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둠이 장악한 인적 없는 강변을 홀로 서성이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다. 터무니없는 생기발랄과 냉소, 엉터리 문장과 조악한 문체가 지배한 2013년 한국문단. 그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조용호는 그의 작품처럼 외로워 보인다.
'<세계일보> 문학담당 기자'라는 이름을 오랜 세월 지켜온 그를 처음 만난 건 2001년이 저물어가던 바람 찬 겨울이었다. 한 출판사의 송년회. 늦게 나타난 그는 말수가 적었고 얼굴 가득 우울을 담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가 파할 무렵. 책 한 권을 건네며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거, 내 소설집인데 홍 형이 한 번 읽어주지 그래."뜨거움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쓸쓸함... 오늘은 어디를 떠돌 것인가?
그때 건네받은 책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다. 소설은 작가를 닮아있었다. 한 마디로 '좋았다'.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인터넷신문에 쓴 조용호 첫 소설집 리뷰는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조용호의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실려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은 '쓸쓸함'이다. 뜨겁게 보냈던 1980년대의 청춘이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 스스로 찾고자 했던 곳이 아닌 타의로 내던져진 '여기'에서 빛바랜 수채화처럼 늙어갈 수밖에 없다는 아픈 자각이 주는 쓸쓸함. 이념과 그 이념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뜨거운 20대'가 이젠 그에게 없다. 그 휑한 공백은 조용호를 환멸의 공간 속에 가두고, 끊임없이 '어디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보라'고 조롱한다…'(후략) 사실 기자는 한가한 직업이 아니다. 늘상 시간과 마감에 쫓긴다. 그럼에도 조용호는 '직업'으로서의 기자와 '작업'으로서의 소설 쓰기를 조화롭게(?) 공동운영해 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 어찌 고통과 고심이 없었을까.
없는 시간을 쪼개고, 밤잠을 줄이고, 주말까지 희생해가며 탄생한 게 조용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이다. 첫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필두로 두 번째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나무>, 장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등이 모두 그 간난신고의 산물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그 겨울 첫 만남에서 이미 조용호에게 매료됐다. 그는 자신의 문장처럼 물기 어린 눈망울을 지닌 한없이 선량한 사람. 몸은 현실 속에 앉아 있어도, 영혼은 피안에 닿아있는 작가다. 그와 달리 한없이 천박한 나는 조용호에게서 침묵하는 자의 서러움 혹은,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건 1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바로 그 조용호가 새 소설집을 냈다. 이름하여 <떠다니네>.
2006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각종 문예지에 소개된 7개의 단편. 어두운 강물이 일렁이는 표지 안에 발표된 순서대로 조용히 줄을 선, 떠남과 돌아옴, 생성과 소멸, 외로움과 버릴 수 없는 희망에 관한 조용호의 새로운 소설들. 아래의 문장은 마치 시와 같아 독자들의 가슴을 흔든다.
'나일강에 해가 진다.종려나무 잎사귀들이 암록으로 어두워진다.모래언덕은 석양에 붉고, 강물은 소리 없이 푸르다.4000년 전 이맘때도 저 언덕은 오늘처럼 어김없이 붉었을 것이다…'- 위의 책 중 '달과 오벨리스크' 도입부.불혹을 지나 지천명을 강을 건넌 소설가, 이제 어디로 갈까
이처럼 곳곳이 시적인 문장으로 축조된 조용호의 세 번째 소설집 <떠다니네>에 수록된 작품들은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는 마지막 대목이 압권이고, 책의 서두를 여는 '모란무늬코끼리향로'는 오페라 <카르멘>의 주제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란 걸 소설적으로 변주해냈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연작소설로 읽히는 '베인테 아뇨스'와 '신천옹'이다. 왜냐? 이 두 작품엔 조용호가 시종여일하게 지향해온, '정주(定住)와 유랑은 결국 하나의 것'이란 세계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헤어져 혼자 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누군가 몰래 들어온 흔적이 역력한 집, 히스테릭한 여자친구, 썩지 않은 조모의 시체, 세상사에 초연한 늙은 수녀, 말기암 환자가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된 전처…(베인테 아뇨스)
동생들과 처자식 때문에 평생을 제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중소기업 간부, 살벌한 내용의 붉은 글씨 가득한 도심의 철거민촌,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만난 상처투성이 여자, '바람을 타고 바람을 희롱한다는 새' 앨버트로스가 산다는 남극 인근 캠벨섬, 상상을 뛰어넘으며 거칠게 요동치는 바다, 사라진 친구…(신천옹)
앞서 서술한 것들을 재료로 '세상사 가장 쓸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조용호. 여기서 굳이 줄거리를 성기게 주워담지 않는 이유는 조용호가 던져놓은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서 뺏고 싶지 않아서이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조용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은 떠돈다. 붙박였다고 갇힌 게 아니고, 떠난다고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렇다. 이 문장은 불혹의 가시밭길을 지나 가까스로 지천명의 강을 건너기 시작한 그의 철학적(또는, 문학적) 깨달음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힌다. 영원히 머물거나, 영원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내가 조용호를 만난 건 그가 불혹(不惑), 내가 이립(而立)이던 해다. 부끄럽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혼자 서본 적이 없다. 하지만, 조용호는 언제나 세상사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줬다. 삶에 관해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30년, 산수(傘壽)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전개될 조용호의 문학적 미래 역시 믿어볼 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