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5kg은 저절로 빠져요. 걱정 말고 입금부터 하세요."카카오톡(이하 카톡)으로 불법 식욕억제제를 판매하는 A씨의 말이다. A씨는 카톡으로 주문을 받고 입금이 확인되면 발신 주소를 적지 않은 택배로 약을 배달한다.
얼굴 없는 불법 식욕억제제 판매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약으로 체중감량했다는 광고를 올리고 카톡 아이디로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판매한다.
이들은 국내에서 불법으로 지정된 갑상선 호르몬제나 마약류로 지정된 시부트라민 성분 등이 포함된 식욕억제제를 수입해 판매한다. 이뿐 아니라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가 허가하지 않은 성분으로 직접 약을 불법으로 제조해 판매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병원에서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식욕억제제(
관련기사 : 식욕억제제 사봤더니... '무한리필' 가능하다)로 내성이 생긴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국내 금지 약물, 태국서 대리 처방해 유통 기자가 한 인터넷 카페에서 유명한 식욕억제제를 사기 위해 A씨의 카톡 아이디로 연락을 시도했다. A씨는 "태국 얀희 병원에서 대리 처방해서 들여온다"며 "1단계에서 15단계까지 있고 원하는 단계를 원하는 양만큼 주겠다"고 말했다.
일명 '얀희다이어트약'으로 불리는 이 약은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된 약이다. 태국의 종합병원인 얀희병원에서 제조한 것으로 갑상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신진대사를 활성화하고 신체가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해 감량 효과를 낸다.
이 약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FDA가 사용을 금지한 시부트라민도 검출됐다. 시부트라민은 뇌의 식욕을 조절하는 향정신성 비만치료제다. 그러나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 부작용 우려가 높아지며 현재 국내에서 판매가 중단된 의약품이다.
그러나 A씨는 "불법이라도 걸리지 않는다"며 "결국 병원약을 먹고 내성이 생긴 분들도 얀희약으로 돌아오더라. 그만큼 효과가 강력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얀희다이어트약은 갑상선 항진증 등 부작용 사례가 속출해 식약처에서 검색어 모니터링 항목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기자가 인터넷 카페를 검색해 본 결과 4명의 얀희다이어트약 판매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포털 검색만으로도 5명의 판매자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다.
'약 조제 누가 하나' 질문에, "아는 분이..."두 번째로 구매해 본 레이싱걸약. 레이싱걸들이 몸매 유지를 위해 먹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약 또한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의 홍보글에서 쉽게 판매자의 카톡 아이디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약은 일반인이 제조해 판매하는 불법 의약품이었다.
기자가 판매자 B씨에게 약에 대해 카톡으로 묻자, 20초도 안 돼서 장문의 홍보문구를 보내왔다. B씨는 "13kg에서 최대 20kg까지 감량 가능하다. 두 달분이 24만 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계좌번호를 보내며 말했다.
"문의예약 폭주로 한 분만 바로 가능합니다. 원하는 개월 수 말하시고 입금부터 서두르세요."기자가 약을 조제하는 사람과 성분에 대해 묻자 B씨는 "아는 분이 제조한다"며 "식욕억제 성분이 들어가지만 안 좋은 성분은 넣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부작용이 있으면 나에게 카톡으로 문의하라"고 말했다.
기자가 나흘간 취재해 본 결과, 불법 성분을 포함한 얀희다이어트약과 레이싱걸약을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에 약을 먹고 살을 뺐다는 체험수기에 판매자의 카톡 아이디를 올리고 약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복수의 체험수기 작성자로부터 같은 판매자의 아이디를 추천받았다.
이들은 카톡을 수단으로 식욕억제제를 팔아 구매자가 판매자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도록 한다. 잘못된 약을 먹고 부작용을 겪어도 피해자는 구제받기 어렵다. SNS를 통해 판매해 확산 속도 또한 빠르다.
태국산 얀희다이어트약, "갑상선 항진증 유발" 대한비만체형학회 회장인 장두열 체인지클리닉 원장은 "갑상선 호르몬제는 다이어트약을 위해 절대 쓰면 안 되는 약"이라며 "얀희 다이어트약은 처음엔 대사가 촉진되어 살이 빠지겠지만 결국엔 갑상선 항진증이 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게 나올 경우, 심장이 심하게 뛰고 땀이 많이 난다"며 "항상 흥분되어 있거나 불면증 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일반인이 제조해 판매하는 약은 처음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강한 성분을 쓴다"며 "체질에 맞지 않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혼합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런 얀희 다이어트약이나 레이싱걸 약을 먹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ㄱ씨(31, 여) "얀희다이어트약이 요요도 없고 효과가 좋다고 해서 작년 겨울에 복용했어요. 하루에 2kg이 빠지더라고요. 근데 계속 안절부절못하겠고 손이 떨렸어요. 그러다가 편도선이 붓고 열이 안 내려서 응급실을 갔어요. 의사가 갑상선 약 먹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갑상선 호르몬 과다 분비라고. 조울증도 와서 갑자기 막 즐겁다가 새벽엔 우울해서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어요." ㄴ씨(23, 여) "병원에서 식욕억제제를 많이 처방받아서 복용하다보니 내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네이버 다이어트 카페에서 얀희 다이어트약이 좋다는 글이 있기에 주문해서 먹어봤어요. 직장 생활하는데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더라고요. 먹는 것도 없이 설사하고. 1주일에 3kg가 빠졌어요. 계속 목이 쉬고 두통이 있어서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혹시 태국약 먹었냐고 묻더라고요. 이 약 먹고 쓰러지는 중 고등학생들이 왔었다고 했어요. 인터넷 카페에 어떤 사람은 이 약 먹고 갑상선 항진증에 걸렸다고 하더라고요.""관련기관 관리 소홀 원인"... 식약처 "점검 잘 하고 있다"그렇다면 국내에서 불법인 얀희다이어트약과 무자격자가 조제한 레이싱걸약이 어떻게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일까. 대한약사회 학술자문위원인 김성철 영남대학교 임상약학대학원 교수는 "관련기관들이 인터넷의 불법 식욕억제제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선 살 빼는 목적으로 갑상선 기능 호르몬제를 복용했을 때는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복용하지 못하게 한다"며 "그러나 불법 판매자에게는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는 약이니 죽든지 말든지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절박한 사람들은 불법 식욕억제제 정보에 혹할 수 있다"며 "관련기관 사이버대응팀이 인터넷의 불법 식욕억제제 광고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데 잘 이뤄지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식약처의 2013년 의약품·마약류 제조·유통관리 기본계획서를 보면 의약품 불법 유통 점검 대상으로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 다음 티스토리, 구글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불법 유통 모니터링 요원이 지정 검색어를 수시로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지정 검색어에는 얀희 다이어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검색해 본 결과, 네이버 카페에서 후기를 가장한 광고는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카톡아이디를 공개하고 약을 홍보하는 블로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구글은 검색만으로도 불법 식욕억제제 판매자들의 카톡 아이디가 나온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불법 의약품이 한 두 개도 아닌데 얀희다이어트약을 잘 알지 못한다"며 "우리는 인터넷 모니터링이나 점검을 잘하고 있다"며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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