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班 쌍옥 각(珏)과 외날 칼(刀)로 구성된 글자로 한 덩어리의 옥을 칼로 나누어 놓은 상태, 즉 전체에서 나누어진 일부를 의미한다.
쌍옥 각(珏)과 외날 칼(刀)로 구성된 글자로 한 덩어리의 옥을 칼로 나누어 놓은 상태, 즉 전체에서 나누어진 일부를 의미한다. ⓒ 김대오

춘추시대 초(楚)나라에 변화(卞和)라는 옥(玉, yù) 장인이 봉황이 내려앉는 형산(荊山)에서 옥 덩어리를 채취해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은 옥공을 불러 옥을 감식하게 하니 그냥 돌덩이라는 것이었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왕위에 오르자 변화는 다시 그 옥을 헌상했다. 감정 결과는 역시 그냥 돌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고, 변화는 오른쪽 다리마저 잘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왕위에 올랐다. 옥이 든 돌덩이를 들고 통곡하는 변화의 사연을 알게 된 문왕은 사람을 시켜 도끼로 돌을 깨뜨리니 과연 진귀한 옥이 들어 있었다. 그 옥을 '변화의 옥'이라는 뜻으로 '화씨벽(和氏璧)'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희세의 보물을 얻기 위한 술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 보기 드문 화씨벽을 얻기 위해 진나라 소양왕은 15개의 성(城)과 바꾸고자 제안했을 정도다. 이 때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15개 성이 조나라에 들어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넘기고, 성을 얻지 못하면 벽을 완전하게 조나라로 가져오겠다(城入趙而璧留秦, 城不入, 臣請完璧歸趙)는 데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완전무결함의 의미인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훗날 화씨벽을 손에 넣은 진시황이 화씨벽을 깎아 전국옥새(傳國玉璽)를 만들게 하니 이사(李斯)는 벌레와 새의 모양을 한 글씨체(蟲鳥篆書)로 "하늘로부터 명을 받으니 영원히 창성하소서(受命于天, 旣壽永昌)"라고 새겼다. 전국옥새는 잃어버렸다 되찾기를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1천년을 전해지며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많이 남겼다.

상징과 기호를 중시하는 고대 왕국에서 임금 왕(王)과 비슷하게 생긴 옥(玉)이 매우 귀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에 남은 옥자에 실로 꿰어진 모양이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임금 왕(王) 옆에 있는 점은 옥에 달았던 장식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옥이 든 돌덩이를 칼로 잘라 화씨벽을 꺼낸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한자가 바로 나눌 반(班, bān)이다. 쌍옥 각(珏)과 외날 칼(刀,刂)로 구성된 글자로 한 덩어리의 옥을 칼로 나누어 놓은 상태, 즉 전체에서 나누어진 일부를 의미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1반, 2반 나누고 반마다 반장이 있다. 회사에서도 여러 작업반을 나눠 일하기 때문에 중국어에서 출근을 한다는 말을 上班(shàngbān)이라고 한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뛰어난 명공(名工)의 이름이 반(班)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노반(鲁班)이라고 불렀다. 중국 고대의 발명왕이라 칭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나, 나뭇잎이나 동물의 모양 등을 본떠 톱, 대패, 노, 끌, 우산 등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 빼어난 명공 집 앞에서 도끼질을 한다(班门弄斧. Bānménnòngfǔ)는 것은 곧 공자 앞에서 문자 쓰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는 의미가 된다.


#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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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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