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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홉 번째 시집을 출간한 이은봉 시인
최근 아홉 번째 시집을 출간한 이은봉 시인 ⓒ 실천문학사
그랬다. 1980년대, 적과 동지가 분명했던 시절. 요사이 '미납 추징금 문제'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행세하던 때다. 남도의 한 도시에서 수백수천 명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권좌에 오른.

누군가는 말했다. "시는 시대의 목소리"라고. 다수의 시인들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심지어 부조리했던 1980년대를 질타했다. 독재자와 독재자에 빌붙은 자본권력 그리고 그들을 배후에서 옹호하고 있다고 지목받던 미국을. 시인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정치·사회 비판세력' 문화적 축의 하나였던 문예지 <창작과비평>. 1984년 바로 그 잡지에서 간행한 <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해 등단한 서른한 살 피 끓는 청년 이은봉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비교적 온화한 성품의 충청도 샌님이 아래와 같은 시를 썼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포악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다.

오고야 말 날을 더욱
빨리 오게 하는, 그리하여
세상 앞장서 끝나게 하는
아메리카여 천의 얼굴이여
오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흐르는
촛대가리여 욕정의 찌꺼기여
방글라데시에서도 니카라과에서도
눈물, 구두굽으로 짓이기는 슬픔을
혼자서 혼자서 다 껴안고도 낙진을
자유를 평화를 뜨거운 자본주의를
벅찬 한숨을 가래를 만만한 인디언을
뺨에 입술에 젖가슴에
카키빛 딸라뿐으로 콜라뿐으로
지구 위 모든 사랑을 숫처녀를 니그로를
어루만지는 주무르는 집어삼키는
더러운 춘화 같은 시궁창 같은
꿈을 통일을 한반도를
핵폭탄을 솟아오르는 내일을
마구 걷어차는 엎어치는
아메리카여 가엾은 미합중국이여
오오, 미칠 것 같은
돌덩이여 니기미 쑥떡이여.
- 이은봉의 <아메리카여> 전문.

책을 읽고, 읽은 책 내용을 토론하며 인식과 세계관을 넓혀가는 게 즐거움이었던 청년들의 어깨에 올려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짐. 1980년대는 그 청년들에게 극단의 선택을 강요했다.

"모른 척 침묵 할래? 아니면, 떠들다가 두들겨 맞고 감옥 갈래?"

이은봉을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이라면 안다. 그는 개미 한 마리도 쉬이 죽이지 못할 유약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 선량한 웃음이며, 조용조용한 말투, 자신에 앞서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를 볼 때 이은봉은 분명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그러나, 천만에. 그는 '맞고 감옥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의 시는 그의 태도를 증명한다. 그 시절, 이은봉의 시는 생살의 함성이자, 칼끝의 은유였다. 

30년 세월, 시인의 노래는 절망에 빠진 것인가?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속절없이, 그리고 빠르게 흘렀다. 시대를 고민하던 뜨거운 피의 청년 이은봉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서며, 한국 문단의 중진이 됐다.
 이은봉의 제9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 표지
이은봉의 제9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 표지 ⓒ 실천문학사
"아직 이 땅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라는 시인의 역설적 인식이 그대로 읽히는 제목의 첫 시집 <좋은 세상> 이후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첫눈 아침> 등 줄줄이 이어진 시집이 벌써 아홉 권째.

그가 최근에 실천문학사(이 출판사 역시 1980년대 후반 '정치시'와 '사회비판시'의 주요한 생산지였다)에서 펴낸 <걸레옷을 입은 구름>을 읽는다. 이은봉의 제9시집을 살핀다는 건 '청년 이은봉'과 '회갑 노인 이은봉' 사이의 간극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기에. 첫 장 첫 시가 먼저 눈길을 잡아챈다. 이름하여 '저 산수유꽃'이다.

등불 환히 켜 들고 걷는 하늘길이다 / 길 끊긴 곳, 빈 공중을 향해 내뿜는 / 샛노란 물줄기다 절벽 끝까지 / 몰려와 삐악거리는 저 병아리 떼 / 산기슭 어디에도 / 나아갈 길 없다…(후략)

아, 그랬구나.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제 몸 태워 '등불 환히 켜 들고' 좋은 세상을 향해 걸었는데, '절벽 끝'에 이르러도 아직 '나아갈 길 없다'니.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티고, 저항해야 우리는 1980년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이은봉의 아홉 번째 시집 서시격인 <저 산수유꽃>의 마지막은 이렇다.

꽃이여 그만 등불을 꺼라 / 끝내 네가 되지 못한, 지난겨울의 꿈 / 산골짜기 시린 물그늘 속으로 / 조용조용 스며들고 있다 이울고 있다.

이순(耳順)의 이은봉이 30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설을 노래한다. '그만 등불을 꺼라'니? 아무리 발버둥 쳐도'끝내 네가 되지 못한' 꿈이라니? 그렇다면 이은봉은 이제 '시를 통해 세계를 변혁하라'는 지난 시절의 테제를 버린 것인가? 그런 것인가?

한없이 순해진 시편들, 그러나 속에 숨어있는 청년의 숨결

걱정과 우려 속에 다시 시집을 뒤적인다. 다행이다. 기우였다. 뒤이어 나타난 시 <주산리 꽃잔치>는 더불어 살고, 더불어 먹고, 더불어 울고 웃었던 지난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이른바 '공동체의 문학적 복원'이다. 이런 노래다.

(전략) … 막내아우 생일이라고 / 형제들 주산리 오두막으로 모여든다 / 아내가 옆집에서 어린 상추를 얻어 와 씻는 사이 / 나는 차 몰고 시내에 나가 돼지 삼겹살 몇 근 사온다 / 고기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자 / 조카 놈들, 입 딱딱 벌리며 달려든다 (중략) 벚꽃들 송이눈으로 마구 흩날려 / 막내아우 생일잔치, 꽃잔치다 / 형제들 모여 벅적대는 것 너무 좋아 / 어머니의 입, 함박만 하게 벌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민중=나(우리)'의 등식은 결코 낡은 수사학이 아니다. 이는 1960년 4·19혁명이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역사'인 것과 같은 이치다.

젊은 날 꿈꾸었던 '좋은 세상'이 온전히 도래해 모두가 어머니의 '오두막에 모여', '조카 놈들' 웃음을 보며, '꽃잔치'를 열고, 억압과 수난의 상징으로 역할 해온 '어머니'가 '함박만 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에게 아직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안 그런가? 이은봉은 바로 그날을 향한 낙관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래의 시가 보다 명확히 증명한다. 육십에 이르러 듣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이해하게 되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이은봉과 어울리지 않는 선시(禪詩)의 느낌마저 든다. 마치 돈오점수(頓悟漸修)한 수도자의 게송(偈頌) 같다. 

돌은 아버지의 집이다 아버지는 처음 돌 속에서 나왔다 /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부서져 흙이 되는 돌, 나도 돌의 문을 열고 나왔다 (중략) 돌 속에서 아버지를 꺼낸 것은, 주검 속에서 나를 꺼낸 것은 오랜 바람이다 물이다 햇볕이다 시간이다 / 시간이 돌을 쪼개, 흙을 으깨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한 거다 시간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는, 돌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눈망울 반짝이며 이 세상 건너갈 수밖에 없다 (후략) - 위의 책 중 <생명의 집> 일부.

더 이상 무슨 부연이 필요할까. '부서져 흙이나 돌이 될 수밖에' 없는 하찮은 생이지만, '돌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눈망울 반짝이며 이 세상 건너'가겠다는 이은봉의 결연한 노래 앞에서. 하찮은 생을 결코 하찮게 살지 않겠다는 육십 살 시인의 심지 굳은 결의 앞에서.

앞서 '청년 이은봉'과 '회갑 노인 이은봉' 사이의 간극을 살피겠다고 한 바 있다. 이제 답을 내린다.

이은봉은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펄떡이는 청년의 심장으로 살고 있다. 허니, 그 앞에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바꿔야 마땅할 세상이 있을 뿐이다. 이은봉은 초지일관 '좋은 세상'을 향해 숨 가쁘게 내달려온 문학청년. 순해진 시편은 서리 내린 그의 머리칼처럼 외형적 변화일 뿐, 시적 본질의 전환이 아니다.


걸레옷을 입은 구름

이은봉 지음, 실천문학사(2013)


#이은봉#시인의 삶#걸레옷을 입은 구름#창작과비평#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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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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