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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서 살찌고 먹으면서 살빼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이익은 고스란히 식품회사에게 돌아간다. 2012년 5월, 뉴욕시가 대용량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한 가운데, 한 여성이 커다란 탄산음료를 들고 뉴욕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먹으면서 살찌고 먹으면서 살빼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이익은 고스란히 식품회사에게 돌아간다. 2012년 5월, 뉴욕시가 대용량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한 가운데, 한 여성이 커다란 탄산음료를 들고 뉴욕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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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 들어가 보자. 칼로리가 높은 음식, 가공처리를 많이한 음식이 보인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통해 입맛에 딱 맞도록 만들어진 이 음식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런데 슈퍼마켓의 또 다른 진열대에는 이런 문구들이 보인다. '가볍고, 마르고, 제로, 저탄소, 저칼로리, 무설탕...' 앞서 보았던 바로 그 식품들 때문에 살이 찐 이들이 찾는 것이다. 먹으면서 살찌고, 먹으면서 살 빼고. 식품 회사들은 모든 측면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는 7일(이하 현지시간) '비만'을 통해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 보여주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다이어트 회사를 사들이는 것도 돈벌이의 한 방법이다. 체중감시단이라는 뜻의 다이어트 회사 '웨이트 와처스'는 1960년대 뉴욕의 한 전업주부가 만들었다. 이는 여러 소유주를 거쳐 2000년 유니레버에 팔렸다. 유니레버는 소시지를 파는 '벤&제리'라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또 다른 다이어트 회사 '제니 크레이그'는 스위스 다국적 기업 네슬레에 팔렸다. 알다시피 네슬레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판다. 2011년 네슬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500대 기업에 선정됐다.

웨이트 와처스의 전직 재무담당 이사인 리차드 샘버는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의 84%는 계속해서 다시 (과체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이어트 산업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약간 과체중이거나 의학적으로 과체중이 아닌 이들은 끊임없이 살을 빼고 찌우면서 식품 산업과 다이어트 산업에 지속적인 수입을 제공한다.

수백만의 '정상체중', 하룻밤 새 '과체중'으로

식품·제약 업계가 어떻게 비만을 통해 돈을 벌어왔는지 분석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사.
 식품·제약 업계가 어떻게 비만을 통해 돈을 벌어왔는지 분석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사.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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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 3일, 다이어트 산업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비만은 "전염병"으로 규정된다.

비만이 전염병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만 전문가 필립 제임스 교수. 의사였던 그는 1970년대 중반, 그의 환자들 사이에서 비만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고 1995년 국제 비만 태스크 포스(IOTF)라는 단체를 만든다. 이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임스 교수는 전 세계 '과체중'의 기준을 바꾸었다. 비만도를 나타내는 BMI 지수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체지방을 측정한다. 그는 이 BMI를 27에서 25로 낮췄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수백만의 정상체중이었던 이들이 하룻밤 새 과체중이 됐다. 그리고 기업은 당신의 정상체중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

<가디언>은 제임스 교수가 비만의 기준을 BMI 27에서 25로 낮춘 것은 의약업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제임스 교수가 설립한 IOTF가 제약 회사들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약 회사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하룻밤 사이 수백만 명을 과체중으로 만들었고 이는 그만큼 제약 회사의 고객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미 비만협회 부회장 주디스 스턴 교수는 "BMI 25~27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위험이 낮다, BMI 27이 넘어야 위험이 높아진다"면서 "왜 모든 범주를 위험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에 제임스 교수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 모두 BMI 25부터 사망률이 높아진다"면서 "이는 BMI 25가 비만의 기준이 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교수는 미국 보험회사 메트 라이프가 제공한 데이터를 토대로 BMI 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메트 라이프가 제공한 자료를 분석한 조엘 게린은 "여기에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면서 "메트 라이프가 제멋대로 자료를 만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만 "전염병" 규정, 다이어트 산업에 큰 기회  

포털사이트에서 '비만 전염병'으로 검색하자 나오는 게시물들.
 포털사이트에서 '비만 전염병'으로 검색하자 나오는 게시물들.
ⓒ 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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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비만을 "전염병"으로 규정한 것 역시 의약업계에게 큰 기회였다. 비만이 전염병이라는 것은 이것이 '의학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인 것은 치료가 가능하다. IHS 헬스케어 그룹 대표인 구스타브 안도는 "비만이 전염병이 되면서 제약회사들은 '마법의 총알'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약은 1950년대부터 있었다. 살을 빼고 싶은 수백만의 영국 주부들은 각성제를 처방 받았다. 이러한 각성제는 중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심장 마비와 호흡 곤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로 1970년대 금지됐다. 이후 또 다시 등장한 것이 '펜플루라민'이라고 불리는 식욕억제제다. 미국 거대 제약회사 와이어스는 펜플루라민이 포함된 '리덕스'라는 제품을 개발했고, 이는 1996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받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시카고 출신 심장학자인 프랭크 리치는 리덕스를 복용한 환자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한 것을 발견한다. 리치 박사는 이를 언론에 알리기로 결심했고, 미국 뉴스쇼인 <투데이>에서 이를 보도한다. 리치 박사는 "방송이 나간 이후, 와이어스의 대표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와이어스 내부 문건을 통해 와이어스가 리덕스로 인한 더 많은 폐고혈압 사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1997년 리덕스는 퇴출됐고, 집단 민사소송에 휘말려 211억 달러를 보상금으로 내놓아야 했다.  

영국의 거대 제약회사인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은 1996년 미 FDA의 승인은 받아 항우울제로 발매된 '웰부트린'에 체중감량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회사의 미국 시장 마케팅 대표인 블레어 햄릭은 의사들에게 이 약을 우울증뿐만 아니라 체중감량을 위해서도 처방하도록 로비했다. 로비 비용으로만 수백만 달러가 들었지만, 이러한 전략은 웰부트린의 판매시장과 수익성을 크게 넓혔다. 2001년 한 해에만 400만 건이 처방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러나 지난해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의 불법 판촉은 미 법원으로부터 30억 달러의 과징금을 받는다. 미 제약업계 사상 최대 과징금 규모였다.

<가디언>은 "비만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제약 회사들은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다"면서 "그러나 식품산업은 승자"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승리 역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는 식품 회사인 크래프트에게 조언을 남겼다. '담배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제목의 이 메모는 현재 담배 회사들이 폐암을 가져왔다고 비난하는 소비자들처럼 식품회사들도 비만을 유발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태그:#비만, #다이어트, #과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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