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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에 도착해 바라본 요양원 앞 은행나무 뜨락은 가로등만 빛난다.
 산청 성심원에 도착해 바라본 요양원 앞 은행나무 뜨락은 가로등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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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행정사무 일을 하다가 3년 전 사회복지 현장 돌봄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아는 어르신들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슨 일 있느냐"부터 시작해 "곧 행정사무로 복귀할 거다"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도 했다.

사회복지종사자들은 행정사무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돌봄 노동자가 더 많다. 더구나 성심원처럼 생활시설인 경우는 절대다수가 돌봄 노동자다. 그럼에도 행정사무를 보는 노동자가 현장의 돌봄 노동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동료와 어르신들을 보면 때로는 의아하고 갑갑했다.

사무직이나 현장직이나 노동의 소중함은 다 같이 소중하고 거룩하지만, 아직도 현장직, 몸으로 더 많이 일하는 직종은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많다. 비단 성심원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다 그렇다. 육체 노동자를 얕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오늘 이 밤도 무사히 건강하게 지내길 기원하며 밤 근무를 섰다.

밤 9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밤중에 특별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기저귀 3번 교체와 야간 라운딩이 주 일과다. 오늘도 다행히 위급한 상황과 위중한 어르신이 계시지 않아 밤은 더욱 깊어갔다. 동료와 교대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후다닥 아침을 맞는다.

노인전문주택 가정사에도 아침은 왔다.
 노인전문주택 가정사에도 아침은 왔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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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로 아침 6시를 알리는 원내 방송을 하고는 부지런히 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어르신들을 깨웠다. 대성당 올라가는 길, 가로등만 간밤의 흔적을 간직한 채 빛나고 있을 뿐이다. 노인전문주택 가정사에도 아침은 왔다. 부지런한 어르신들은 성당 미사 봉헌을 위해 벌써 요양원으로 하나둘 불편한 몸을 휠체어 등에 의지해 움직여 왔다.

요양원 안내실 앞. 성당으로 가는 길목 소파에 요아킴 어르신이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시다.
 요양원 안내실 앞. 성당으로 가는 길목 소파에 요아킴 어르신이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시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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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안내실 앞. 성당으로 가는 길목 소파에 요아킴 어르신이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시다. 몇 년 전 근처 진주 청동기 박물관으로 요양원 어르신들과 소풍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르신께 앞도 보이지 않는데 불편하지는 않는지 여쭌 적이 있었다. "경치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요" 라며 일어나 노래를 부르셨다. 두 눈으로 보는 세상만 바라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내 무지가 깨졌다.

동갑내기로 이곳에서는 막내 해당하는 김 아무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 세수한다.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 누군지 물어보느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은 갑장은 그저 씨익 웃는다.
 동갑내기로 이곳에서는 막내 해당하는 김 아무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 세수한다.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 누군지 물어보느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은 갑장은 그저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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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로 이곳에서는 막내 해당하는 김아무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 세수한다.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 누군지 물어보느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에 갑장은 그저 씨익 웃는다. 몸이 불편해 집에서 생활하다 가족이 돌보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이곳으로 왔다.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 갑갑했지만, 차츰 눈치 등으로 알아듣는다. 언제까지 여기서 생활하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이 세월을 먹어가는 동갑내기가 있다는 사실에 반갑다.

청소실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원내 쓰레기를 따로 거두는 어르신의 손놀림이 바쁘다.
 청소실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원내 쓰레기를 따로 거두는 어르신의 손놀림이 바쁘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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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실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원내 쓰레기를 따로 거두는 어르신의 손놀림이 바쁘다. 요즘은 3시 즈음에 일어나 경호강 언저리로 산책하러 다녀온 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신단다. 생활인 중에서 비교적 건강하신 분들의 노력 덕분에 살기 좋다.

성심원 건너편 산자락에 모락모락 피어오른 안개로 산이 하얗다.
 성심원 건너편 산자락에 모락모락 피어오른 안개로 산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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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인계를 마치고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료를 뒤로 한 채 요양원 건물을 나섰다. 오늘도 얼마나 뜨거우려나. 성심원 건너편 산자락에 모락모락 피어오른 안개로 산이 하얗다.

<KBS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 코너에 나오는 유행어 '잠깐만요, 보라 언니 눈곱 떼고 가시게요~'처럼 차 안에서 시동을 걸고 2분 동안 숨 고르기 하면서 초췌한 내 얼굴을 룸미러로 살피며 눈곱을 뗐다. 밤 지새우고 아침 세수를 하지 않았네. 산청과 진주의 경계를 지날 무렵 어제 출근길에 사온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럼에도 졸음에 겨워 뺨을 때렸다. 내가 내 뺨을. 허벅지도 꼬집었다. 잠과의 전쟁이 따로 없다. 밤을 지새운 고역으로 혹여 졸음운전을 할까 냉커피도 마시고 차량 스피커 볼륨도 최대한 올리고 창문도 내리고. 집으로 가는 마지막 고갯길.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처럼 끈질기게 졸음은 다시금 눈꺼풀을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한다.

"잠깐만요, 뺨 좀 때리고 갈게요~"

내 양 볼이 술을 마신 듯 붉은빛을 발할 때면 집에 도착한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안도의 숨을 쉬고 집의 현관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 내 일기장, <해찬솔일기>에도 게재합니다. http://blog.daum.net/haechansol71/485



태그:#산청 성심원, #밤샘 근무, #돌봄 노동자, #잠깐만요, 보라 언니, #해찬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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