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만든)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아래 자사고)를 교육부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한 것이다."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교육부가 지난 13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추진배경으로 "일반고가 전체 고교의 대다수임에도, 학생선발권·교육과정 자율성 등에서 특목고나 자율고(자율형 공립고·자율형 사립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음"을 꼽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윤 대표는 "일반고 학생은 입학 때부터 패배감을 갖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일반고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번 정책은 정확한 현실 인식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300프로젝트'로 인해 일부 학교에 성적에 따른 학생 선발권과 일반고에 비해 우선적인 선발권을 주면서 학교 간 격차가 심해졌다"며 "자율과 경쟁을 명분으로 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은 결국 고교 서열화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이번 방안에서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주로 자사고에 변화의 칼날이 가해졌다. 현재 '평준화 지역의 자사고'에서 학생 선발을 할 때 성적을 반영(서울 내신 50%, 서울 외 지역 내신 30% 이내)하던 것을 2015년부터 못하게 했다.
학생 선발시기도 전기에서 후기로 옮겨질 예정이다. 이로써 자사고는 고교 입시의 '기득권 요소'인 선발권과 선발시기에서 모두 불이익을 받게 됐다. 이에 전국 자사고 교장들의 모임인 전국자사고연합회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정책은 자사고 죽이기"라고 날을 세웠다.
한편 윤 대표는 이번 교육부 발표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다. 특수목적고등학교(아래 특목고)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목고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그 부분은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 뿐이다"며 "대다수의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고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서 그 부분을 급하게 손대다 보니 특목고를 포함해 고교교육 전반의 체제개편은 거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고교교육 개편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이번을 그 출발로 삼아 모든 고등학교의 학생선발방식이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다음달부터 올해 말까지 고교체제 문제를 주제로 10회 연속 토론회를 연다.
다음은 윤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22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 때 자사고 만들어진 뒤 일반고 문제 더 심화돼"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어떤 단체인가."2008년 6월 창립했다. 나는 참교육학부모회에서 10년 정도 활동했고, 송인수 공동대표는 좋은교사운동회 대표를 맡았었다. 둘이 교육개혁 의지를 갖고 있던 차에 더 본격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교육을 테마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25명이 상근 직원으로 있다. 사교육 자체의 문제와 그것을 유발하는 공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목표로 한다. 말 그래도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을 꿈꾼다."
- 현재 고등학교, 특히 일반고의 상황은 어떤가."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로 인해 자사고가 만들어졌다. 이전부터 있던 특목고 때문에 특목고-일반고 간 격차가 있었는데 자사고가 만들어 지면서 일반고의 문제가 더 심화됐다. 자사고에게 성적에 따른 학생 선발권과 일반고에 비해 우선 선발권을 주면서 학교 간 격차가 심해졌다.
그로 인해 일반고는 균형이 무너진 상황이다. 상중하 수준의 학생들이 적당한 비율로 배치돼야 하는데 상위권 학생들이 부족해 당장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교사는 잘하는 애들한테 더 집중이 돼 버려 다른 아이들이 소외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 8월 13일 교육부가 내놓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은 어떤 과정에서 나온 것인가."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은 자율과 경쟁이었고 고교 다양화 중시했는데 문제는 몇 학교를 뽑아서 학생선발의 특혜를 주다보니 수평적 다양성이 아니라 수직적 다양성이 생겨버렸다. 고교 다양화를 명분으로 자사고가 만들어졌지만 지난 5년간 사실상 대학입시 명문학교를 키운 셈이다. 그러면서 일반고만 더 황폐해졌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자사고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내부적으로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깜짝 놀랐다. 교육부가 이번 방안의 추진 배경으로 '일반고가 전체 고교의 대다수임에도, 학생선발권·교육과정 자율성 등에서 특목고나 자율고(자율형 공립고·자율형 사립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반고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번 정책은 정확한 현실 인식으로 보인다."
"본질적 문제 해결하려는 의지 보이나 특혜 있는 건 여전"
- 자사고가 단순히 '성적 좋은 학생'이 가는 학교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성적 우수학생을 뽑아갈 수 있게끔 한 것 자체가 자사고의 본래 목적인 '다양화된 교육'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특별한 재능을 지닌 학생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금은 특목고나 자사고나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2015년부터 '평준화 지역 자사고'의 입시에서 내신 성적 기준을 폐지(선지원 후추첨)한 건 어떤 의미가 있나. "불공정 경쟁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만약 이번 조치에서 일반고에 재정적인 지원을 늘리는 것에 그쳤다면 나쁜 정책은 아니나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학생선발권과 선발시기를 손 댄 것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 평준화 지역 자사고의 선발시기도 전기에서 후기로 바뀔 예정이다."선발시기를 후기로 옮기긴 했지만 일반고보다 한 달 앞서 선발하게 했다. 특혜가 있는 건 여전하다."
- 고등학교 선발 시기에 차별을 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건가. "만약 서울대에서 학생을 먼저 선발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기를 구분해 어떤 대학이 먼저, 나머지 대학이 나중에 학생을 선발하는 게 상식적인가. 고교 입시는 그런 식의 납득할 수 없는 정책이 오랫동안 이뤄져 왔다.
선발 시기가 나뉘다보니 일반고에 온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패배감을 갖고 들어온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관심이 없어 지원을 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까지 '떨어진 학생'이란 그릇된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고교 선발에 있어서 시기를 구분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본질적으로 자율형 사립고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데 선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닌 선발권 중심의 학교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고교교육 정상화 위해선 특목고도 개선해야"
- 이번 교육부의 방안을 보면 자사고에 비해 특목고엔 손을 덜 댄 것 같은데. "자사고와 특목고는 조금 다르다. 자사고는 다양성 있는 교육에 바탕을 두고 추진된 정책인데 그 목적에 맞지 않는 부작용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특목고는 수월성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필요하다는 게 국민적 인식으로 보인다. 이 둘을 한 번에 묶어 개선안을 내놓으면 자칫 자사고 문제가 묻힐 수 있다.
어쨌든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특목고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특목고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이번 방안에서는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 뿐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고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서 그 부분을 급하게 손대다 보니 특목고를 포함해 고교교육 전반의 체제개편은 거론하지 않은 것 같다."
- 고교 입학 제도와 사교육비의 상관관계는?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까?"일단 자사고에 칼날을 댔기 때문에 사교육비는 조금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번 교육부 방안에서 '살아 남은' 특목고의 위상은 더 올라갈 것이다. 그 부분의 사교육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일수록 사교육비 투자하고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 객관적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 일반고를 강화한다고 해서 근본적 서열이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상위 학교에 가기 위한 사교육비 투자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 고교 평준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근거리 배정과 교육과정의 획일화를 문제로 꼽는데 사실 근거리 배정은 나쁜 게 아니다. 교육과정의 획일화가 문제인데 고교 평준화가 곧 획일화는 아니다. 고교 평준화 이후 학교가 그런 노력을 안 한 것이다. 모든 학교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지 않나. 그러다 엉뚱하게 새로운 학교를 따로 만들어 다양성을 강조하고 지원을 몰아주니 지금의 자사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고교 평준화를 추구하면서도 개별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다양화하여 다양한 학생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교사별 평가가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가르치는 교사가 달라도 시험은 똑같은 내용으로 치른다. 그래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운다. 교사별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평가하게 되면 다양한 관점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획일화된 대학입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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