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계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자료제출 요구안이 통과되자 착잡한 듯 생각에 잠겨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계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자료제출 요구안이 통과되자 착잡한 듯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온통 '문재인 죽이기'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보수언론, 민주당 내 반문재인세력이 문재인 의원에게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열람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문재인 의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공격하고 있다. 심재철·김성태·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정계은퇴와 의원직 사퇴, 대화록 실종에 대한 책임을 요구했고, 조경태·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대국민 사과와 근신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이 대화록 열람을 제안했으니 대화록 증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이들의 공격논리는 그야말로 앞뒤도 안 맞고, 사리에도 닿지 않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 죽이기'에 나선 것일까? 왜 사방에서 문재인 의원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그들이 권력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죽이기'가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국정원 대선공작을 권력투쟁으로 접근했다

지금 '문재인 죽이기'에 참여한 사람들과 문재인 의원의 주장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양측은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문재인을 공격하는 이들은 이 문제를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문재인 의원은 권력투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을 박근혜 정부 정통성의 문제로 바라보고,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보수언론도 그랬고, 민주당 내 반문재인 세력도 그랬으며, 문재인 지지자들도 그랬다. 오직 문재인 의원만 그렇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보수언론은 이 사안이 박근혜 정부 정통성에 관한 문제로 봤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국정원의 대선공작이 선거결과를 사실상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 사이버팀 70여 직원들이 여론을 조작한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대화록 왜곡·변조·유출로 '노무현 NLL 포기'를 대선구도로 만든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러한 국정원 대선공작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정부, 보수언론은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점잖을 부릴 여유도 없었다. 노골적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대선공작 사건이 박근혜 정부 정통성까지 이르지 않도록 아등바등했다.

사실 댓글 사건이 드러나서 시작된 국정원 대선공작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왜곡 문제와 결합되더니, 이제 대화록 증발 미스터리까지 이르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NLL포기 논란으로 국정원 대선공작을 덮으려는 새누리당 정부의 물 타기 전술에서 기인했다. 

문재인 지지자들 역시 국정원 대선공작을 박근혜 정부 정통성의 문제,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봤다. 문재인 후보가 이길 수 있었던 대선이었는데, 대선공작 때문에 결과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민주국가인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정원 대선공작의 약한 고리 '12·16 허위 수사발표'

만일, 문재인 의원이 지지자들과 같은 관점, 즉 이기는 선거를 빼앗겼다고 접근했더라면 대처방식이 어떠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국정원 대선공작과 박근혜 캠프와의 연계 여부, 특히 박근혜 후보의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 집중 공격하고, 무엇보다 가장 약한 고리인 12월 16일 TV토론과 허위수사 발표의 진상규명에 정치력을 집중했을 것이다.

국정원 대선공작이 새누리당 대선캠프와 긴밀한 연계 속에 이뤄졌을 것으로 보는 것은 합리적 추론이다. 국민의 55%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협의해서 국정원 대선개입이 이뤄졌다고 응답했다. (사회동향연구소, 7월 14일 조사) 증거도 많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대선 때 대화록을 입수해 읽어봤다"고 말했고, 지난해 12월 16일 박선규 박근혜 캠프 대변인은 "국가적 관심사라 오늘 조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허위조작 발표를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박근혜 후보의 인지 가능성도 높다. 박근혜 후보가 허위사실을 앞장 서, 그것도 TV토론에서 주장했다. 박 후보는 첫 번째 TV토론에서 "공동어로구역은 NLL 포기가 아니냐", "NLL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12월 16일 세 번째 TV토론에서는 민주당이 28살 미혼 여성을 2박 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했다면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박근혜 후보는 토론 1시간 후에 발표될 조작된 허위 수사결과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에 맞춰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 대선 딱 하루 골든크로스(문재인 후보의 박근혜 후보 지지율 역전)가 있었다. 그런데 16일 밤 수사결과 발표 뒤 흐름이 다시 박근혜 후보의 우세로 원상 복귀했다"며, "이는 민주당 입장에서 박근혜 정부 정통성 문제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이슈인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을 권력투쟁의 관점, 박근혜 정부 정통성과 관련하여 접근한다면, 가장 취약한 고리가 바로 12월 16일의 TV토론과 허위수사 발표다. 가히 '12·16 선거쿠데타'라고 부를 만한 이날 사건에 대해 집중 추궁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관련기사 : "국정원 국정조사, 박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왜 대화록 열람 제안했을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존재 여부 최종 확인을 위해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도착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 등 열람위원들이 휴대폰을 반납한뒤 대통령기록물열람실에 들어서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존재 여부 최종 확인을 위해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도착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 등 열람위원들이 휴대폰을 반납한뒤 대통령기록물열람실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을 다르게 바라봤다. 권력투쟁의 관점,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의 문제로 이 사건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로 인해 훼손되고, 짓밟힌 것들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봤다.

그러면, 박근혜 당선을 위한 국정원의 대선공작으로 인해 무엇이 훼손되었나? 바로 민주정부 10년이 만들어 놓은 양대 가치인 민주주의와 남북평화가 훼손되었다. 문재인 의원은 이러한 훼손을 복원하기 위해 국정원 개혁과 10·4 공동선언 계승을 역설한다.

특히, 노무현과 김정일, 두 남북 정상이 10·4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서해공동어로구역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계승을 역설한다. 그래서 문재인 의원은 국가기록원 기록 열람을 제안한 6월 30일 성명에서 "(두 가지) 방안이야말로, NLL을 지키면서 평화를 확보하고, 우리 어민들의 소득을 높여주는 한편 중국 어선을 배제하여 어자원도 보호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무엇이 짓밟혔는가?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가 짓밟혔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대통령, 국가를 반역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참여정부, 민주정부 10년, 진보세력 전체의 명예가 짓밟히고 말았다(관련기사 : "'노무현, NLL 포기' 이보다 더한 막말 어디 있나").

이처럼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 대선공작으로 인해 짓밟히고 사장된 10·4 공동선언의 성과, 서해공동어로구역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대한 남북 합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민주정부 10년의 명예와 진보세력의 가치를 되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6월 30일 성명에서 문재인 의원은 "기록 열람 결과, 노대통령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라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 반대로 저의 주장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면 'NLL 포기는 오해였다. 10·4 정상선언을 계승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준다면 더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것이다.

1971년 김대중과 2013년 문재인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양자구도로 맞붙은 1971년 대선은 선거 이후 정통성 문제가 제기된 선거였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대선이 끝난 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장인 당신에게 진 거요."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45.3%를 얻어 53.2%를 얻은 박정희 후보에게 7.9%포인트 차이로 졌다. 이 선거에 대한 김대중의 입장은 평생 일관되었다.

"나는 선거에서 이기고 투개표에서 졌다. 전문가들은 공정하게 선거를 치렀으면 내가 약 100만 표 정도는 앞섰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의 선거 부정 공작과 지역감정 조장에 졌다." (<김대중 자서전> 1권 250쪽)

이러한 김대중의 저항에 대해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목숨 위협으로 대응했다. 목포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도 났고, 일본에 망명한 김대중을 납치하여 바다에 수장하려고도 했다.

2013년 대선은 1971년 대선만큼이나 선거 이후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48.0%를 얻어 51.6%를 얻은 박근혜 후보에게 3.6%포인트 차이로 졌다. 극심했던 국정원 대선공작을 감안하면 선거결과는 사실상 국정원이 결정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나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공작에 패배했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것은 권력의지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김대중과 문재인의 차이가 아닐까? 만일 문재인이 김대중처럼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12·16 TV토론과 허위수사 발표'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문 의원이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욕의 리더십은 문재인의 매력, 그러나...

이처럼 문재인 의원은 자신의 대선 승리가 빼앗겼다는 것을 강조하여 이후 정치적 포석으로 삼기보다는 민주주의 회복, 10·4 공동선언의 성과와 민주정부의 명예를 되살리고자 했다. 정치인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문재인 의원이 진정으로 권력의지보다는 공동선을 우선시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정치인 문재인의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어느 정치인이 문재인 의원처럼 무욕(無慾)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상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을 철저히 문재인 의원에 대한 권력투쟁으로 접근했고, 문재인 의원의 책임도 아닌 대화록 증발 미스터리가 발생하자 문재인 의원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다만, 권력의지가 강했던 김대중 후보에게 가했던 생명위협이 없었을 뿐이었다.

바로 이 점을 문재인 의원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무욕(無慾)의 리더십이 문재인의 매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의 무차별적인 '문재인 죽이기'를 극복하고, 민주진보진영의 위기를 돌파해내기 위해서는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랜 세월 군사독재의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이뤄낸 원동력이 권력의지에서 나왔듯이 권력의지가 강해야만 지금의 민주진보진영의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다. 민주주의 회복, 남북평화 정착, 복지국가 구현과 같은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입니다.



태그:#문재인, #국정원, #촛불집회
댓글2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