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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베어그 요새 표지판
 하네베어그 요새 표지판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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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켄을 지나니, 앞에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 언급했듯이 베를린은 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이라면 주로 기상대 및 옛 요새가 있는 법. 전광판 하네베르그 요새(Fort Hahneberg)라는 푯말이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말에만 개방해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 요새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베를린의 서쪽 길목인 슈판다우를 보호하기 위해서 계획되었고, 1888년에 완공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는 내무반 및 의무대 문서보관소로 이용되었다가 장벽이 세워질 때까지 방치되다시피 했다.

가토우(Gatow)는 영국 공군의 기지였다. 이는 베를린 공수작전의 보급기지로 널리 활용되었다.
▲ 공군박물관 표지 가토우(Gatow)는 영국 공군의 기지였다. 이는 베를린 공수작전의 보급기지로 널리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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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어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지만, DMZ 내의 무너진 건물 주변처럼 생태화 되어갔다. 이는 현재까지도 하네베르그 요새 주변에 박쥐 및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장벽이 무너진 이후 요새는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는데, 시민들이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이 요새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다. 요새 주변은 작은 숲 및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으스스한 옛 병영까지 갖추어 있어 나치 및 프로이센 군대와 관련한 영화를 촬영할 때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좀 더 가면 야트막한 언덕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면 베를린 서부의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도시의 야산보다는 낮지만, 숲이 가리지 않기 때문에 도시를 볼 때 탁 트인 느낌이 든다. 슈판다우의 경우에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많은데, 포스트모던 디자인이 적용되어서 우리나라의 옛 아파트와 달리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하긴, 요즘 우리나라 건축기술도 많이 발달해서, 아파트 디자인도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가토우(Gatow)와 '건포도 폭격기'

장벽시대에 방치된 이곳은 현재 베를린 주요 생태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하네베르그 요새 공원 장벽시대에 방치된 이곳은 현재 베를린 주요 생태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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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면 포츠담으로 향하는 길이다. 아스팔트길이 계속 진행되어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길 표지판에 항공 박물관과 영국군 사격장진지라는 표지가 눈에 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가토우(Gatow). 장벽 붕괴 전에는 영국군의 사격장 및 비행장으로 활용된 지역인데, 이는 1949년 베를린 봉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를린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고, 식량이 부족했다. 게다가 서베를린의 경우 소련이 베를린의 도로와 수로를 봉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 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미·영·프랑스 연합공군이 주도한 베를린 공수작전(Berliner Luftbrücke)이었다. 가토우(Gatow)지역은 영국 공군(Royal Air Force)의 식량 공수 및 연료보급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토우 지역뿐만 아니라 미군 공군의 템펠호프(Tempelhof)공항과 현재 서베를린 지역의 주 공항이자 당시 프랑스 공군이 활용하던 테겔(Tegel)공항도 주요기지였는데, 이는 서베를린의 식량부족을 해소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독이 친서방 정책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어, 나토(NATO) 및 후에 유럽연합(EU)으로 확대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가 발족하는 계기가 된다.

연합군은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는데, 바로 군수물품에 건포도, 초콜릿, 사탕과 껌 등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기억하는 서베를린인들은 당시 베를린 공수작전 때 동원되었던 수송기들을 "건포도 폭격기(Rosinenbomber)"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군용 트럭을 따라다니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대(大) 글리에니케 호수와 마을

햇볕이 쨍쨍할 때 이곳은 아이들과 같이 호수욕을 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 대 글리에니케 호숫가 햇볕이 쨍쨍할 때 이곳은 아이들과 같이 호수욕을 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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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우를 지나 마을 입구 문을 지나니, '강변길에 자유를(Freier Uferweg)'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좀 더 걸어가 보니 오랜만에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이 호수의 이름은 대(大) 글리에니케 호수(Groß Glienicker See). 오랜만에 마음이 탁 트인 느낌이었다. 이 호수 주변의 집들도 헤닝스도르프 지역의 집들처럼 부호들이 사는 집들인 것 같았다.

집 안 정원 튜브 풀장에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화목하게 사는 가족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언젠가 예쁜 마누라 만나서 호숫가 저택에서 아이들과 오순도순하게 살아봤으면. 물론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과 어울리게 하는 것은 정서함양에도 도움을 준다. 사실 학원에 찌들어 있어서 스트레스 받아 공부의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많은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자연을 가르쳐주는 것도 후에 창조적 생각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독일이 환경에너지 및 환경기술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호숫가 광경 및 주민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마지막에 눈을 찌푸리게 한 것도 있었다. 바로 길이 갑자기 막혀버린 것. 이정표대로 왔는데, 강변위의 한 집이 자신의 정원을 넓히기 위해 공사하는 중이었다. 이래서 앞에 강변길에 자유를 달라고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던 것 같았다. 길이 막혀버려서 윗길까지 올라가서 빙 돌아갔다. 그리고 길을 막았던 집의 반대편 쪽으로 와서 정원을 봤는데, 자신의 정원을 위해 산책로를 막아버리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런 경우에는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행정적인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내일 사크로프(Sacrow)로 향하기로 했다.


태그:#베를린장벽길, #하네베어그 요새, #가토우, #대(大) 글리에니케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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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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