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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전경.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전경.
ⓒ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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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곤경에 처했다. 검찰의 본사 압수수색과 전·현직 임직원의 체포와 구속이 이어지면서 원전비리의 한 축으로 떠오르더니, 전직 영업당당 임원이 한수원 간부에게 10억원가량의 돈을 건넨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의 수사는 이른바 그룹 '윗선'의 개입여부로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의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27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여름휴가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은 공장을 멈추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으로는 고장이 난 원전만큼이나 답답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29일 연락이 닿은 복수의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원전비리 수사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섣불리 말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 직원 A씨는 "이번 일로 사건이 불거지긴 했지만 사실 이같은 비리는 몰랐던 게 아니었다"며 "회사가 관련 변압기와 플랜트 장비 납품한 것이 오래되어 왔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상납이 있다는 소리는 이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관계자는 공염불로만 끝난 회사의 윤리경영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납품하는 업체들에게는 현대중공업이 우위에 있다보니 직원들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회사 경영진은 원전에 관행적으로 돈을 주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깨끗한 기업'으로 이미지를 가꾸는 데 공을 들여왔다. 이 회사는 "국내외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실천하는 윤리적인 기업을 지향한다"는 윤리헌장과 함께 세부 윤리규범을 직무별로 구분해놓고 있다. 특히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규범에서는 OECD의 국제상거래 뇌물방지협약 등을 준수하겠다고도 밝히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같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직원들에게 매년 '윤리경영 실천서약서'에 서명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원전비리 수사로 이같은 활동이 과연 진정성이 있었는지 의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슈퍼갑'과 '갑'-'을'의 먹이사슬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 마련된 원전비리수사단.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 마련된 원전비리수사단.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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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알려진 현대중공업 임직원의 원전 비리는 재계순위 7위(공기업 제외)라는 체급이 무색할 정도다. 검찰은 현대중공업 김 아무개 전무(영업담당)가 한수원의 송 아무개 부장에게 돈을 건넨 대신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의 변압기와 비상발전기 납품과 관련된 이득을 얻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갑'인 현대중공업이 '슈퍼갑'인 한수원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을'의 희생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원전사업 관련 부서 임직원들은 납품업체들로부터 25억원을 받아내 이를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들이 납품대금을 부풀려서 지급하고 다시 그 돈을 협력업체로부터 거둬들여 비자금을 생성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남은 수사는 현대중공업 최고위층의 개입이 어느 정도까지 있었느냐에 모아진다. 이는 현대중공업 측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단 사측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 가능성에 대한 추측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측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미 구속된 김아무개 전 현대중공업 전무는 검찰에서 이번 원전 비리와 관련해 "현대중공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회사에서 플랜트와 변압기 등을 생산·납품해온 엔진기계사업부와 전기전자사업부가 비자금 조성에 함께 관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2개의 사업부가 일을 추진했다면 사전 조율이나 경영진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도 염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추락한 대외신인도... "시민이 원전 감시하는 시스템 구축해야"

지난 5월 29일에 UAE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2호기 착공식. 이 자리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을 비롯한 국내 관계자와 칼둔 UAE 원자력공사 회장 겸 아부다비 행정청 장관, 알 하마디 UAE 원자력공사(ENEC) 사장 등 현지 관계자가 참석했다. 윤 장관은 이 행사 직후 원전 비리 수습을 위해 국내로 급히 귀국해야 했다.
 지난 5월 29일에 UAE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2호기 착공식. 이 자리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을 비롯한 국내 관계자와 칼둔 UAE 원자력공사 회장 겸 아부다비 행정청 장관, 알 하마디 UAE 원자력공사(ENEC) 사장 등 현지 관계자가 참석했다. 윤 장관은 이 행사 직후 원전 비리 수습을 위해 국내로 급히 귀국해야 했다.
ⓒ 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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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현대중공업 임직원 구속으로 원전 비리가 국내 원전뿐 아니라 해외 원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대외신인도 추락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에 로비 정황이 드러난 UAE 바라카 원전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착공 기념식에 직접 참석할 만큼 애정을 쏟아온 곳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8일 있었던 바라카 원전 2호기 착공식에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는 한국에서 이번 원전 비리의 시발탄이 된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가 드러나며 원전이 가동을 긴급 중단하던 시점이었다. 결국 윤 장관은 기공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정부가 핵심 성과로 삼고 싶어했던 원전 수출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부의 비리로 빛이 바래게 된 셈이다. 때문이 이를 계기로 국내 원전의 비리 사슬을 끊고 원전 산업을 재점검 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원전 산업계와 정부, 정치관료가 강력한 동맹을 형성해 외부의 비판과 감시가 작용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정부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다원적 체제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조직적인 비리 공모와 이것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이해관계를 깰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현장 중심 규제와 상시적인 감시 기구로 바꾸고, 외부와 제3의 감시기구를 만들어 시민이 원전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원전비리,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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