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무척 감사하다. 내 발로 걸어 다니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우선 할머니들께 감사한다. 할머니들께서 경찰서 앞에서 밤을 새우며 지켰는데, 무척 고맙다."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에서 기각돼 석방된 밀양 단장면 동화전마을 송전탑반대 대책위 김정회(42) 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밝힌 소감이다. 김 위원장은 28일 오후 5시 15분 밀양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이준민 판사는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사는 "도주 우려가 없고 증거 인멸 우려가 없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재판부가 이 점도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밀양경찰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김 위원장을 지난 26일 오전 5시 55분께 집에서 연행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21~24일 사이 한국전력공사가 재개했던 송전탑 공사를 방해해 업무방해혐의를 받아왔다.
"공권력 남용하다가 실패한 사례"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은 지난 27일 오후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28일 오후 2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벌어졌다.
김 위원장의 변론을 맡았던 하귀남 변호사는 "김 위원장은 농번기에 처와 아들 넷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앞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겠다고 했는데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되자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반발했다. 특히 할머니·할아버지들은 26일 밀양경찰서 앞에서 석방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주민 20여 명은 이틀 동안 노숙 밤샘농성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나를 대신 잡아가라"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밀양경찰서 유치장에 있으면서 3일간 단식했다. 주민들은 28일 오전 밀양관아 앞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거리행진을 했으며 밀양가톨릭농민회는 지난 27일 저녁 밀양경찰서 앞에서 미사를 열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김준한 대표와 이계삼 사무국장·할머니·할아버지 24명을 상대로 법원에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김 위원장의 연행과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 등 일련의 조치가 공사 재개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고, 불충분한 사안에 대해 (검찰이) 공권력을 남용, 본보기로 한 주민을 잡아넣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사례라고 본다"며 "앞으로 공권력이 이런 방식으로 주민들 겁박하는 것을 경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단결하게 됐다"며 "차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공권력은 정당한 방법으로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3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경남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부산 고리-경남 양산-밀양-창녕 90.5km 구간에 걸쳐 765kV 송전탑 161기를 건설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밀양 구간(경과지 5개면) 가운데 단장·산외·상동·부북면에 52기의 송전탑이 들어서고, 단장면에만 21기가 들어서는데,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5월 말 공사를 잠정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