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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생가인 겁외사에 있는 성철 스님 석상
 성철 스님 생가인 겁외사에 있는 성철 스님 석상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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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서역기>가 삼장법사 현장이 16년간에 걸친 구법여행, 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을 순례하면서 견문한 구법여정기이고, <왕오천축국전>이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가 고대인도 5천축국을 답사한 후 쓴 구법견문록이라면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은 현대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성철 스님께서 내디딘 구도의 발자취를 되짚은 구법순례기가 될 것입니다.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에 사시는 교포로부터 걸려온 국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교포께서는 필자가 지어 최근에 출판한 책,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에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꼽히고 있는 성철 스님의 영결·다비식 내용이 왜 빠져있는지가 궁금해 전화를 하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입적하신 대한불교조계종 역대 종정 4분(5대 서옹, 8대 서암, 9대 월하, 10대 혜암) 큰스님, 역대 총무원장 7분(8·15·23대 석주, 10대 서암, 14대 혜정, 16대 월하, 30대 정대, 31대 법장, 32대 지관) 큰스님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28분 스님의 영결·다비식 전 과정을 1000여장의 사진으로 오롯이 갈무리해 담은 화보형식의 책입니다.

성철 스님 생가인 겁외사에 조성돼 있는 성철 스님 동상
 성철 스님 생가인 겁외사에 조성돼 있는 성철 스님 동상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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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불이나 주고 산 책에 5대 종정 서옹 스님과 8대 종정 월하 스님의 영결·다비식 내용은 있는데 그 중간 6, 7대 종정을 역임하신 성철 스님이 왜 빠져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 전화를 하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답은 "28분 스님의 영결·다비식에는 제가 직접 참가했지만 성철 스님께서 입적하셨을 때는 제가 가지를 못해 실을 수가 없었습니다"로 아주 간단했습니다. 간단한 설명에 금방 이해는 하셨지만 교포분께서는 '성철 스님이 빠진 것이 많이 아쉽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은 한국 사회에서는 물론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손꼽히고 있는 성철 스님께서 거닐던 고행과 구도의 여정을 뒤따라 걸으며 되새김질을 하듯이 다시 새기며 정리한 순례기이자 구법기입니다.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엮은이 원택 스님┃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2013.08.05┃1만 6000원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엮은이 원택 스님┃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2013.08.05┃1만 6000원
ⓒ (주)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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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출가수행자의 신분으로 6년간 성철 스님을 모신 바 있는 <불교신문> 이진두 논설위원께서 집필하셨습니다. 집필자는 성철 스님께서 탄생 후 출가-수행-오도-전법교화-열반에 드시기까지의 여정이자 수행이력, 선지식 수행자가 되어 남기신 흔적들을 탁본을 뜨듯이 더듬고 108염주를 꿰듯이 궤를 맞추며 성철 스님의 행장을 정리합니다.  

성철 스님께서 머무시던 25 도량, 산길을 걷고 계곡을 지나서 찾아가는 도량에 대한 묘사야 말로 구법의 길이며 순례의 발걸음입니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광들은 수묵화처럼 펼쳐내고, 찾아간 도량에서 느끼는 성철 스님에 대한 흔적은 커다란 공명의 울림으로 옮기고 있으니 한 도량을 들어서고 한 도량을 나설 때마다 성철 스님의 체취가 연상하는 가슴에서 아롱댑니다.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나서는 순례의 길은 성철 스님 생가인 겁외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리산 대원사, 가야산 해인사, 범어사 내원암, 통도사 백련암, 은혜사 운부암에 이어 동화사 금당선원, 송광사 삼일암, 수덕사 정혜사, 간월도 간월암, 법주사 복천암으로 계속되는 구도의 길, 성철 스님께서 공부하고, 참선하고, 기도하던 수행 지를 순례하다 보면 성철 스님께서 거치셨을 절차탁마의 세월이 실루엣처럼 그려집니다.

역사적 격변기에 사셨던 스님, 일제 감정기와 동족상잔의 6·25를 겪어야 했던 세월이지만 깨달음을 향한 스님의 일보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오롯한 일념입니다. 집필자가 거니는 순례의 길을 계속 따르다 보면 성철 스님의 상징처럼 알려진 '삼천배'와 '봉암사 결사'에 깃든 진의도 생생하게 알게 됩니다.

인간 못된 게 중 되고, 중 못된 게 큰스님 된다

"흔히 삼천배를 하라고 하면 나를 보기 위해 삼천배를 하라는 줄로 아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승려라는 것은 부처님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부처님을 대행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오지요.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서 부처님께 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천배를 시키는 것인데, 그냥 절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하라, 자기를 위해서 절하는 것은 거꾸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삼천배를 하고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 281쪽

성철 스님을 직접 모셨거나 가르침을 받으셨던 분들이 들려주는 성철 스님 이야기는 인간적이면서도 엄격하고, 따뜻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냉철합니다. 하지만 수행자로서의 삶과 구도자로서의 자세는 초지일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음을 듣게 됩니다. 

봉암사에 대웅전 앞에 내걸린 '봉암사 결사'를 상징하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
 봉암사에 대웅전 앞에 내걸린 '봉암사 결사'를 상징하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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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못된 게 중 되고, 중 못된 게 큰스님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류하는 부모들 손길 뿌리치고 출가하는 게 출가수행자의 삶이니 그런 면에서 보면 참으로 못된 이들이 스님입니다. 그렇게 출가한 스님 중에도 성철 스님은 유달리 '괴각쟁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을 만큼 참선수행에 한해서는 괴팍할 정도로 원칙적이고 철저했으니 어쩜 이말, '인간 못된 게 중 되고, 중 못된 게 큰스님 된다'는 말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성철 스님께서 걸었던 그 길, 성철 스님께서 사셨던 그 삶, 성철 스님께서 구하셨던 그 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살고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성철 스님께서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성철 스님께서 사셨던 삶을 따라 해보고, 성철 스님께서 구하셨던 법을 구하려고 마음을 써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성철 스님을 닮아 가는 여정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듯,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을 일독하는 것이야말로 별도로 발품 팔지 않고도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행운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엮은이 원택 스님┃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2013.08.05┃1만 6000원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 -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

원택스님 엮음, 조계종출판사(2013)


태그:#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 #원택 스님, #이진두, #조계종출판사, #겁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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