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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여 일, 철탑농성을 하고 있는 최병승 하청노동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280여 일, 철탑농성을 하고 있는 최병승 하청노동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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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전주에서 출발하는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울산으로 떠났다. 올 초 현대차 봉쇄의 날 이후 처음으로 찾는 울산 현대차 철탑이다. 작년 가을, 희망을 찾고 동지들에게 용기를 주겠다면서 선택한 최병승·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이 277일 차, 추운 겨울을 지나 이제 폭염의 여름이다.

전깃줄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도 철이 지나면 제집을 떠나 강남으로 가는데, 이들 노동자들은 계절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다. 말은 희망버스였지만, 내가 이 버스에 승차하여 취재를 결심한 이유는 이처럼 변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며 느낀 답답한 마음에서였다.

2004년 노동부는 울산 101개 업체, 아산 14개, 전주 12개 하청업체는 현대차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대법원도 2010년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현대차 하청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2년 다시 같은 건으로 대법원은 현대차 불법파견을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노동위원회에서도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은 계속됐다. 노동과 법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의 이 같은 결정에도 현대차 불법파견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20일 오후, 경찰은 철탑농성장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으로 가는 길목을 막았다. 결국 희망버스는 예정된 장소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다.
 20일 오후, 경찰은 철탑농성장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으로 가는 길목을 막았다. 결국 희망버스는 예정된 장소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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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를 구속하라" 손 피켓.
 "정몽구를 구속하라" 손 피켓.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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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대차가 희망버스를 맞이하는 태도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컨테이너 일명 '몽구산성'은 견고했고, 현대차 관리자들과 직원들은 숙달된 듯 쇠철 펜스에 일렬로 늘어선 채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출동 태세를 갖춘 경찰력과 세트로 따라오는 살수차는 요지마다 대기하고 있었다.

현대차 희망버스 이후 주류언론들의 시선을 보면 노동자의 투쟁에 대응하는 기업과 경찰의 이 매뉴얼 같은 태도에 너무도 익숙해 분노를 모르는 것 같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마치 범죄인처럼 대하는 이 태도를 10년 가까이 봐왔지만, 지금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결국 충돌은 이 상황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는 말을 신뢰하는 나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이 기업과 경찰의 몸짓이 결국 노력자들을 분노케 한다. 결국 모든 집회에서 기업과 경찰의 이 태도가 충돌을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차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현대차 관리자와의 충돌은 일어났다. 민주노총 결의대회 장소인 현대차 정문은 이미 봉쇄됐고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를 뚫으며 정문에서부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있는 명촌사거리까지 오고 있다는 소식이 현장에서 들렸다. 명촌사거리에서 정문까지 약 30분 거리를 행진으로 가려 했던 희망버스 참가자들도 경찰의 봉쇄로 사거리에서 발이 묶였다. 결국 예정된 결의대회는 명촌사거리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와 국가의 침묵이 더 큰 폭력"

20일 늦은 저녁에 열린 희망버스 문화제
 20일 늦은 저녁에 열린 희망버스 문화제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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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어르신의 눈물, 희망버스는 탄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모였다.
 밀양 어르신의 눈물, 희망버스는 탄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모였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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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우리는 현대차를 만드는 00실업 하청노동자가 아니라 현대차가 고용한 노동자'라는 10년 전부터의 외침은 이날도 부정당한 것이다.

이날 결정적인 충돌은 명촌사거리와 불과 50m 떨어진 중문에서 벌어졌다. 관리자들은 소화기와 물대포를 분사했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이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일부 관리자들은 다 쓴 소화기를 참가자들에게 던졌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의 침묵과 가까운 행보에 희망버스 참가자들도 분노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불법파견을 호소하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수백억 원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렸고, 200여 명의 조합원이 해고됐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희망보다 몸서리쳐지는 절망을 느끼고 분신, 자살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현대차의 대응은 침묵에 가까웠고, 관계당국은 적절한 해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 하청노동자와 촉탁계약직 노동자의 죽음과 10여 년의 시간 동안 침묵에 가까운 현대차의 불법파견. 누군가 나서야 했다.

현대차 희망버스는 이 지점에서 기획된 것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이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기획단은 희망버스 출발과 함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라는 구체적인 요청을 한다. 이 요청은 원래 국가의 몫이다. 불법파견 문제 해결에 대해 최소한 희망버스와 만나 입장을 밝히라고 말했다. 그들은 말했다.

"하청노동자의 자결은 자본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살인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일명 '몽구산성'으로 그 답을 대신 한 듯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당시 수만 명 시민의 분노와 절규에 MB가 답했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 불법과 불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현대차의 태도, 차별에 침묵하는 정부. 진짜 폭력은 바로 이들이 아닐까? 

"더불어 살기 위해 우리는 함께 투쟁한다"

철탑에 걸린 현수막
 철탑에 걸린 현수막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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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문화제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박준 노동가수의 '노동은'을 합창했다.
 희망버스 문화제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박준 노동가수의 '노동은'을 합창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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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부터 무박 2일로 진행된 현대차 희망버스의 백미는 현대차 희망버스 문화제였다. 2시간 이상 진행된 문화제는 최병승·천의봉 하청노동자가 280여 일 철탑농성을 벌이고 있는 명촌주차장에서 열렸다.

멀리 일본 오사카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7년째 주민들을 이간질하며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정지 강정마을 주민, 수십 년 일궈온 땅에 송전탑이 무단으로 들어와 고통 받고 있는 밀양 할매들, 경찰의 폭력진압에 가족을 잃은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착취 받은 이들이 철탑 앞에 모여 서로 힘과 용기를 공유했다.

"밀양 할매들의 논과 밭을 강탈하고 송전탑을 짓는 것처럼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강탈하는 것."
"국정원의 정치 개입만이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자리(현대차 송전철탑)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탄압하는 것도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것."
"우리들의 투쟁과 희생은 더불어 살기 위한 투쟁이다."
"노동자의 투쟁은 외롭고 힘들지만 많은 응원과 관심이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마음에는 국경이 없다."

왜 5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는지 그 답을 그들은 이렇게 내렸다. 희망버스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 강탈당한 이 땅의 비정규직의 외롭고 힘든 싸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다.

특히 5년 이상을 불법파견 철폐와 사내하청 폐지를 위해 280여 일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천의봉 노동자. 그들에게 묵묵히 밥을 올리고, 신변을 보호하며 지키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 불법파견에 대한 현대차의 침묵에 10년 동안 항거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이들에게 더욱 간절하고 필요한 응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곳에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어렵게 철탑 농성을 좀 더 하기로 결심한 첫 날, 고 박정식 열사가 돌아가셨다. 영정 앞에 술 한 잔 못 따르는 내가 미웠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을 잊기 위해 발버둥도 쳤다."

10년간 때론 맞기도 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워가며 고생을 함께 나눴던 동료의 죽음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순간 만큼 절망적인 순간도 없다.

"희망버스는 절망버스가 아닌 믿음버스."
"왜 우리만 슬퍼해야 하나? 스스로 무기력과 야만적 폭력 앞에 주저해야 하나? 죄 없는 노동자가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문화제 마지막에 철탑 위 최병승 하청노동자는 이렇게 절규했다. 왜 이 사회는 불법을 자행하는 현대차에 침묵하고 이에 대항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불법이라며 경찰을 투입하고 경비용역을 동원하는지. 최병승 하청노동자의 절규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절규는 '희망버스'를 '절망'과 '폭력'으로 표현하는 보수언론들과 대규모 형사처벌을 검토하는 경찰, 희망버스는 기획된 폭력이라고 흥분한 자본가들에 대한 외침이었다. '절망'과 '폭력', 이 두 단어는 10년째 자행되는 현대차의 불법과 이를 묵인하는 사회에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이 미친 세상을 버티려면 우리 먼저 자책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동지를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을 착취하고 불법을 자행한 정몽구다... 열사가 원한 꿈과 희망을 쟁취하자. 나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자. 동지들 죽지 말고 살아서 승리하자." 

최병승 하청노동자의 발언이 끝나고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노동자들은 모두 '노동은'을 부르며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밤 기사를 다 쓰고, '희망버스'에 관한 기사들을 살펴봤다. '절망버스', '폭력버스'라는 언론들의 비난에 가까운 표현들로 '희망버스'를 폄훼했다.

문화제에서 눈물을 훔치며 서로의 고통을 보듬고 자본과 국가라는 거대한 기관의 탄압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수 언론들의 기사를 보고 난 '희망버스'를 '믿음버스'와 '나눔버스'로 새로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들이 보지 못한 눈물을 기록하기에는 '믿음'과 '나눔'처럼 좋은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고독한 현실의 '절망' 앞에서 서로 고통을 나누고, 민중에게 혹독한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현대차 희망버스 기획단이 현대차(주)에 보낸 공문
 현대차 희망버스 기획단이 현대차(주)에 보낸 공문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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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투쟁은 서로 함께 살기 위한 것이라는 강정마을 주민의 이야기에서부터 참 모진 세상이지만 벗이 있고, 나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으며, 수천 수만 가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기에 세상을 등지기 싫다는 하청노동자의 말까지 이들 모두는 민중에게 힘겨운 삶을 함께 살아가며 바꾸자고 말하고 있다.

저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희망버스'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본능적인 생존방식이다. 보수언론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로 표현하며 시동을 끄고자 하지만, 본능은 원래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 희망버스'를 멈출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정몽구 회장이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그동안의 착취를 사과하고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희망버스,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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