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아래 현지 시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에 대해 의회의 인준을 받겠다고 밝히면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일정은 더욱 바빠졌다.
그는 9월 1일 하루 동안에만 미국 주요 방송사인 NBC·ABC·CBS·CNN·FoxNews 등 5개의 일요 시사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해 "미국의 신뢰성이 목전에 있다"며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 정당성과 함께 의회가 이번 공격을 인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케리 장관은 "시리아에서 사린 독가스가 살포됐다는 사실을 미국이 확보한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샘플 등에서 확인했다"며 5개 방송 인터뷰에서 대국민 설득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보수적인 채널로 손꼽히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케리 장관이 오바마 행정부의 뒷걸음을 신랄하게 비판한 앵커에 의해 원론적인 답변만 거듭하는 등 쩔쩔맸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이 보도했다.
폭스뉴스의 앵커 크리스 윌리스는 "그렇게 시리아 공격이 절박하다고 하고선 시기를 9일이나 늦추는 것이 말이 되느냐(미 의회는 9월 9일 개원해 시리아 공격 문제를 인준할 예정)"라고 물었고, 이에 켈리 장관은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어 '시리아 사린 가스 사용 확인'이라는 정보가 있다는 말로 넘어갔다.
이에 윌리스가 "이것은 CSI(미국 범죄수사대·과학적인 증거가 드러났다는 케리 장관의 말을 비꼬는 것) 문제가 아니다"고 받아쳤다. 이어 크리스 윌리스는 지난 8월 30일, 케리 장관의 발언(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은 살인자이자 깡패다)이 담긴 비디오 영상을 내보내며 "계속 살인을 저지르는 깡패인데, 상황이 그리 심각하다면 왜 내일이라도 (당장) 의회를 소집을 요구하지 못하느냐"고 몰아세웠다.
이어 월리스는 케리 장관이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란이나 헤즈볼라, 북한이 화학무기 사용이나 획득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한 내용의 비디오 영상을 내보내면서 "하지만 오바마는 (연설이 끝난 뒤 바로) 골프를 치러 나갔다, (도움을 요구하는) 시리아 반군들이나 우리의 적들이 이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케리 장관은 "이란과 북한은 미국이 민주적 절차가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하며 "늦어진다고 해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잃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월리스는 "(하지만) 시리아 반군은 조만간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잃을 것이 많아졌다"고 맞받아쳤다.
'시리아 군사 공격', 미국 내에서도 국론 분열 양상이에 케리 장관이 "의회 동의 없이 공격을 진행하라는 제안에 놀랐다"며 앵커를 몰아치자, 월리스는 "오바마 연설 이후 시리아 관영 매체들은 자신들의 승리라고 말하면서 오바마는 꽁무니를 뺏고 미국이 '역사적인 후퇴'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받아쳤다.
이에 케리 장관은 "이제 (공은) 의회에 달려 있고 대통령은 국제적인 규범에 맞게 결정을 한 것이며, 독가스를 사용한 잔혹한 독재자에게 사면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월리스는 "만약 의회가 인준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케리 장관은 "의회가 인준할 것으로 본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군사 공격에 대해 의회 인준 요구라는 새로운 카드를 던지자 그동안 공격을 지지하던 보수적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지는 등 미국 내 국론 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나토·영국·독일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 참여를 거부했고, 프랑스마저 미국 의회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어서 미국은 시리아 사태에 관해 고립무원에 갇히는 모양새다. 이에 케리 장관이 미국 내 여론이라도 확고히 잡고자 총대를 메고 주요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군사 개입의 당위성을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엉거주춤한 자세에 비판의 칼날을 세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소 말을 더듬으며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미 행정부가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 문제로 보수·진보 양 진영 모두로부터 곤혹을 치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