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은 1960년 4·19 혁명 즈음에 일종의 '혁명 시'로 부를 만한 시를 수 편 써 냈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이하 <그놈의 사진>)는 혁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1960년 4월 26일에 지어진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전국 방방곡곡 곳곳의 건물마다에 걸린 '그놈'의 사진, 곧 독재자 이승만의 사진을 떼어내는 것으로써 혁명의 과업에 동참하자는 열의를 격렬한 어조로 호소한다.
<육법전서와 혁명>은 <그놈의 사진>이 지어진 한 달 뒤인 5월 25일에 이 세상에 나왔다. 이 시기의 혁명의 불꽃은 어땠을까. 작품에 그려진 정황으로 보건대 그다지 뜨거워 보이지 않는다. "불쌍한 백성들아 /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1연 6·7행)나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2연 1행)와 같은 시구를 보라. 독재자 이승만과 자유당의 어두운 잔재들은 현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여전히 민중들을 압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수영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람들에게 '혁명'의 본질을 새삼 일깨워주고 싶었다. 혁명은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당연히 "기성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1연 1·2행)이다.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3연 14행)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시인은 불안했다. 그는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하면 혁명은 결국 실패할 거야.'
그 한 달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한 달이면 '승리의 화요일'으로 불린 4월 26일의 흥분이 여전히 뜨겁게 살아 있을 만한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시인은 당시에 어떤 분위기를 느꼈기에 혁명에 대해서 이토록 불안과 불만을 토로한 것일까.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문화사적인 고찰의 결과물인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보자.
프랑스 혁명에는 '여성'이 없었다?
저자의 개괄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에 대한 해석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가 맞서 있다. 정통주의(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가 그것이다. 이들을 거칠게 일반화하면, 전자는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긍정적인 차원에서, 후자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조망한다. 특히 후자는 1980년대 중반까지 주류 해석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전자가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었음을 비판하면서, 페미니즘적이거나 문화사적인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재성찰하는 관점을 취한다.
이런 점은 이 책의 체제에도 반영되어 있다. 제1부는 서양·백인·남성적 편견으로 서술된 기존 주류 해석을 페미니스트적 입장에서 재성찰하고, 서구 중심주의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제2·3부에서는 혁명에 관한 영화와 혁명 가요·혁명 축제 등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일종의 문화사적인 '사건'으로 고찰한다.
이 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 혁명은 없다"라는 제목이 붙은 제1부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여성' '노동과 복지' '유색인' 등의 열쇳말을 중심으로 프랑스 혁명을 손꼽히는 '원조 혁명'으로 보는 기존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그것이 '반쪽 혁명' 또는 '배반당한 혁명'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배반당한 혁명'은 과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망각의 바다에서 잉태한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과거 기억을 강제로 삭제하거나 권력의 희생자들을 사탕과 채찍으로 침묵시키면서, 이긴 자들의 역사교과서에서 혁명은 늘 지연되고 실패한다."(본문 12쪽)가령 저자는 '이긴 자들'이 "사탕과 채찍으로 침묵시"킨 '권력의 희생자들'의 대표 보기로 여성을 든다. 그는 여성사적 시각을 바탕으로 프랑스 혁명을 본격 조명한 미슐레의 말을 빌려 "남자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했다면 여성은 왕을 사로잡았"음을 강조한다. 실제 루이 16세의 저항으로 혁명의 수레바퀴가 정체를 보이던 1789년 10월 초순에 베르사유로 행진한 7000명의 파리 여성들은 왕을 향해 시민들의 빵 문제를 해결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1791년 7월 14일의 '100인의 청원서'에도 41명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다. 그래서 저자는 여성들이 혁명을 수호하고 키웠던 용감한 행동대원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혁명 정부가 여성들을 혁명과 공화주의의 훼방꾼으로 매도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혁명적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여성 시민'이라는 말이 하인을 지칭하는 야유적 단어로 전락한 점, 대신 여성들이 '마담'이나 '마드무아젤'이라는 단어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들이 1816년에 이혼법이 아예 폐지된 뒤 다시 합법화하는 1884년까지 "가정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힌 양심수"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뎌야 했다고 주장한다.
"자코뱅 혁명정부는 여성들의 집회와 단체결성을 금지함으로써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미덕'이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사적 영역의 주인공 = 여성, 공적 영역의 주인공 = 남성'이라는 등식으로 요약되는 '젠더에 바탕을 둔 예의범절 코드'가 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남성 혁명주의자들이 주조한 이러한 '젠더 체면 의식'의 경계선을 넘으려는 여성들에게는 채찍과 감금이 주어졌다."(본문 48쪽)이후 역사는 '혁명의 훼방꾼'으로 매도당한 프랑스 여성들을 유럽에서 가장 늦게 참정권이 부여된 주인공으로 기록한다. 그는 이 사실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이 낳은 최악의 역설이라고 비판한다.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들을 새롭게 재음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혁명이 '혁명'의 본질에 맞게 진행됐던 건 아냐김수영 시인은 예의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따른다면 혁명에는 반드시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 헌법과 제도·조직 들이 뒤따라야 한다. 성이나 계층에 대한 관점이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혁명이 '혁명'의 본질에 맞게 진행됐던 것은 아니다. '배반당한 혁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계층에 대한 시각도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착화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민권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에 따르면, 1814년부터 1830년까지 프랑스인 3250만 명 중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0.3퍼센트인 1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이 사실이 유산자들이 독점적으로 지배했던 왕정복고기의 성격을 웅변한다고 주장한다. 상당한 재산세를 납부한 40세 이상 남자에게만 부여된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도 겨우 1만5000명 수준이었다.
"7월 왕정은 선거권 나이를 하향조정하는 '무늬만 개혁'을 단행했지만 그 기름진 민낯은 반동적인 복고왕정의 복사판이었다. 7월 왕정이 표방하는 '자유'는 권력과 재산을 가진 소수자들만의 자유였으며, '질서'는 엄격한 형벌제도와 과시적인 국가폭력으로 유지되는 '억압'의 다른 이름이었다."(본문 22쪽)저자는 집권 세력은 권력구조의 근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항의를 수용하려는 전향적인 제스처로 대중의 욕구불만과 개혁의지를 순화시키는 전략과 프로그램을 소유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세기 말 독일제국의 수상 비스마르크가 각종 사회 보장 복지제도를 선구적으로 도입해 대중의 인기를 빼앗은 예를 든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미시 권력들(시험과 평가, 시시티브 등의 감시 시스템)이 혁명의 씨앗을 고사시키는 토대가 되고 있음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다.
"공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 학교 바깥에 있는 학생, 감옥 바깥에서 생산되는 품행방정 남녀들, 국가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이들 모두에게 혁명은 실패나 성공으로 마감되는 권력다툼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열정 그 자체다. 혁명은 가고 오지 않을지라도,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부르던 노래와 연대감은 남는다. 안 되는 혁명에 쫓겨 다른 방에 갇혀도 또 다시 녹슨 펜에 침을 묻혀 자유와 평등의 이름을 벽에 아로새겨야 한다."(본문 236~237쪽)민주당이 국정조사 파행에 항의하며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왔다. 광장의 한 귀퉁이에 선 그들이 그동안 이름없는 시민들이 힘겹게 켜든 촛불에 힘을 보탤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미덥지 않은 구석이 많다. 저자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 더 많은 이들이 '배반당한 혁명'의 추억은 버리고 '저항의 기억'을 굳게 아로새겨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육영수 지음 | 돌베개 | 2013. 7. 8 | 300쪽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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