담스러웠던 속내를 먼저 꺼냈다. 문래역에서 만나 아파트단지로 둘러 쌓여가는 문래동의 철공소가 밀집한 공장지역으로 들어섰다.

주변 골목골목에는 아직 사람이 사는 집들이 남아있다.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떠날 사람들은 떠난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가진 사장들과 언제부터인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래동예술촌'으로 부르기도 하는 문래동 58번지 일대는 사진을 찍는 이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문래동 철공소지역의 한켠에 자리잡은 공방사무실은 주민을 위한 강좌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문래동 철공소지역의 한켠에 자리잡은 공방사무실은 주민을 위한 강좌나 사랑방 역할을 한다. ⓒ 오창균

영희네는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매달 한 번씩 만나 밥을 먹는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영등포지역에서 각자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마을 활동을 해보자는 제안으로 시작해서 떠밀리듯 모임의 대표(운영위원장)가 되었다는 용희씨. 그는 영등포구의 20여개 단체가 들어와서 각 사업분과별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거품(?)이 있다면서도 젊은 사람들의 의욕에 기대를 걸고 있다.

용희씨가 이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지역과 비교를 해보니,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들이 영등포에는 없었다고 한다. 시민운동의 불모지라 불릴 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지원조직없이 가야 하지만 그 안에서 활동가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이다.

상근자 없이 15명의 운영위원회를 두고 매달 두차례 회의를 하면서 마을사업을 기획하고 지역의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구청에도 기획서를 내서 마을디자인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마을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니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관계망(영희네)으로 해서 만나게 된다.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마을에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내부평가에서도 마을에 대한 생각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

상시적으로 열린 교육공간이 마을이라는 그는 수시로 마을의 주민자치위원회, 지역아동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다른 지역의 사례도 들려주면서 적극적으로 마을만들기에 동참하기를 독려한다. 그렇게 해서 작은 골목공동체와 축제들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작년 제2회 영등포서로살림마을축제가 열린 문래공원
작년 제2회 영등포서로살림마을축제가 열린 문래공원 ⓒ 영희네

작년 가을에도 주민들의 참여가 높은 마을축제를 해냈다. 인터넷 지역카페에 글을 남기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자 주부들이 나섰다. 단체의 성격을 몰라서 미온적이던 구청도 마을사업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자 문래공원에 행사장을 내줬다. 주민들이 섞일 수 있는 장터를 만들고 싶었던 기획대로 마을축제는 성황리에 잘 되었다. 특히, 벼룩시장과 먹거리장터의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경계는 명확하다. 내게 필요한 일이면 적극적인데 그렇지 않으면 참여율이 떨어진다. 마을행사에 자주 참여하여 얼굴을 익히다보니 믿고 참여하는 주민들이 생겨났는데 그 와중에 이사를 가버려서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만, 새로 이사온 주민들을 이끌어내는것도 마을에서 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마을축제와 같은 큰 행사를 하려면 인력도 필요하지만 운영비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영희네는 행사와 관련된 역할을 조정해주는 일과 접착테이프 구입에만 돈을 썼다. 접착테이프로 행사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자리 표시를 해준 것이다.

나머지는 참여자들 각자가 알아서 천막을 치거나 돗자리를 깔았다. 행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부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 컸다며 엄마들이 마을만들기에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장터 수익금은 후원금이 되어서 미혼모돕기단체에 기부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는 모임도 만들어졌다.

- 주민들의 참여를 더 이끌어내기 위해서 구청에 협조를 구하는 부분이 있는가.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 하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구청에서는 잘 모르는것 같다. 새마을부녀회 같은 단체에서 하는 바자회 행사에는 지원하는데 전체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는 행정이 아쉽다."

- 마을만들기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재능을 살릴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문래동만의 특징을 살려보고 싶다. 기계를 만지고 철공을 해온 20~30년의 기술자와 예술가의 재능을 주민들과 함께 생활 속에서 녹여보는 일들이다."

작년에는 시범사업으로 적정기술을 활용한 난로 만들기에 예술가와 철공기술자들이 힘을 보탰다. 올해는 어느 작가가 로봇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작가들이 그림으로 도면을 만들어 내고, 철공기술자들이 만들어주는 일처럼,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있다.

 폐업을 한 정다방에서 마을만들기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폐업을 한 정다방에서 마을만들기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오창균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문래동에서 작가들과 주민들이 어울리는 큰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어울렸던 자리들이 밖으로 알려질 때는 거품이 있었다며 모두가 참여하는 한마당이 마련되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자리를 옮겨 지하에 있는 '정다방'으로 내려갔다. 다방이 폐업한 장소에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정다방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고, 그것이 마을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현재 정다방은 전시나 파티공간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무료로 대관도 해준다.

 정다방 안에서는 작가들의 작품전시회나 파티장소로 이용된다.
정다방 안에서는 작가들의 작품전시회나 파티장소로 이용된다. ⓒ 오창균

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용희씨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을 즐겨보다가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던 일을 찾다가 지금의 마을 일을 하게 됐다. 재미있다고 한다. 두 아이를 둔 그의 생활경제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 용돈 정도는 벌고 있는데 가정에는 도움을 못 주고 있어서 가정파탄이다. 하하….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해외여행도 다니고 중산층에 대한 꿈을 이어갔을 것이다. 아내가 가정경제를 맡고 나는 가사일을 한다. 역할이 바뀌면서 권력이 바뀌더라."

아내의 눈치도 본다는 그는 가정경제에 대한 고민보다는 동네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역할이 되었다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육아와 집안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한두 번 큰 풍파가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한다.

 영업을 하는 다방으로 알고 오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커피를 내준다는 이용희 운영위원장(오른쪽)
영업을 하는 다방으로 알고 오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커피를 내준다는 이용희 운영위원장(오른쪽) ⓒ 오창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어른들 위주의 마을만들기에서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마을축제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의 학교동아리와 지역아동센터 등 모두가 공유하는 일들을 벌여보고 싶다는 그는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그것이 마을 안에서 청소년-청년-어른으로 순환되는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의 모델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영등포희망네트워크(영등포마을넷) http://cafe.daum.net/yd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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