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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탑 위에서 바라 본 아리랑 스타디움
 주체사상탑 위에서 바라 본 아리랑 스타디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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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북한의 <아리랑> 공연이 거론될 때면 언론에 늘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공연자들의 혹독한 훈련과 인권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지난 2011년 10월,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지만, '혹독한 훈련에 대한 아픈 마음'을 갖거나 '북한의 인권문제'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나의 어린시절, '리틀엔젤스'의 단원으로서 겪었던 경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리틀엔젤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우리는 국가사절단의 자격으로 해외공연을 가기 위해 수년 간의 연습은 물론, 공연을 떠나기 몇개월 전부터 집중적인 합숙 훈련도 했다. 훈련 중에는 조그마한 잘못도 용납되지 않았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말의 실수라도 하게 되면 장구채나 북채로 두들겨 맞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였으며, '미소를 지을 때는 치아가 몇개 보여야 한다'는 것까지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도 미소가 풀어지지 않던 단원들

공연 내내 항상 미소를 지어야 하기에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얼굴은 미소를 지은 상태로 굳어져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며 그들의 훈련이 '리틀엔젤스'보다 더 혹독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왜냐하면 <아리랑> 공연은 스타디움에서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관객에게 미세한 얼굴 표정이라든지 작은 실수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아리랑> 공연에서는 줄이 삐뚤빼뚤한 것도 간혹 볼 수 있는데 '리틀엔젤스' 공연에서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단원이었던 친구들을 만나면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그 훈련 강도와 정신 상태면 무슨 일이든 해낼 것"이라고 이야기 나누곤 한다.

단원들의 부모들 또한 우리 못지 않은 고생을 감수했다. 나의 어머니는 '딸아이가 나라를 위해 자랑스러운 공로를 세울 것'이라는 생각에 며칠 밤을 새워가며 내가 입을 의상들을 만들고 손질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온갖 정성을 들여 한 올 한 올 꿰멘, 눈부시게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출 딸의 모습을 상상하니 힘이 드는지도 몰랐다고 말씀해주셨다.

'리틀엔젤스'는 한 번 공연을 떠나면 7세에서 13세까지의 어린 단원들이 3~4개월씩 집을 비우고 외국에서 공연을 했다. 밤이면 밤마다 엄마가 그리워 호텔방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국위선양을 위해, 조국을 위해 한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견뎌냈다. 마음 속에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남한은 보잘 것 없는 나라여서 해외에 알릴만한 게 딱히 없었던 기억이다. 우리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무대에 나와 스탠딩 오베이션을 받을 때, "리틀엔젤스! 리틀엔젤스!"(Little Angels! Little Angels!)라는 함성속에 "코리아!"(Korea!)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눈물을 펑펑 쏟으며 훈련 중 겪었던 모든 고통들을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으로 떨쳐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휴대 가능한 한국 음식들이 많이 나와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어머니가 볶아주신 고추장을 빈 커피병에 담아 보물처럼 여행 가방에 잘 챙겨 다녔다. 공연이 끝나면 호텔방으로 돌아와 공연평가(일종의 자아비판)를 마친 뒤, 단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고추장을 밥도 없이 김에 발라먹곤 했다. 아무리 식사 대접을 잘 받고 다녀도 어린 내게 늘 그리운 것은 보고픈 엄마 그리고 한국음식이었다.

우리는 정규 공연 외에 그 나라의 왕궁이나 대통령궁에 가 단 몇 사람만을 위해 똑같은 공연을 반복하기도 했다. 아마 '리틀엔젤스' 단원들 만큼 수많은 세계의 지도자들과 만나 악수를 하고 만찬을 함께한 이들도 세상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장개석 총통, 엘리자베스 여왕, 닉슨 대통령, 인디라 간디수상,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멜다, 이름 조차 외우기 힘들었던 태국의 왕 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

'조국을 위하여'를 생각했던 그때

그러나 어린 내가 가장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만찬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베풀어주시는 귀국 후 청와대 만찬'이었다. 이 모든 것이 '국위선양을, 조국을 위해 하는 일'이었음으로,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의 왕이나 대통령과 하는 만찬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께서 '베풀어주신' 만찬이 제일 감격스러운 초청이자 만남이었다.

일시 귀국해 다음 공연 여행을 떠나기 전, 휴가를 이용해 영화관에 가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극장에서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대한뉴스>라는 정부홍보 뉴스가 먼저 상영됐다.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뉴스를 내보낸 뒤 이어 우리 '리틀엔젤스'의 활약상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를 보고나서는 또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이용한 꽤 괜찮은 외화벌이도 했을 것이다. 당시 '비엔나 소년합창단' 공연의 티켓값이 상당히 비쌌었는데 '리틀엔젤스'의 공연 티켓값은 그 합창단 티켓값보다 훨씬 더 비쌌다고 들었다. 가는 곳곳마다 티켓은 매진됐고, 무대에서 내려다 본 관객석은 빈 자리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한 푼의 출연료도 지급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인솔자 선생님들께서는 어린 단원들의 공연 소도구통 속에 보석을 몰래 숨겨가지고 들어오는 밀수행위까지 버젓이 일삼았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보면서 북한 공연자들의 혹독한 훈련을 상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그들의 인권을 걱정한다. 그러나  당시의 '리틀엔젤스' 공연을 보면서는 왜 그런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리틀엔젤스' 단원들의 인권유린 문제는 남한에서는 전혀 제기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항상 있었다고 나중에 커서 들은 적이 있다. 외국 언론들은 '저 아이들은 분명 하늘에서 내려 온 진짜 천사들이거나, 아니면 혹독한 훈련의 결과로서 그 뒷전에는 엄청난 인권 유린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단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북한 <아리랑> 공연의 출연자들은 동원된 것이고, '리틀엔젤스'는 자발적으로 한 것이냐"고. 물론 당시 '리틀엔젤스'는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7세에서 13세의 어린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리틀엔젤스'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리틀엔젤스'의 단원이 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부모의 권유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린 아이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으며, 또 이런 일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다 한들 되는 일이었겠는가. 그렇다면, 국가가 동원하면 인권 유린이고, 부모들이 권유하면 인권 유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북한 <아리랑> 공연 출연자들은 대부분 성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7세에서 13세 사이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아리랑> 공연보다 더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은...

누군가 내게 "당신이 본 '지상 최고의 쇼'는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거리낌없이 북한 <아리랑> 공연이라고 대답한다. 엄청난 규모의 인원이 벌이는 퍼포먼스는 솔직히 '리틀엔젤스'의 공연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규모가 크면 인권 유린이고 규모가 작으면 인권 유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할 때면 '어린 시절을 혹사당했다'는 생각보다 '조국을 위해 어린 나이에 큰일을 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먼저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시절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조국을 알림에 있어 나름대로 뽑혀 <아리랑> 공연에 출연하는 북한의 공연자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 관람을 마치고 스타디움 밖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출연자들에게 감동을 느끼며 손을 흔들어줬다. 내 인사에 환하게 답해주던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리랑> 공연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공연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간절한 바람은, 그렇게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걱정된다면 <아리랑> 공연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먼저 쌀과 의료품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은미 시민기자는 2012년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연재했습니다.



태그:#북한, #아리랑 공연, #인권, #리틀엔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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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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