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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심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심문을 해 논란을 빚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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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라남도 유일의 광역시 그 광주 맞습니다.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제1호인 조명철씨가 그토록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로 그 광주입니다. 연일 날도 뜨거운데, 그 조씨 때문에 요며칠 잠 한 숨 제대로 못 잤습니다. 밤새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작심하고 말 좀 하려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정말 너무들 합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가 낳은 이 땅 자식들 때문입니까. 1980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자식들 수백 명이 며칠 새에 불귀의 객이 됐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산 목숨 초개처럼 버렸습니다. 제 몸은 피로 물들고 무등산 골짝마다엔 원혼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그럼에도 온갖 핍박이 이어졌습니다. 허나 언젠가는 그 뜻을 알아주리라 믿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그 '미련한' 자식들을 이 나라의 양심은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그리 됐습니다. 제 자식들이 묻힌 땅은 국립묘지가 되었고, 기억만으로도 가슴 먹먹해지는 오월 그날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기리는 국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서러움과 원통함으로 막힌 가슴 뻥 뚫리는가 싶었습니다.

헌데 그런 기대가 성급했었나 봅니다. 많은 이에게, 제 이름 두 글자는 여전히 '천형'처럼 따라다닙니다. 또 다른 많은 이에게, 제 이름 두 글자는 '불온'의 다른 이름이 되고 있습니다. 제 이름 두 글자는 누군가에는 서럽고 억울한 기억의 아픔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정체 모를 공포의 근원입니다.

도대체 제가 왜 이래야 합니까. 저는 제가 광주이고 싶어서 광주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서울이 서울이고 싶어서 서울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부산과 대구와 대전과 수원들이 각각 그 자신이 되고 싶어서 그곳에서 터잡고 살고 있겠습니까. 이 자명한 이치를, 왜 어떤 사람들은 그다지도 모른 체할까요.

광주라는 이름에 담긴 다른 뜻... '불온'

'연좌'란 말이 있습니다. 혈연 관계로 인해 당사자가 아닌 친족들이 처벌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연좌제는 뿌리가 깊습니다. 역사책을 뒤적여 보니 고대 부족 국가 부여에도 있었습니다. 부여의 연좌제는 사형을 받은 자나 살인자의 가족을 노비로 만드는 식이었습니다. 연좌제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폐지되기까지 오랫동안 많은 이를 옥죈 전근대적인 악습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웬 연좌제냐구요. 예의 조씨가 퉁방울 눈을 부라리며 현직 경찰인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향해 던진 말 때문입니다.

"광주의 경찰인가, 대한민국의 경찰인가?"

권 과장이 '광주의 경찰'이면 문제가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연좌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차별받고 핍박받는 것이니, 일종의 연좌제라고 할 수 있지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포함된 '5.18 역사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6월 10일 오전 광주를 출발해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보도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종편 '채널A'사옥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 5.18회원들 '채널A'앞에서 '광주출정가' 합창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포함된 '5.18 역사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6월 10일 오전 광주를 출발해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보도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종편 '채널A'사옥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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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연좌라니요. 저는 연좌제가 그 뚜껑에 단단히 못질을 한 관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놈은 결코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정치 이념이나 사상의 차이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식들 같은 장삼이사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쩌르르한 권력자들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많은 분이 그랬지만, 저는 조씨에게 "당신은 대한민국 의원이냐, 아니면 평양 의원이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대통령 박근혜님에게도 "부친이 남조선로동당 군사부 내의 군부조직책이었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연좌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 후보로 나온 1963년 선거에서도 폐지 공약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뒤로도 많은 위정자들이 연좌제 폐지를 강조했고, 또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애국자의 땅 광주의 자식이다" 당당히 말합시다

그럼에도 그 지독한 놈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관이 묻힌 곳에 콘크리트를 부어야 할까요, 아니면 깊은 바닷속 암반 아래 쇠사슬로 묶어 놓아야 할까요. 어찌된 영문인지 그놈은 여차직하면 나타나 세상 사람들 눈과 귀를 멀게 합니다. 사람들이 온전히 제 생각을 펼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너 광주 자식이냐?"는 한마디에 그 '너'는 덫에 걸린 생쥐처럼 옴짝달싹도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 이리 요악한 괴물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너 광주 자식이냐?" 류의 질문을 던지는 놈들은 가차없이 법정에 세웁시다. 그놈들이 법의 따끔한 맛을 볼 수 있도록 끝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집시다. 그래도 "너 광주 자식이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놈이 계속 생겨나면, "나 광주 자식이다"라고 당당히 말합시다. 그저 '광주 자식'만 말하지 말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애국자의 땅 광주의 자식이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되물읍시다. "그러는 너는 어디 자식이냐?"고. "네 부모가, 네가 살고 있는 땅이 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무어냐?"고 덧붙입시다. 결코 흥분하지는 말되, 눈에 결연한 핏발을 세우는 심정으로 끝까지 캐물읍시다.

그렇게 모두가 한바탕 질펀하게 '연좌 잔치'를 벌여봅시다. 그리하여 '너'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게 합시다. 그들이 다시는 나 '광주'를 조롱하듯 들먹이지 않도록, 기죽지 말고 뜨겁게 맞서 싸워봅시다.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을 부여안은 채 토해내는 저의 마지막 외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주, #서울 송파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 #새누리당 조명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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