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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도 타보고...
 풍요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도 타보고...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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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맑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본다. 저 별들은 어디서 건너온 별들일까? 저 별빛은 어떻게 저렇게도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산할 수 있을까? 잠시 그렇게 홀로 서서, 상렴 속에 별빛을 헤이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르는 아기 별빛과 더불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아기별님. 아기 별님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여기가 어디인지는 아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의 세상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답니다. 어른들과 언니 오빠들이 모두 함께 나들이차 놀러 나왔어요. 그런데 모두들 지금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곧 햇님이 떠오를 것 같은데, 빨리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울상 짓는 아기별의 귀여운 표정에 그만 내 입가로 살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한참을 창가에서 떠나지 않는 아빠가 이상해서일까 풍요가 옆으로 다가와 세찬 꼬리짓으로 내 눈길을 돌려세운다.

"아빠, 뭐 하세요 거기서?"
"뭐하긴, 저 하늘의 아기별님과 인사했지."
"정말 오랫만에 별님이 찾아주셨네요."
"그래 풍요야, 너도 별님이 좋지?"
"그럼요, 그걸 말씀이라고하세요? 다만 제가 아직 하늘나라 말을 못배워 아빠처럼 능숙한 대화를 못해서 좀 아쉽긴하지만요."

"아쉬울것 없다 풍요야, 별님이랑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거야. 그러니 하늘나라 말을 모른다고 하나도 주눅 들 거 없어."
"그래요? 그런데 왜 저와는 별님이 대화를 안 나눠주시죠?"
"에이, 그건 네가 마음의 눈이 어두워 그렇고, 또 마음의 귀가 안 밝아, 그런거지, 결코 하늘나라 말을 못해서가 아니란다."
"아, 그런가요? 그나저나 아빠, 저 배가 많이 고프단말이에요. 밥은 언제 주시고 또 화장실은 언제 데리고 가주실네요?"
"그래 풍요야, 지금 바로 밥상 차려다주마. 조금만 기다려."

얼른 사료실로 들어가 한그릇 듬뿍 사료를 퍼내어 그릇에 담고, 작은 소반으로 받쳐, 급한 발길로 풍요에게로  돌아온다.

"풍요야 맛있게 많이 먹어라."
"네, 아빠. 와작 와작 와자자작..."

난 맛있게 말끔히 그릇을 비운 풍요를 데리고 기숙사 뒤 용변 장소를 찾아간다. 오늘도 별 어려움 없이 제빨리 소, 대변 모두를 손쉽게 끝내주는 녀석이 한 없이 사랑스럽다. 재빨리 기숙사방 욕실로 들어가, 수건을 빨아다 풍요의 온몸을 닦아주고, 빗질을 해준다.

"풍요야, 오늘도 예쁘게 단장하고, 아빠하고 보행 훈련 나가야지?"
"네, 아빠... 그런데 저는 아빠가 제 몸을 빗겨주실 때가 많이 부끄러워요. 특히 엉덩이나 꼬리를 만지실 때는 너무 간지럽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 이제부터 매일 너를 이렇게 씻기고, 빗겨줄 텐데, 그때마다 그렇게 간지럽고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제대로 단장시켜주겠니? 그냥 마음 편히 아빠는 아빠니까 긴장하지마라. 알았지?"
"네, 그치만..."

오늘은 아침 식사 후,  담당 지도 선생님과 서울로 보행 훈련을 나가기로 했다. 서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다는 강남으로 훈련지를 선택했다. 강남대로의 복잡한 인도를, 풍요의 안내로 별일 없이 잘 걸어간다. 이 뜨거운 무더위에도, 인도엔 지나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지나는 행인들과 길가 상가에서 내어놓은 각종 물건들에 약간씩 부딛히며 길을 걷는다.

안내견과 함께 걸어가고 있음에도, 제 갈길에 바빠, 자기 앞만 바라보며 걸어가는 인파에, 떠밀리고 스쳐가며 그렇게 꿋꿋이 길을 걸어간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면서도, 별로 지친 기색 없이 내 앞길을 안내해가는 녀석이 자못 자랑스럽기까지하다.

커피숍에 들러, 그간 사정상 마실 수 없었던 원두커피를 한 잔 마셔본다. 그윽한 향기로 가슴 저 밑바닥까지 젖어드는 커피 내음과 아름다운 음악에, 더위에 지치고, 훈련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나른하게 녹는다. 잠시 후, 커피숍을 나와,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길을 피해, 그늘을 골라 걸어본다.

그늘에도 뜨거운 대지의 열기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흐르는 땀을 씻겨내리는 보드라운 바람결이 있어, 한결 숨 쉬기가 편하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도 타보고, 복잡한 상가 사이를 지나, 지상의 식당가로 찾아든다. 그리고 야채부패에서 점심밥을 먹는다. 풍요의 미모에 반한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다정한 손길이 녀석의 머리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안내견은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괜찮아요. 나는 개를 워낙 좋아해서."

내가 안된다는데, 정작 실례를 범하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는 괜찮단다. 주객이 철저히 전도된 것이다. 다시 엄격한 음성으로 아주머니의 쓰다듬는 손길을 제지한다.

"지금 이 아이는 훈련중이므로, 분심을 유도하는 동작이나, 만지시는 행동, 그리고 먹을 것을 주는 것 등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듯 뒤로 물러서는 주인 아주머니의 눈길에 못내 아쉬움이 서린다.

"아빠, 역시 동물이건 사람이건 잘 생기고 봐야 돼요. 그치요?"
"풍요야, 네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은데, 네가 잘 생겼다는데에는 선듯 동의를 하기가 좀 그러네."

"에이, 아빠는 왜 또 그러세요? 저 식당 주인 아주머니를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서빙하는 언니들도 저를 한 번 만져보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잖아요."
"그건 그러네. 그런데 아빤 저분들이 네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더 좋겠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어디 없겠니?"

"글쎄요... 사실 저도 그게 좀 고민은 돼요. 제가 아무리 저를 만지지말고, 따라다니며 스토킹 같은 짓 좀 그만 하시라고 말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니 원."

"개가 정말 참 착하네요. 식탁 밑에서 전혀 움직이질 않네."

지나던 식당 손님들의 칭찬으로 풍요의 콧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간다.

오후에는 다시 용인으로 돌아와, 용인 경전철 타는 훈련을 해본다. 노란 안전선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든 전철이 멈춰 선단다. 각별히 주의를 주시는 지도 선생님의 엄격한 통제로 풍요의 눈길에 잠시 긴장감이 어려온다. 그러나, 그 역시 별 무리 없이 잘 하는 풍요가 마냥 대견하다.

전철 안이 온통 텅 빈 채, 무인 운전으로 운행된다는 것이 아주 신기하기만 하다. 어르신 몇 분 외에는 승객이 전혀 없어, 의아함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손님이 없으니, 매일 적자 운행이라는거겠지요?"
"그러게요."

지도 선생님과 더불어 나란히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스쳐지나는 풍경을 바라본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자나."
"그러게, 못된 사람보다, 저런 개가 훨씬 낫지."
"그러게말이야, 저 개 많이 비싸겠지?"
"그럼... 저 개가 앞 못보는 사람을 안내해서 어디든지 간다잖아... 참 신기하지?"

소근소근 속삭이시는 어르신들의 대화와 호기심 짙은 시선까지가 모두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쏠려온다. 전동차를 타고 내리는데도, 계단을 오르 내리는데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엘레베이터를 타는데도, 풍요의 안내는 전혀 쭈뼛거리는 기색 없이 능숙한 안내견처럼 잘도 걸어간다.

"우리 풍요 정말 잘 하네, 앞으로 이 아빠를 위해 착실한 안내 잘 부탁해."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요... 열심히 노력하고 더욱 훈련해, 언제 어디서건 아빠에게 꼭 필요한 안내견이 되어드릴게요."

후즐근한 땀으로 물에 젖은 솜뭉치가 되어, 안내견학교 기숙사로 찾아드니, 어느새, 풍요의 저녁을 먹일 시간이다.

"풍요야, 오늘도 참 수고 많이 했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네, 아빠 저도 아빠 많이 사랑해요."

이제 오늘 밤이 기숙사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밤이다. 내일부터는 인천 우리집으로 가, 주변시설을 이용하고, 직장까지 전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게 2주 가량 각종 훈련을 통과해야, 비로소 풍요와 나는 한 쌍의 파트너로 맺어지는 것이다. 만일, 그 사이에 풍요의 행동이 안내견으로 부적당하다거나, 길가의 음식을 탐하여 안내를 게을리하면, 최종 단계에서 탈락하고마는 것이다.

"풍요야, 우리 풍요 고향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밤, 의미 있게 잘 보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인천 우리집이 너의 집이 돼는 거야 알았지?"
"네 아빠."

고개를 떨구고 석별의 정을 홀로 새기는 풍요가 더욱 귀엽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홈피 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안내견#입문#풍요#보행#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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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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