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00여 명의 주민들이 동굴에서 학살되었다. 유엔군이 점령한 뒤 이 시신들을 꺼내자 유족들이 가족을 확인하며 울부짖고 있다(함흥, 1950. 10. 19.).
 300여 명의 주민들이 동굴에서 학살되었다. 유엔군이 점령한 뒤 이 시신들을 꺼내자 유족들이 가족을 확인하며 울부짖고 있다(함흥, 1950. 10. 19.).
ⓒ NARA,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신체검사

조철만 헌병대장은 최순희의 보따리를 뒤졌다. 그 보따리에는 쌀과 옷가지 그리고 준기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헌병대장은 그 보따리를 건성으로 훑고는 곧장 순희에게로 바싹 접근했다.

"여자들은 귀중품을 은밀한 곳에다 숨긴단 말야."

그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희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한번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 번 만지작거렸다. 순희가 눈을 홀기며 째려봤다.

"내가 왕년에 만주에서 일본 헌병들에게 배운 검색방법이지. 그때 독립군 년들은 젖통싸개에다 총을 넣고 다니거나 속곳이나 밑구멍에도 총알을 감추고 다녔지."

순희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헌병대장의 손이 허리로, 마침내 음부에 미쳤다. 그리고그는 곧 미소를 지었다.

"야, 손에 집히는 이 둥근 게 뭐야?"
"…금가락집니다."
"뭐, 금가락지?"
"네."

헌병대장의 손이 속곳으로 들어갔다. 순희가 울면서 몸을 돌렸다.

"이 쌍년이 신체검사를 거부해!"
"이건 신체검사가 아니라 인권유린이에요?"
"빨갱이 년 같은 소리하네. 이 전시에 너 따위가 무슨 인권이 있어."

폐허가 된 개성시가지(1951. 7. 17.)
 폐허가 된 개성시가지(1951. 7. 17.)
ⓒ NARA,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금가락지

헌병대장은 금가락지를 당기자 속곳이 찢어지며 나왔다.

"너, 이거 웬 거냐?"
"우리 어머니가 준 거예요. 생명이 위급할 때 쓰라고."
"그래? 네 어머니 참 똑똑하다. 바로 지금이 네 생명이 위급할 때 아냐?"

헌병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금가락지를 램프에 비춰본 뒤 곧장 자기 책상서랍에 넣었다.

"네 어머니에게 사실 확인하기 전에는 이 금가락지는 일단 장물로 압수해 보관하겠어."

그런 뒤 다시 헌병대장의 손은 순희의 음부 깊숙한 곳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대장님! 그건 훔친 게 아니에요. 정정당당하게 신문하고 몸을 검색하십시오."

순희는 비명을 지른 뒤 울면서 항의했다.

"이 쌍년이 꼴에 뭘 좀 배웠다고 별 웃기는 말을 다하네. 야, 너 골로 보내줄까?"
"……."
"너, 그 말이 뭔 말인지 알아? 내가 이번 전쟁 직후인 지난 7월에도 이곳 대전에서만도 숱하게 골로 보냈지."

대전형무소 좌익사범 처형장면(1950. 7.)
 대전형무소 좌익사범 처형장면(1950. 7.)
ⓒ NARA, 이도영

관련사진보기


계속 근무하십시오

순희는 헌병대장의 손을 뿌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러자 헌병대장이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 쌍년이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했군. 너 최미희란 배우 알아?"
"……."
"걔가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최고의 배우로, 그 콧대 높은 년도 내 이 총구 앞에서 제 손으로 치마를 내렸는데, 너 따위가 내 신체검사조차도 거부해."

그는 순희에게 권총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순희를 비켜 벽에 박혔다. 그 총소리를 듣고 당번병이 득달같이 방문 앞으로 달려왔다.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별 일 아냐. 이 쌍년이 신문을 거부하기에 겁 좀 주려고 한 방 쐈어. 앞으로 내 방에서 총소리가 들리더라도 별명이 없는 한, 이 방에 접근치 말라! 어디까지나 신문을 위한 위협 발사니까. 알았나!"
"예, 대장님! 충성! 계속 근무하십시오."

순희는 그들의 작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야, 이 쌍놈 새끼야! 그래, 이 짓거리도 신문이고 근무냐!"

순희는 발악를 하듯 뱉었다.

"이 쌍년이 넌 아무래도 말이 많은 게 빨갱이 년 같다. 이 짓거리도 근무라니? 좋아, 내가 너를 아주 골로 보내 주지. 너, 그 전에 일선에서 수고하는 군인들에게 보시나 하고 가라. 이왕에 죽으면 썩을 몸 아냐!"

순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한, 그 자에게 호락호락 농락당할 수만은 없었다. 이 헌병대장의 수법으로 봐서 숱한 여성을 농락한 솜씨가 틀림이 없었다. 순희는 최미희란 여배우를 무척 좋아했다. 그 최미희가 이 자의 권총 협박에 겁탈당하고 얼마나 치욕스러웠으며 억울해하고 수많은 밤을 눈물흘렸겠는가. 그가 이 자에게 붙잡혀 온갖 인권유린과 능욕당한 것을 생각할 때 같은 여자로서 분노가 치솟았다. 순희는 의식이 있는 한 겁탈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헌병 대장은 순희가 예사 여자와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책상서랍에서 양주병을 꺼내더니 병째로 꿀떡꿀떡 반이나 마셨다. 그런 뒤 다시 순희에게 다가와 강제로 웃통을 벗기고 팬티를 벗겼다. 순희가 악을 쓰며 몸부림을 치자 그만 순희의 팬티가 찢어졌다. 헌병대장은 찢어진 팬티를 코에다 대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헌병대장은 찢어진 팬티를 간이침대에 던지고는 곧 자기 바지를 내린 뒤 순희에게 달려들었다. 순희는 있는 힘을 다하여 헌병대장의 고환을 발길로 찼다.

충남 공주시에 있는 금강교의 폭파 이전의 모습(1950.)
 충남 공주시에 있는 금강교의 폭파 이전의 모습(1950.)
ⓒ NARA,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권총

헌병대장은 왼손으로 자기 고환을 움켜 잡고는 몹시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 쌍년이 정말 뒤질려고 환장을 하는군. 골로 보내기 전에 여기서 너를 아주 끝장 내겠어."

헌병대장은 오른손으로 다시 책상 위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그래, 멀리 갈 것도 없다. 여기서 날 죽여라."

순희도 악을 바락바락 쓰며 고함을 질렀다.

"그래, 이 쌍년아!"

헌병대장의 손이 순희의 뺨을 갈겼다. 그 순간 순희의 항문에서 산똥이 쏟아졌다.

"쌍년, 별짓 다 하는군."

순희는 챙피함도 없었다. 순희도 산똥을 나오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방바닥에 똥덩어리가 떨어졌다.

"야, 어서 변소에 가서 똥을 마저 누고 우물에 가서 밑을 깨끗이 닦고 와. 너, 만일 허튼 수작하면 그 자리서 죽여버리겠어."

순희는 찢어진 옷과 보따리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 변소에 갔다. 그는 변소에서 남은 똥을 마저 눈 뒤 방안에 떨어진 똥덩어리도 걸레질로 모두 깨끗이 닦아냈다. 순희는 우물가로 가서 몸을 닦고 걸레와 속옷도 빨았다. 순희는 일부러 천천히 몸을 닦고 빨래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새 헌병대장이 못 미더워 방문을 열고 우물가 순희를 확인한 뒤 말했다.

"야, 빨리 닦고 어서 들어오라. 어차피 다시 닦아야할 걸."

'새끼, 좋아하지 마. 내가 호락호락 너에게 당하진 않을 거야. 정히 안 되면 나는 논개처럼 너를 껴안고 자폭할 거야.'

순희는 몸을 닦고 빨래를 하며 이를 뽀득뽀득 갈며 복수의 방법을 궁리했다. 순희는 시간을 끌고자 일부러 천천히 몸을 닦고 난 뒤 보따리에서 새 속곳을 꺼내 입었다. 그런 뒤에도 우물가에 앉았다가 한참 더 시간이 흐른 뒤 안방으로 가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새 헌병대장은 조금 전에 마신 양주에 꼴각 취한 듯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아마도 양주를 그대로 반 병 이상 들이켠 게 과했나 보았다.

그 순간 순희의 눈에 책상 위의 권총이 번쩍 띄었다. 그 권총이 순희를 겁없이 유혹했다. 애초 순희는 그 길로 도망하려 했는데, 그 권총을 보자 갑자기 성폭행을 당한 데 대한 복수와 어머니가 준 금가락지를 찾고 싶었다. 제 놈이 그동안 저 권총 힘을 믿고 이렇게 남의 몸을 짓밟은 게 아닌가. 순희는 슬그머니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부산, 1951. 5. 24.).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부산, 1951. 5. 24.).
ⓒ NARA,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어떤 약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아무에게도 악을 갚지 말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