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는 어린 시절 익힌 나라의 이름이었다. 1956년 10월 13일, 소련의 간섭에 반대해 봉기한 헝가리 시민들의 의거는 우리의 교과서에도 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나기 전 부다페스트를 소개한 여행기며 영상을 보았던 것이다.
빈에서 헝가리로 가는 길목은 풍경부터 달랐다. 오스트리아의 1인당 GDP가 4만 5000불인데 비해 헝가리의 1인당 GDP는 아직 2만 불에도 한참 못 미친다고 들었다. 노면이 좋지 못한 도로, 오스트리아에 비해 허름한 집들이 모인 마을을 보며 그런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넓은 평원과 줄지어선 풍력발전기를 구경하고, 가이드가 안내하는 헝가리 와인을 파는 가게에 들렸다가 부다페스트에 들어서니 해는 뉘엿거리고 있었다.
전망 좋은 겔레르트 언덕에 내려 부다페스트를 조망하고 시내로 내려와 영웅 광장 주변을 관광하면서 지나가는 그곳 사람들을 살폈다. 동양계의 피가 흐르는 민족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과 달리 다른 지역의 서구인들과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인종의 혼혈이 빚은 결과라는 설명에 의문이 풀렸다.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가졌지만 그래도 마자르 언어를 잃지 않고 있다는 헝가리인들. 도심의 한 가운데 영웅광장을 만들어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한다는 헝가리인들.
그들이 소련에 저항하여 10월 혁명을 일으켰던 것은 단순히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뿌리 깊은 민족의식의 바탕 위에서 자주독립을 추구했던 역사의 연장선상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글로벌 시대를 강조하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헝가리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설렁탕 국물맛과 비슷하다는 굴라쉬 스프로 저녁식사. 그리고 도나우에서 유람선을 타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구경했다. 이미 영상을 통해 예습했던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빈을 둘러본 여운 때문인지 여행의 감흥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8월 19일(월)어두운 밤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버스가 가는 대로 왔었는데 아침에 보니 우리가 묵은 호텔은 도나우 강변에 있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강가를 뛰는 사람들, 낚시꾼, 강에서 조정경기 연습을 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더구나 강변 유원지에 설치된 우리나라 유수 기업의 텔레비전도 헝가리가 먼 외국이라 느낌의 정도를 낮추어 주었다.
8월 20일 건국기념일 행사 예행연습 때문에 부다 왕궁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부의 요새, 마챠시 성당을 돌아보면서 여행이 주는 감동보다 다시 한 번 헝가리의 국민 내부에 잠재된 민족주의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