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4일 오후 2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89개국 가운데 24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핵심적으로 만족해야 할 욕구들이 얼마나 채워졌는가를 따져보면 83위예요."순간 좌중은 술렁였다. 23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포럼- 행복사회: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참석한 시민 약 80명은 경제 규모와 너무 큰 차이를 나타낸 순위에 놀란 기색이었다. (관련 영상 보기 :
<2013 오마이포럼> 최인철 '행복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실천과제',
<2013 오마이포럼> 종합토론과 오마이뉴스의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 만들기)
최인철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소장(심리학과 교수)이 언급한 '핵심 욕구'는 ▲ 얼마나 존중받는가(존중) ▲ 성장하는 느낌은 있는가(성장) ▲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나(자율성) ▲ 잘하는 일을 했는가(유능감) ▲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관계) 등 크게 다섯 가지다. 그는 "이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기분이 좋은 정도'는 58위, '나쁜 기분을 느끼지 않는 정도'는 77위였다"며 "(경제 규모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우리 상황은 한 마디로 '일은 잘 하는데 기분은 안 좋다'"라고 정리했다.
일만 잘 하는 한국 사회는 과연 행복할까? 이날 오마이포럼 발표자 대부분은 한국이 행복사회로 나아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여러 행복지수를 종합해 보면 한국은 행복도가 떨어지는 편"이라며
"소득·경제가 안정적이며 평등하고 기회가 열려 있는 데다 정의롭고 (구성원끼리) 서로 믿을 수 있어야 사회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특히 "복지 지출을 늘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노동시장 안에서 임금 격차를 낮추고 실업 안전망을 갖추는 일과 정치 개혁, 정부가 국민에게 '일 잘하고 효율적인 정부'란 믿음을 심어주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이 즐겁고, 정부가 믿음직한 '행복사회'... 덴마크, 스웨덴, 독일은?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은 나라는 이러한 요건들을 갖추었다. 이날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이창곤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장, 김택환 경기대학교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각각 덴마크와 스웨덴, 독일 세 나라의 행복 비결을 소개했다.
오연호 대표는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 덴마크에 다녀왔다. 덴마크는 여러 통계에서 대체로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하는 곳이다. 오 대표가 찾은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자유와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었다. 그는 "덴마크 초등학교는 9년 과정인데, 7학년까지 시험도, 등수도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또 병원 진료비가 전액 무료고 실업급여가 나오는 등 사회시스템이 기본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덴마크는 택시기사와 의사가 함께 어울릴 만큼 사회가 평등하고, 사람들이 '정부는 사회 복지를 위해 일한다'는 신뢰가 있어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며 "사회 전체가 거대한 이웃 공동체"라고 덧붙였다.
이창곤 소장이 2012~2013년 직접 본 스웨덴의 모습도 덴마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웨덴은 평화적 노사협의와 좌우 상생을 바탕으로 보편적 복지를 구축한 행복사회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실업률이 늘었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노조의 힘은 이전보다 약해졌다. 또 사민당의 영향력이 떨어져 2006년 이후 계속 우파연합정당이 집권 중이고, 공공시스템은 점점 민영화하는 등 여러 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 소장은 스웨덴을 마냥 이상향으로 그리기보다 "사회가 어떻게 도전을 타개해 나가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택환 교수는 행복한 한국을 만드려면 독일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나온 경제민주화와 사회보장, 일자리와 성장, 평화통일 이 네 가지를 해결한 곳이 독일"이라며 "독일을 제대로 뛰어넘으면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도 뛰어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일이 강할 수 있던 힘은 보수주의자들도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내걸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연대의 원칙이 진짜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발표자들이 소개한 덴마크와 스웨덴, 독일의 행복비결을 정리한 것이다.
[오연호] "행복한 공동체 덴마크, 자유·안정·평등·신뢰 등이 비결"
덴마크 행복비결의 첫 번째 키워드는 '자유-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이다. 교육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6월 말에 한 공립학교에 갔다. 덴마크는 초등학교가 9년 과정인데, 그곳 교장이 '우리는 7학년까지 시험이 없다, 성적이 좋다고 칭찬하지 않고 공부를 못해도 칭찬한다, 학교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고 즐겁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최대 목표'라고 하더라. 덴마크의 행복은 학생들이 행복한 데에서 온다. 대학을 안 가도, 공부를 못 해도 걱정이 없다.
두 번째는 '안정'이다. 병원 진료비 전액이 무료고, 실직하면 사실상 4년 동안 정부에서 급여를 준다. 사회시스템이 '기본'을 보장한다. 안정은 회사에도 있다. 덴마크에서 제일 행복한 회사로 뽑힌 '로슈'에 가보니 회사에서 매일 직원들에게 과일을 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족 수에 맞춰 포장한 저녁식사를 제공하더라. '가정이 편해야 회사에서 잘한다'는 시스템이다. 한국에 돌아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직원들과 대화하게 됐다.
그 다음은 '평등'이다. 제가 그곳에서 '행복학'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여기서 분당 가는 데 30만원 나오는 꼴이라 굉장히 불행했는데(웃음) 그 기사와 얘기하며 행복해졌다. 어디 가서 행복론을 강의해도 부족하지 않겠더라. 또 오늘 <오마이뉴스>에 실린 식당 종업원분의 경우 자신의 직업을 정말 자랑스러워했는데, 열쇠수리공인 아들 직업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고 했다. 더 감동적이었다.
네 번째 키워드는 '신뢰'였다. 덴마크에서는 소득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다. 거의 대부분 불만이 없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선배들이 낸 세금으로 대학 공짜로 다니고 병원비 부담 안 했다'고. 가장 적게 내는 편인 택시기사도 수입의 36%를 납세한다. 그만큼을 우리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대단한 발상이다.
그리고 덴마크는 사회가 거대한 이웃공동체였다. 신뢰로 짜여 있다. 이 나라는 독특하게 1학년부터 9학년까지 같은 반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관계가 얼마나 진하겠는가. 또 코펜하겐 직장인의 35%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한 가족은 5명인데 자전거만 9대라고 했다. '환경'이 마지막 키워드다.
[이창곤] "스웨덴 복지, 저무는 것이 아니라 도전에 대응 중"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에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세미나를 열고 현지 기관을 방문해, 실제로 복지천국인가, 우리가 책이나 논문 등에서 본 스웨덴식 복지모델이 여전히 그러한가 살펴봤다.
한국에서 스웨덴 복지모델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한겨레>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쓰는 게 다르다. 좌파는 '복지와 경제성장이 양립하는 모델은 스웨덴만한 곳이 없다'고 하고, 우파는 '재정이 파탄난, 저무는 복지국가'라고 말한다.
실제로 스웨덴이 어떤 고민과 골칫거리, 도전에 휩싸여 있는지 봤다. 우선 큰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복지모델 전성기에 3%대였던 실업률은 이제 8%대로 높아졌다. 불완전노동이 늘었다는 뜻이다. 경제 위기에 비유럽권 이민자 실업이 늘어나고 대도시 슬럼화 등이 원인이다. 지난 5월엔 스톡홀름에서 폭동이 일어나 자동차 100여 대가 부서졌다. 많은 보수언론에서 '스웨덴 복지는 저무는 것 아니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근거로 썼다.
또 하나 고민은 노조의 약화다. 노사 대타협인 '살트쉐바덴 협약'은 복지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1999년 80.6%에 달했던 스웨덴의 노조가입률은 2009년 68.4%로 떨어졌다. 이것은 힘의 균형이 상당히 깨졌다는 뜻이다. 스웨덴 노총(LO)는 "그럼에도 높은 조직률"이라며 "정권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노동운동을) 방해했고 현 정권(우파정부가)이 실업급여제도를 상당히 파괴했다, 이젠 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친(親)복지정당, 사회민주당의 영향력도 떨어졌다. '인민의 집'이란 개념으로 스웨덴 모델을 형성하고 성장시켜왔는데 1991~1994년에 이어 2006~2013년 우파연합정당이 집권했고, 사민당 지지율조차 30%대로 떨어졌다. 유권자 구성이 변했고, 또 우파정당조차 '친복지, 친노동'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국민행복'을 내세웠다. 우파정당도 '우리가 사민당보다 복지를 더 잘 할 수 있다'며 이념보다는 집권에 더 무게를 둔 모습이다.
또 다른 중요한 고민은 '민영화'다. 보육, 노인요양서비스 등 공공시스템이 점점 민영화, 시장화하면서 많은 힘이 민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복지재가 시장화해 있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데에 원천적 어려움이 있는데, 스웨덴의 경우 민영화 분야가 점점 커지는 중이다.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인 개방경제체제에서 어떻게 지속성장하는가도 중요한 고민거리다. 지금 스웨덴 모델은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스웨덴 모델이 여전히 건재한 까닭은 성장률이 좋고 국가부채가 적고, 지니계수가 낮아서다. 결국 스웨덴 모델은 하나의 고정된 것으로 봐선 안 된다. 경제사회적으로 도전에 계속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스웨덴이 어떻게 응전하느냐를 훨씬 더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스웨덴 정치사회가 거센 도전에 어떻게 응전, 타개해 나가는지 구체적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김택환] "경제민주화, 사회 보장 등 한국의 시대정신 해결한 곳이 독일"
독일은 원래 전쟁의 나라, 또 최근 150년 동안 가장 창의적이면서 미친 나라였다. 나치즘 등 별별 체제를 다 경험한 곳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유럽연합(EU)'란 새로운 모델을 만들 때 그 중심에 독일이 있었다.
왜 독일인가.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나온 경제민주화, 사회 보장, 일자리와 성장, 평화통일 이 네 가지를 그나마 해결한 곳이 독일이다. 2차대전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독일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라인강의 기적이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후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냉대를 당해 차관도 못 받았다. 그런데 독일에서 첫 차관을 받았다.
우리가 독일을 제대로 뛰어넘으면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도 다 뛰어넘지 않을까. 오늘날 독일은 실업률 4%, 경제성장률 2.5%, 경상수지 1위 국가다. 일확천금이나 한탕주의가 거의 없다. 부동산 투기가 없고, 일반인들이 주식투자를 거의 안 한다. 국민의 5%인 40만 명 정도만 한다. 또 신용카드 말고 직불제카드를 사용하는 비율이 93%에 달한다. 우리는 다 빚쟁이다. 신용카드도 많이 쓰고.
독일 통일 때 현장에 있었다. 통일을 하려면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였다. 특강 할 때마다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데 정치지도자다. 2차대전 이후 안정적인 정치시스템을 만든 데에는 리더가 있었다. 콘라트 아데나워,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게오르그 키징거,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등 전후 집권한 총리 8명 모두 현실주의자며 개혁정치가였다. 이들 모두 본인이나 자녀, 친인척 가운데 단 한 명도 부패에 연루된 이가 없었다.
또 독일이 강해질 수 있던 힘은 보수주의자들도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내걸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노선을 (일부) 수용했다. 또 사회민주당도, 보수성향 기독교민주당이나 자유민주당도 다 강령이 똑같다. 모두 자유와 정의, 연대를 내걸었다. 연대의 원칙이 진짜 중요하다. 30년 전, 독일에 유학갈 때만 해도 우리나라 의술이 덜 발달했고 제가 돈이 없어서 치과 치료를 못한 상태였다. 그때 치과 갔더니 금니를 공짜로 해주더라. 의료보험이 잘 돼 있다. 또 제가 라인강변에 잔디 깔린 2층집을 정부 지원으로 얻었다.
독일은 창의성을 가장 중시한다. 중소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히든 챔피언(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독일에는 1500개, 한국은 23개다. '파버카스텔'은 250년된 연필회사다. 8대째 되는 장수기업이다. 그 정도로 (연필 하나도) 명품을 만든다.
"<오마이뉴스>가 '행복사회'를 만들겠다... 우선 '수습기자들만의 편집국'부터" |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23일 열린 '오마이포럼- 행복사회 :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행복사회 만들기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오마이뉴스>는 이를 화두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는 덴마크를 다녀온 뒤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행복한 회사를 만들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첫 시도는 '수습기자들만의 편집국'이다. 오 대표는 "가장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 신입기자들을 채용하는 건데, 언론계에는 '가장 똑똑한 애들을 뽑아서 5년 내에 가장 멍청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며 "올해 뽑은 신입 기자 7명을 수습기간이 끝나는 8월부터 한 달 동안 상사나 편집국, <오마이뉴스>의 정체성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이번 포럼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오마이뉴스> 만들기'를 발표하기 위해 여러 제안을 받았는데, 그 핵심은 '일을 어떻게 잘하고, 또 흥미 있게 할 것인가'였다"며 "행복하려면 '상사를 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딱 맞는다"며 웃었다. '수습기자들만의 편집국'은 효율과 즐거움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세운 계획이다. 오 대표는 "핵심은 '당위를 축소하는 일' 같다"며 "편집국장이나 부장들에게도 1년 중 한 달은 자유로운 시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한 회사'는 물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오마이뉴스> 안에 '행복사회연구소'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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