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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기온이 35도에 이르는 밀양의 날씨는 더웠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폭염'이라는 단어에 놀라지 않게 되었는데 한여름 폭염 기사에서 밀양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던 것이 기억난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고 더위를 잘 참는 편인데도 밤까지 무더위가 계속되니 참기 힘들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그 앞에서 몸을 식히다가 문득 낮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에너지 사용에 대해 내 생활을 돌아보고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한여름 에어컨 바람의 쾌적함을, 한겨울 전열기의 훈훈함을, 각종 전기 기기의 편리함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내 삶의 구석구석까지 전기가 들어 와 있다. 전기를 사용할 때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끄고 싶을 때 끄니까(버튼을 누르니까!) 사용의 주체가 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기 없는 상황을 떠올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에 닥치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면 된다, 세상에 풀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라고 꽤 자만하며 살아왔는데 전기 없는 상황, 무엇을 어디서부터 손 써야 할지 모르고 누군가 전기를 다시 넣어 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정말 암흑처럼 느껴졌다.

일상적으로 전기를 '소비'는 한다, 하지만, 이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어 어떤 경로로 내게 오는지'는 모른다, 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내게 오는 이 전기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내 집, 내 일터, 내가 사는 도시의 전기 버튼을 쥐고 있는가? 생각하니 온 나라의 전기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력의 권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독점'한 자의 위력은 대단하다. 전기가 부족해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아야 하고 올여름엔 전기가 부족하니 아껴 쓰라고 하면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서성거려야 한다. 누가 많이 쓰고 누가 덜 쓰고, 어떻게 쓰이는지 왜 부족한지 알지 못한 채.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가 제시하는 '대안'

밀양에 내려오기 전, 밀양의 송전탑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도 그랬다. '할매들은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전기는 꼭 필요하니까. 대신에 보상을 잘해 드리면 되겠지'라고.

그런데 여기 밀양에 와서 보니 무조건 새로 짓고 공급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에 가정주부인 나는 찬밥으로 누룽지를 만드는 전기 기계를 살까, 말까, 한참 망설였다. 누진율이 적용되면 전기 세가 확 오를 것 같아서 그리고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떠올리며 지난 몇 달간의 전기 사용량을 따져보았다.

그런데 <전력공화국의 명암>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철소에서 폐철을 녹이는 시설을 전기로(電氣爐)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 TV 화면에서 보여주는 시뻘건 용광로가 전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눈이 뒤집힐 뻔했다. 한쪽에서는 전기를 조금 더 쓰려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데, 그보다 저 시골 마을에서는 전기 때문에 생명권이 침해당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대안이 있는데도 전기를 막 쓴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기업의 대안은 비용과 효율이겠지, 그러니 기업에 싼값으로 전기를 막 퍼주는 것이 문제다).

지출이 많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살림의 기본 아닌가? 공급을 늘리기보다 전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무조건 새로 짓고 보는 게 아니라 있는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그러고 보면 보수언론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가 제시하는 '대안'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올 연말에 완공되는 신고리 3호기 전기는 기존의 신양산-동부산 송전선로, 신울산-신온산 송전선로로 보내라는 겁니다. 그러고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5, 6호기가 완공되는 10년 동안 우리가 제시한 지중화 방안을 검토하라는 겁니다. 올 연말에 공사가 시작되는 울산-함양고속도로와 밀양의 송전 선로가 15키로 구간이 겹칩니다. 지중화를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염두에 둔 송전선로인데 이미 건설된 3, 4호기의 전기는 기존의 송전선로에 용량을 늘리거나 계통 편입시키고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5, 6호기가 완공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송전선로를 땅 속에 묻는 지중화 같은 대안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상동면 고답마을 마을회관
 상동면 고답마을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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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이 원자력 발전소에 있다. 원자력 발전소 아니면 밀양에 765니 뭐니 이럴 필요가 없다 아이가."
"원자 힘을 이용해서 핵발전소를 만든다는 것은 전기는 흔하게 쓸지 모르지만 그것이 핵무기는 공격용이고 우리 이 핵은 산업용이다 뿐이지, 원자폭탄 터지나, 발전소가 터지나 똑같다."
"부산에 핵 발전소 자꾸 지어서 얼매나 많습니꺼? 그것이 터졌다 하면 어데 갑니까? 우리 다 어데 갑니까?"
"우리나라에는 바보만 사나?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터지는 것 보면서도 우리는 계속 짓겠다 하는 게 말이 되나? 핵 전기를 쓰지 말고 신재생 에너지, 다른 걸 써야지."

상동면 고정마을에 이어 고답마을을 찾아갔더니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계셨다. 칠팔십대의 어르신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폐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시골의 할매, 할배들이 진지하게 원자력 발전소니, 신재생 에너지니 하는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가 어디에 몇 개가 있고 그중에 어떤 것이 가동 중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몰랐던 나는 어르신들로부터 여러 가지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원자력 발전소, 송전탑 행렬의 시작점, 송전탑의 근원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2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폭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치과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였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아이들과 같이 일본의 지진, 쓰나미 피해 현장,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 장면을 보았다.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 기사로 읽다가 커다란 벽걸이 화면으로 보니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이들도 잔뜩 긴장해서 숨을 죽이고 봤다.

무슨 일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당시 인터넷에 나돌던 '원자력 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려 드리죠'라는 글을 발견했다. 글쓴이는 일본 사람 '히라이 노리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관 전문 현장감독으로 수십 년간 일했으며 후쿠시마 원전 건설에도 참여했었단다. 방사능이 위험하긴 하지만 사고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내게 이 글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전은 사용연한이 지나도 폐로나 해체가 어려워 '폐쇄'를 하는데 '폐쇄'의 의미란 발전을 멈추고, 핵연료를 뽑아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발전할 때와 똑같이, 물을 주입하고 가동시켜 감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핵폐기물, 반감기가 수만 년에 이르는, 그래서 아직까지 과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한 폐기 방안이 없으며, 일단 심해나 지하에 투기하고 매립하고 있는 핵폐기물을 생각하니 원전이 지금 어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발전하지 않는(돈벌이도 되지 않는) '폐쇄'된 발전소를 누가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것인가? 수많은 핵폐기물을 수백 년,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능한가? 결국 그 위험을 누가 떠안게 되느냐는 말이다.

2년 전 일기에 나는 '원자력 발전은 지금을 살기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 당시 블로그에 메모해 두었던 히라이 노리오의 글을 옮겨 본다. 글 속 아이들의 외침이 마치 우리 애들이 하는 말처럼 느껴져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5년 전 쯤, 홋카이도에서 강연회를 하던 중에 '방사능 쓰레기는 50년, 300년 동안 감시가 이어진다'고 말했더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이 있어요. 지금 폐기물을 50년, 300년 감시할 거라고 하셨지만, 지금의 어른들이 하실 건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이후의 우리들 세대, 또 그 다음의 세대가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희는 싫어요'라고 외치듯 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요. 게다가 50년, 300년이라 해도, 그 만큼만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전이 가동을 하는 한, 끝이 없는 영원한 50년, 300년인 것입니다.

강연이 대강 끝나서, 제가 질문 없습니까라고 말하니,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가 울면서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밤 이 모임에 온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에요. 저는 그 얼굴을 보러 왔어요. 어떤 얼굴을 하고 왔는지 보려구요. (...) 저는 토마리 원전 바로 근처에 있는 쿄와쵸에 살면서, 24시간 피폭 당하고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 주변, 영국의 셀러필드(Sellafield ; 영국 지방도시의 작은 마을, 핵재처리 공장, 핵연료사이클공장이 집중되어 있음)에서 백혈병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지역 원전 종사자, 주변 주민의 체내 플루토늄량이 높고, 소아백혈병발생률은 다른 지방의 10배이다)은, 책을 읽어서 알고 있어요. 

저도 여자예요.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도 하겠죠. 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건가요?'라며, 울면서 300명이나 되는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원전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지금이 아니라, 왜 처음 건설될 당시에 끝까지 반대하지 않았던 거죠. 더구나, 여기 와 있는 어른들은, 2호기까지 만들게 했잖아요. 가령 전기가 없어진대도, 저는 원전이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후쿠시마 참사,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원자력의 피해를 겪었는데도(겪고 있는데도! 방사능이 땅과 몸에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방사능으로부터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장을 볼 때마다 생선을 사는 게 얼마나 꺼려지는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묵, 머리 좋아지게 한다고 강남엄마들이 선호한다던 고등어, 못 먹은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여전히 원자력을 고집하는 것은 참 안타깝다.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고 비용도 싸지 않으며(발전소 건설 및 폐쇄, 핵폐기물 관리를 생각하면 원전이 경제적이라고 하는 것이 참 어이없다) 미래 세대에 큰 재앙을 떠넘기게 되는 뻔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왜 원전을 계속 짓고 있는지.

어르신들 말씀처럼 위험한 핵발전소는 그만 짓고 신재생 에너지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발전소를 대규모로 짓고 값싼 전기를 공급하여 수요를 늘리고 그래서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 악순환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뿐 아니라 전기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나서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스스로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대체에너지, 신재생에너지, 말처럼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처음이라 두려운 것이지 중요한 것은 의지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 대국이면서 17기의 원전을 보유한 나라 독일에서는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기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냈다고 한다. 인구 85만의 중소도시, 일본의 야마나시현은 태양광과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2050년까지 전력 100% 자급자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KBS <시사기획 창> - 전력공화국의 명암 참고) 자기 고장에서 전기를 만들어 자기 고장에서 사용하기, 그러면 굳이 송전탑을 세우느라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않으니 좋겠다.

변화에는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갑자기 지금 하던 방식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한다. 왜냐면,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 삼촌, 이모니까.

"송전탑 들어서면 벌이 사라진다니 그것도 문제"

단장면 동화전 마을 김정회씨 가족
 단장면 동화전 마을 김정회씨 가족
ⓒ 빈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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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것은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대파, 겨울 김장 배추, 무, 거의 밭작물이죠. 벼농사하고 이런 거 우리 묵을 거 좀 하고. 근데 우리 동네는 밤, 대추를 많이 하는데 송전탑 들어서면 벌이 사라진다니 그것도 문제랍니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귀농 11년 된 두 부부가 여섯 살, 열 살, 열네 살, 열일곱 살, 네 명의 아이와 유기농사를 지으며 산다. 김정회씨의 농장에서 텃밭, 축사, 논을 둘러보고 여섯 식구 가족사진을 찍어 드렸다.

상동면 고추따기 품앗이
 상동면 고추따기 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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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 보기에는 못 배우고 무식하게 보일지 몰라도 저희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 아닙니까. 이렇게 농사지어 도시로 내다 팔면 그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지 않습니꺼 우리는 그래도 그 분들의 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이런 채소들 농사지어서 같이 나눌 수 있다 카는 게 큰 자부심이고 농사짓는 사람이 무식하지 싶어도 다들 그렇게 무식하지 않아요.

나름 지혜롭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 사람들이 농부는 무식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이제 송전탑 생활이 되가지고 고추 따다가도 송전탑 백지화 소리도 질러보고 서로서로 이야기도 해보고, 맞아, 일하다가도 막 몸빼 바람으로 뛰 나가고, 무슨 일 벌어졌다 하면 막 뜁니더, 막. 그냥 놔두면 이렇게 고추 따며 재미있게 살 수 있는데."

상동면 김영자 아주머니의 비닐하우스 고추밭. 아주머니 여러분이 모여 품앗이를 한다.

단장면 동화전 마을
 단장면 동화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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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면 동화전 마을 정중앙 앞에서 비탈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윈 몸에 구부정한 허리, 초라한 옷차림. 밀양에 내려오기 전 머릿속에 떠올렸던 시골 할매의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비탈길을 올라가던 할매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분홍색 셔츠를 입고 셔츠와 색을 맞춘 듯 보라색 선글라스를 썼다. 직접 만나보니 할매들은 초라하고 무기력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어르신들 두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좀 어색하지만, 무척 발랄했다. 할매들과의 수다는 내용과 달리 유쾌하고 흥겹게 흘러갔다. 공사 현장에서 시퍼렇게 젊은 용역들과 몸싸움하던 일을 이야기하며 털썩 주저앉아 눈물 흘리다가도 얼마나 멋지게 맞섰는지, 어느새 무용담을 늘어놓는 할매들.

여기가 좋아
 여기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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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고로마. 앉아서 이바구하는 거 이거 좋고로마. 죽을 때까지 지금까지 살아온 매로 요대로만 살면 얼마나 좋노."

단장면 동화전마을 자두
 단장면 동화전마을 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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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며칠 머무르다보니, 할매들 말처럼 나도 여기가 좋아졌다. 공기 좋고, 경치 좋고, 너른 들판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웠고, 옥수수, 수박, 자두, 토마토, 과일과 채소에는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달콤한 맛이 살아 있었고 민물 생선으로 끓인 어탕 국수의 맛은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동화전마을 정중앙에서 먹은 자두, 나무에서 바로 따 주신 자두는 빛깔처럼 맛도 예술이었다. 거창 시댁에 두고 온, 자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아이에게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으로나마 찍어 두었다. 다음에는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와야지, 생각하면서.

평밭마을 농성장 움막
 평밭마을 농성장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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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밭마을 철탑 부지
 평밭마을 철탑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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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일찍 평밭 마을에 다시 올랐다. 송전탑 세우겠다고 한전이 베어낸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 지킨다고 추운 겨울 찬밥 덩이 먹으며 새벽같이 산에 오르던 할매들, 못 베어내게 나무 둥치 껴안고 "이렇게 나무 다 잘라내고 나면 너흰 어디 기대고 살래?" 하고 물으셨다는 일화는 가슴 속에서 새록새록 떠올라 숙연해지곤 한다.

밀양 상동면
 밀양 상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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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나의 3박 4일간의 휴가는 끝이 났다. 내가 밀양을 떠나오던 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진실로 소통할 것"이라며 2박 3일 일정으로 밀양에 내려왔다. 휴가 기간이 비슷하여 혹시라도 장관님을 직접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일정이 어긋나서 뵐 수 없었다.

그러나 소문을 들어보니, 아니 일부러 기사를 찾아보니, 같은 날 밀양에 있었어도 장관님을 뵙지 못했을 거라는 결론을 얻었다. 장관님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진실로 소통한다고 하시고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 아닌 '유림'과 '상공인', '스님'을 만났단다.

주민들에게는, 소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업의 불가피성을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곧 사업을 밀어붙일 것을 알리는 일방적인 편지를 보냈고 "조만간 보상협의체도 구성하고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개별 접촉해서 (주민 분열을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다. 장관님을 뵙지 못했지만, 사실상 '공사 강행'을 알리는 장관님의 편지는 장관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정말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었을까?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분이 왜 먼저 '공사 강행'을 알리는, 주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편지를 보냈을까? 먼저 다녀온 사람으로서 '밀양 송전탑 휴가'에서 꼭 들러야 할 곳,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든지 특별한 맛 집, 같은 정보를 알려 드렸으면 좋았을 걸 싶다.

보수언론 기사엔 없는 내가 듣고 본 이야기들

밀양에 다녀오고 나서,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찾아간 그곳에서 넘치는 환대를 받았고 '세 개의 거울에 비추어'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시대(時代)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알려내야 할 필요성 내지는 책임감이 찾아왔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밀양에서 녹취한 음성 파일을 다시 듣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구해 보았는데 그러면서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 기사도 들여다보았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만난 주민들, 내가 들은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주민들과 한전의 충돌, 송전탑 반대 대책위의 활동을 다루더라도 한전의 입장에 충실한 보도를 하고 마지막은 "주민 만족할 수준으로 보상할 것"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하였다. 이것은 읽는 이들에게 모든 문제가 '보상'에 달려있고, 할매들의 지난한 싸움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블랙아웃'의 공포를 운운하며 밀양의 송전선로가 건설돼야 전기 걱정을 안 하게 될 것처럼 다루는 것도 안타까웠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에너지 위기'를 운운하는 것이, 원전비리와 밀양 송전탑, 전국 각지의 발전소 예정지의 정당한 싸움으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 같다는 의심도 들었다.

"얼마 전에 <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를 봤어예. 저는 용산 참사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그냥 먼 곳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 텔레비전 화면이 너무 끔찍해서 폭도들이 일으킨 사건인 줄로만 알았어요. 우리가 이런 일을 겪고 그러면서 보니, 세상에 우리처럼 억울한 사람들이 많데예." (단장면 김정회 씨)

사실, 나는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아이들과 늘 같이 지내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하지만 시간을 내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된 것은 훈훈했지만, 사람이 죽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야 후일담처럼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들여다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언제까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만 외칠 것인가?

김정회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에린브로코비치>다. 대기업의 횡포,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싸워 이겨낸 약자의 이야기,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는 하나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 하지 않던가?

밀양 휴가를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웠던 이 여름의 막바지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5월 이후 대안을 모색하는 양 꾸려진 '전문가 협의체'가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세상과 언론 앞에서 '소통'의 가면으로 꾸몄던 높으신 분의 행차 뒤에는 '공사 강행'을 알리는 협박의 편지만 남았다.

쇼 타임은 끝났다. 지금 밀양은 달콤한 말로 한전의 입장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관변단체들이 내건 송전송전탑 반대 주민을 비방하는 플래카드로 도배되어 있단다. 보상협의체가 꾸려지면 돈으로, 감언이설로 주민들을 가르고 마을 공동체를 부수려 할 것이다. 도시에 살며 여름내 전력난의 공포에 시달린 우리는 역시 전기 없이는 살 수 없어, 라며 송전탑 싸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밀양이 고립되어 간다고 누군가는 걱정한다.

밀양 무지개
 밀양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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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소망한다. 밀양에서 보았던 무지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누군가 '희망의 밀양'이라고 댓글을 달아 주었던 그 무지개를 떠올리며 밀양의 이야기가 비극적인 결말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기를, '에린 브로코비치'처럼 이기는 싸움이 되기를!

"우리 일당이 백 만 원이라 안 합니꺼? 저희가 언제 일당을 이래 받아 보겠능교!"

엊그제 글을 쓰다가 확인할 게 있어서 상동면 김영자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요즘 밀양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더니 예의 그 호탕한 웃음으로 씩씩하게 말씀하신다. 한전이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와 주민 26명에게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어 계속 공사를 방해할 경우 하루에 100만 원씩 물리겠다고 했는데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아, 나는 이분들이 좋다. 이런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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