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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마을 스피커에서 딩동댕 소리가 나고도 한참이나 침묵을 한다. 이건 면사무소에서 무언가 알린다는 말이다. 마을 내에서 이장님이 방송을 할 때는 바로 말소리가 나오는데 면사무소에서는 원격조정(?)을 하는지 소리가 한참 있다가 나온다. '또 자동차세 아니면 지방세 납부하라는 말이겠지'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주민 여러분 지금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주민들께서는 한낮에 논밭이나 숲가 등에 나가서 절대 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노인께서는 절대 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하다가 쓰러지면 얼른 물을 마시게 하고 시원한 곳으로 데려가 응급조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19나 면사무소로 신고하여 주십시오.'

 

 마을회관이 '무더위 쉼터'가 되었다. 에어컨 빵빵히 틀라지만 마을분들은 대개 선풍기만 돌리고 만다.
마을회관이 '무더위 쉼터'가 되었다. 에어컨 빵빵히 틀라지만 마을분들은 대개 선풍기만 돌리고 만다. ⓒ 김영희

 

하하. 절대 일하지 말란다. 해마다 덥다고 느끼지만 올해 더위는 유난스럽다.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바뀌고 기온은 연일 36도까지 고공행진을 한다. 폭염주의보가 아니라도 바깥 날씨가 하도 더우니 감히 일할 엄두를 못 낸다.

 

이럴 때는 안골 계곡으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 마을의 보물은 바로 마을 뒤편 저 위 느랏터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과 바위들이다.

 

 우리마을의 보물 '두계'
우리마을의 보물 '두계' ⓒ 김영희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사실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외지에서 온 피서객에 밀려 우리는 차지를 못한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사실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외지에서 온 피서객에 밀려 우리는 차지를 못한다. ⓒ 김영희

맑디맑은 계곡물은 마을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수량도 풍부해서 여름철이면 마을 어디서나 개울물 소리가 요란스레 들린다. 나는 이 마을에 오고 나서 샴푸나 주방세제를 쓰지 못하고 지낸다. 눈에 안보일 때는 나 몰라라 했는데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빤히 보면서는 차마 세제를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절대 일하지 마시라'는 방송을 듣고 나 같은 사람이야 좋아라고 놀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결코 놀 분들이 아니다. 새벽 다섯시부터 일을 하고 오후에 해가 조금이라도 기울면 금방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저녁 먹고 난 후 깜깜해진 정자에서 이야기 소리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려가니 제수네, 계산댁, 연심이네가 앉아서 토란대를 벗기고 있다. 조금 있자 제금이네가 옥수수 삶은 것을 가지고 나온다. 우리 마을에서는 밤이 되어 서늘해지면 정자에 모여앉아 토란대라도 벗기면서 논다.

 

 서늘해진 밤에 정자에 모여앉아 놀면서 일하면서
서늘해진 밤에 정자에 모여앉아 놀면서 일하면서 ⓒ 김영희

#귀촌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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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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