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지난 14일 오후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을 찾았다. 배롱꽃이 절정이었다.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정오 무렵이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등록한 뒤 출발했다. 충장사를 지나 1.5km 지점에서 우회전 신호다. 우측은 좁은 산속 오솔길. 동석한 일행이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한다. 적어도 약속 시각까지는 30분이면 족히 도착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이렇게 길 찾는 데서부터 비뚤어졌다.
올 봄에 지리산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을 등산했을 때도 내비게이션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전에 본 철쭉이 너무 인상 깊었기도 하지만 친구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어서 바래봉은 너무나 잘 안다는 나의 자신감에 친구들도 전적으로 믿는 눈치였다. 그 때도 산속 깊이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우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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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바람과 나무 그늘 때문에 여름에는 무척 시원했을 것같다.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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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등록할 때는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바래봉', '명옥헌' 등을 검색해서 확인 절차 없이 바로 등록했다간 낭패다. 흔히 유명한 사찰, 관광지, 산 등은 식당 이름도 많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가 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없겠지만.
어렵사리 명옥헌 원림에 도착했다. 약속 시각보다는 10여 분 늦었지만 다행이다 싶은 것이 다른 분들도 금방 도착한 모양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10여분 걸어서 올라갔다. 언덕 위에 정자가 어렴풋이 보이고 여기저기 붉게 핀 배롱 꽃과 소나무 숲이 우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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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 꽃의 연못 꽃이 연못에 쏟아져 내렸다. 초록잎과 함께 물에 반사되어 연못에 붉게 피어 있는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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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꽃이 쏟아져 연못물이 붉게 물들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틈도 없이 백송과 연못, 배롱꽃을 들여다봤다. 꽃과 초록색 잎이 연못에 반영되어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 그간 숱하게 지나면서도 스쳐만 간 곳이다. 이곳에 임금이 삼고초려(?) 할 정도의 선비가 은둔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당시의 선비 모습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명옥헌의 배롱꽃은 지금이 절정이다. 꽃 피는 시기야 7~9월까지 100여일이나 되지만 연못 중앙의 배롱꽃이 주변의 꽃, 연못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 폭의 수채화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배롱꽃을 좋아한다. 나무줄기의 매끄러움도 사랑스럽지만. 벚꽃, 철쭉 등과 같이 불꽃처럼 피어서 소리 없이 지지 않고 100일 동안이나 조건 없이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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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 꽃 연못을 배경으로 가깝게 촬영해 봤더니 붉은 꽃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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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서울에서 왔다는 사진동아리 회원 7~8명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오후 2~3시쯤은 사진 촬영에 적당한 시간은 아니다. 반영도 시원찮고 빛도 강렬하여 사진가들이 기피하는 시간대다. 그러나 아름다운 배롱꽃 잔치에 시간이 문제인가.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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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우측으로 조그만 개울물이 있고 정자 너머로 연못이 보인다. 그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에 부딪히는 것과 같다하여 명옥헌으로 이름지었다 한다.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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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원림은 지금의 별장이나 전원주택, 수목원 등과는 비교되지 않은 정도로 조그만 정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비의 꼿꼿한 기개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요즈음처럼 바쁜 일상에 조금이나마 틈을 내어 삶의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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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관련 참고 자료, 이 곳을 찾을 때는 농가에 피해가 없도록 새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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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배롱꽃의 은근하고 질기디 질긴 사랑을 가슴에 담고 옥구슬 구르는 개울물 소리 들리는 명옥헌을 뒤로했다. 출발 할 때의 낭패스러운 마음까지 치유가 된 듯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