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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기념관에 비치된 동영상으로, 한국전쟁 전 좌익사범 처형장면이다. 헌병들이 좌익사범들을 나무기둥에 새끼로 묶은 뒤 왼쪽 가슴에 사격표지판을 붙이고 있다(서울동북쪽 10마일, 1950. 4. 14.).
맥아더기념관에 비치된 동영상으로, 한국전쟁 전 좌익사범 처형장면이다. 헌병들이 좌익사범들을 나무기둥에 새끼로 묶은 뒤 왼쪽 가슴에 사격표지판을 붙이고 있다(서울동북쪽 10마일, 1950. 4. 14.).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미국동포

미국은 역시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였다. 미국의 웬만한 주는 우리나라 남북한보다 더 넓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버지니아 주의 한 밀밭이 서울 여의도보다 훨씬 더 넓게 보였다. 고동우는 밋밋한 고속도로를 달리기가 무료했던지 침묵을 깨트렸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대체로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니고 살고 있어요. 아마 용문옥 김준기씨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저도 이곳에 머물며 동포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니까 고 선생님 말씀대로 저마다 한두 가지 아픔이나 사연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이 싫어 한국 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나온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을 더 그리워하고, 국내 정세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까마득히 멀던 미국이 이제는 점차 매우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럼요, 요즘은 위성으로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미국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집들이 많습니다. 아예 하루 종일 한국방송을 틀어놓고 사는 동포들도 있어요. 정작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대요. 미국에 사는 딸이 한반도에 태풍이 몰려오는 마감뉴스를 보고, 곧장 한국에 사는 부모에게 전화하여 태풍 피해를 면하게 했다는. 심지어는 한국에 사는 장모가 미국에 사는 사위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고, 딸한테 네 남편 감기 들었으니 잘 챙겨주라고 처방까지 했답니다."
"제가 미국에 오기 전에는 재미동포 가운데는 도피성 이민이 많다는 부정적 시각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서 동포들이 사는 것을 보니까 제 생각이 매우 좁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해외동포들의 활약으로 한국 상품시장이 넓어진다는 것과 남북 분단의 첨예한 대립을 해외동포들이 중간에서 조정하거나 완충역할을 하는 걸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해외에서 먼저 이루어졌더군요."

남북화해의 다리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버지니아 주 센터빌에 사시는 동포 심재호씨가 이산가족 찾기에 물꼬를 튼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의 막내 아드님으로 북한을 스무 차례 정도 오가면서 일천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줬지요. 그래서 숱한 동포들이 북한에 사는 가족 안부를 알거나 상봉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 네. 현재 여건으로는 해외동포, 특히 미국동포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럼요.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북한을 드나들어도 한국 정부에서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죠. 곧 재미동포들이 남북화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근데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아직도 1950년대, 60년대에 가졌던 냉전시대 사고방식인 분도 많아요. 그분들은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이나 맥아더의 주장처럼 북한이나 중국 만주(동삼성)에다가 원자탄을 투하하여 북진통일을 했어야 옳았다고 주장하지요."

고동우는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

"간밤에 내가 노퍽까지 간다고 하니까 우리 집사람이 테이프를 하나 골라 주더군요."

존 덴버의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Take me Home, Country Roads)'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주변 경치와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이른 아침, 그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네
 라디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고향을 노래하고
 바로 어제 고향에 다녀온 듯 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다네.
 고향으로 향한 나의 길이여
 그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를 출발하여 미국 동부지방의 남북을 관통하는 95번 도로를 두 시간 남짓 달리자 '리치몬드'라는 도시가 나왔다. 귀에 많이 익은 도시였다. 내가 기억을 더듬자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었다. 마침 그곳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리는 자동차에 주유도 하고, 아침으로 빵 한 조각에 주스 한 잔 마셨다. 한국의 고속도로휴게소처럼 요란치 않고 매우 간소했다. 우리는 화장실을 다녀온 뒤,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맥아더기념관 앞의 동상(2004. 2.)
맥아더기념관 앞의 동상(2004. 2.) ⓒ 박도

맥아더 어머니

"노퍽은 맥아더의 고향입니까?"
"아닙니다. 맥아더는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노퍽은 맥아더 어머니의 고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치맛바람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맥아더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자 그 어머니는 학교 가까이에 방을 구해 놓고 아들의 학교생활을 보살폈답니다. 뒷날 맥아더가 유엔군사령관에서 해임되자 노퍽 시는 맥아더기념관을 자기네 시로 유치하고자 유족에게 시청 건물을 헌정하겠다고 제의하여 성사가 됐다고 합니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막상막하군요."
"그게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모성애를 잃어버리면 금세 말세가 될 겁니다. 사실은 나도 집사람의 치맛바람으로 여기로 이민 왔지요."
"그러고 보니 치맛바람을 마냥 매도만은 할 수 없군요."
"그렇지요. 적절한 치맛바람은 자식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랑의 채찍이기도 하지요. 그 치맛바람으로 한 인물이 탄생되지요."  

우리는 리치몬드를 출발한 뒤 줄곧 시속 70마일로 계속 달린 끝에 오전 11시 30분, 노퍽에 도착했다. 노퍽은 항구로 군사도시이기도 했다. 대서양 연안에 정박한 해군 함정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노퍽 중심가에 있는 맥아더기념관을 확인한 뒤 가까운 밥집에서 미리 점심을 먹어 두었다.

노퍽 시가지에는 맥아더 장군의 흔적이 많이 있었다. 맥아더기념관이 있는 일대는 '맥아더 스퀘어'라고 명명하였는가 하면, 언저리 거리와 건물 벽 곳곳에는 미국 역사상 몇 명 안 되는 오성(五星) 장군 맥아더를 상징하는 별 다섯 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맥아더기념관 정면에는 맥아더의 동상이 서 있었고, 기념관 꼭대기 국기게양대에는 커다란 미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맥아더기념관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맥아더.
맥아더기념관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맥아더. ⓒ 박도
맥아더기념관 자료실은 단층으로 조촐하게 꾸며져 있었다. 맥아더가 생전에 소장하였던 도서와 선물들이 잘 진열돼 있었고, 자료실에는 수많은 자료 파일들이 잘 갈무리되어 있었다.

맥아더기념관의 선물들은 대부분 일본인에게 받은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이 맥아더를 구워삶아 천황제를 유지하고 전범 처형의 확대를 막았다는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닌 듯싶었다.

우리가 맥아더기념관에 들어간 뒤 자료실에 놓인 비디오를 틀자 1950년 한국전쟁 직전 서울 근교에서 벌어졌던 좌익사범을 처형하는 장면이 약 10분 정도 동영상으로 화면에 나왔다.

1950년 4월 14일 15:00시 서울 동북쪽 10마일 떨어진 언덕에서 39명의 공산주의 혐의자를 한국군 헌병대장 감독 하에 약 60여명의 헌병들이 총살로 집행한 장면들이었다.

39명의 혐의자들은 나무기둥에 묶인 채 가리개로 눈을 덮고 가슴에 원형의 사격표지판을 붙이고 있었다. 나무기둥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집총한 헌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총살이 끝나자 권총을 빼내든 검열관이 나무기둥에 묶인 처형자들의 사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미처 죽지 않은 자에게는 그 자리에서 머리에 권총을 쏘아 확인 사살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잔인한 장면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순간 사람임이 부끄러웠다.

 신의주 상공 비행기 안에서 파이프를 문 채 지도를 펴 보며 작전 구상을 하는 맥아더 장군(1950. 11. 24.).
신의주 상공 비행기 안에서 파이프를 문 채 지도를 펴 보며 작전 구상을 하는 맥아더 장군(1950. 11. 24.). ⓒ NARA, 눈빛출판사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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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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