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날 보내준 선물
해마다 이맘때면 '불볕더위' '한증막' '찜통' '가마솥' 등 이런 짜증스런 말들이 뉴스시간마다 단골로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간다.
뜨거운 여름이 있어야 농사꾼들은 가을에 풍성한 알곡을 거둘 수 있고,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은 다음해까지 배불리 먹고 살 수가 있다.
지난 월요일(12일)은 말복으로 아마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나 보다. 우리 내외는 집안에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이 원시인처럼 더위와 씨름하고 사는지라 나는 이즈음 한낮은 치악산 구룡사 계곡으로 가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독서로 피서를 하는 날이 많다.
그날 산책길에 우편함을 지나는데 두툼한 봉투가 있기에 뜯어보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지요하 선생이 보낸 <그리운 천수만>이라는 시집이었다. 아마도 이 뜨거운 여름 구슬땀을 흘리시며 온갖 정성을 들여 엮었으리라.
나는 시내버스정류장에서, 구룡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구룡사 계곡 내 단골 나무의자에 앉아, 지요하 선생의 힘차고 올곧은 폭포수와 같은 시원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수회 때였다. 그때 전국에서 모여든 50여 시민기자들은 1박 2일 연수를 받으며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눈 바 있다. 그때 사귄 분 가운데 이즈음까지 한결같이 활동하시는 분은 지요하·김민수·임윤수 기자 등으로, 나는 지금도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이분들의 기사를 보면 마치 옛 친구를 만나듯 무척 반갑고, 남다른 정을 느끼며, 그리고 그분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청년 지요하를 만나다
지요하 선생은 나보다 세 살 아래로 올해 춘추 예순 여섯인 데도 20대 청년을 만난 듯, 그의 글에는 피끓는 기백과 용기, 그리고 정의감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해(2012년) 3월 25일 경기도 안성 유무상통마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2주년 추념제에서 또 그를 만났다.
유무상통마을 촌장이신 방구들장 신부님은 열혈 안중근 의사 숭배자로 유무상통마을 마당에다가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시고 해마다 안중근 의사 제삿날 즈음에는 3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 안중근 바보장학금을 전달하는 거룩한 사업을 하고 계신다.
나는 신부님의 뜨거운 정성에 감동한 나머지, 내가 <영웅 안중근>을 집필하고자 답사길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뤼순감옥 수형자 묘지에서 채취해 온 흙 가운데 반은 효창동 안중근 의사 묘소 봉분에 뿌렸고, 남은 흙을 박도글방에 보관해 오던 중, 이를 안중근 의사 동상 주춧돌에다 합토(合土)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러자 방 신부님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여 그날 추념제에서 합토식을 갖기로 하였다.
그날 그 행사에 뜻밖에도 귀빈으로 지요하 선생이 오셔서 헌시를 낭송해 주셨는데, 선생의 폭포수 같은 우렁찬 낭송에 나는 전율감과 함께 내 영혼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안중근 장군 추모 헌시일곱 개의 표적, 일곱 개의 총알을 지니고 살자!1909년 10월 26일 오전 화창한 햇살 아래 만물이 생기를 발하던 시각만주 하얼빈 역에서 울려 퍼진일곱 발의 총성은한겨레 5천년 역사를 관통하며한겨레 수만 년 미래를 뜨겁게 비출웅혼하고도 장엄한 함성이었다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박힌 세 발의 총탄은'애국ㆍ애족ㆍ정의'라는 세 가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동시에 날아간 네 발의 총탄에는대한남아의 피 끓는 기상탐욕과 불의에 대한 응징동양 평화에 대한 사상밀알이 되고자 하는 희생정신네 가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그리하여 그날의 하얼빈 역 총성은전 세계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우렁찬 함성이었고,오늘도 7천만 겨레의 가슴에 굽이치는민족정기의 용광로역사 창조의 원동력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순국 얼이100년을 지나 더욱 창대히 펼쳐지는 오늘우리 모두는 장군으로부터새롭게 일곱 개의 총알을 받는다벗이여, 동지여!자라나는 대한의 새싹들이여! 청년들이여!우리 모두 안중근 장군께서 주시는 일곱 개의 총알을 가슴 깊이 간직하자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진실과 정의민족정기라는 이름의 육혈포를 늘 닦고 매만지며 가슴에 품고 살자일곱 개의 총알에는 각각의 임무일곱 가지 대상이 있음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에도 새기자노력 없는 부양심 없는 쾌락인격 없는 지식도덕성 없는 상업인성 없는 과학희생 없는 기도원칙 없는 정치마하트마 간디가 제시한 일곱 가지 죄악이우리 평생의 적임을 늘 헤아리며 되새기자 우리가 바르게 보고 거리를 맞추며안중근 장군처럼 정확한 사격술로 명중시켜야 할 대상도깨비 형상을 한 괴물들은하얼빈 역에서도 살아나저 루치페의 군단처럼 우리 눈앞에서 시시각각 출몰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능멸하고 민족평화통일을 부정하는 세력강대국에 굴종하며 아부하는 사대주의 근성분배 정의를 외면하는 천민자본주의국토 훼손과 환경 파괴를 자행하는 물신의 탐욕군비 확충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미신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사이비 언론분별을 잃고 좌와 우만 가르는 미숙한 국민그 모든 허깨비들이 우리의 적임을 바르게 알고마하트마 간디가 제시해준 일곱 가지 표적안중근 장군이 우리에게 선사한 일곱 개의 총알을 늘 가슴에 지니고,명확한 역사의식이 우리의 진정한 희망임을 명심하자! 그리하여 2012년 오늘 우리 다 함께 선거혁명의 길민주회복의 길민족평화통일의 길을 향해약동의 힘찬 발걸음을다시 나누며 뜨겁게 나아가자!벗이여! 동지여!자라나는 대한의 새싹들이여! 청년들이여!
시집 <그리운 천수만>태안문학 30호·지요하 등단 30년기념 헌정시집 <그리운 천수만>에는 연작시 '그리운 천수만' 12편 등 모두 48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구슬에 꿰어져 있다. 내 군말이 그의 시에 티가 될 것 같아 연작시 가운데 가장 짧은 '그리운 천수만· 3' 한 수만 전재해 본다.
그리운 천수만 ‧ 3반곡리에서옛날엔 부촌(富村)이었지땅처럼 네 것 내 것 가를 수 없는 바다한 사람 것이 아닌물 때 아는 모든 사람의 것인 갯벌썰물 따라 개에 나가한 나절 갯벌과 사귀면아녀자도 돈 벌기 쉬웠지잡는 것 캐는 것 따는 것 뜯는 것물에서도 펄에서도비린내 갯내음 싱싱 풍겨나는 푸른색 지폐가 지천이었지아, 그 시절은 어디로 갔나바닷물 조용히 들고 나며수고한 만큼씩 허리춤에 넣어주던기쁨과 평화자식들의 늘펀한 미래아, 그 시절 어디로 갔나보이지 않는 천수만 제방 너머먼 하늘에 얼비치는빼앗긴 바다, 지난 세월의 아픈 손짓이여!나는 이 시를 소설 읽듯이 한꺼번에 다 읽을 수 없어 이 시집을 사흘 동안 나눠 읽고, 이 아침 지요하 선생에 대한 인연과 고마움, 감동한 얘기들을 이것저것 두서없이 긁적여 보았다.
나는 그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게 많다. 그는 평생 고향 태안을 지키는 정직한 향토인이요, 독실한 신앙인이요, 행동하는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있기에 충남 태안은 늘 푸른 고장으로, 새 생명을 배고 자라게 하는 넉넉한 고장이 되리라 믿는다.
한 시인은 그 고장의 보배다.
덧붙이는 글 | 그리운 천수만 / 지요하 목적시집 / 도서출판 가야 / 10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