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우면 그렇게 행복한 것일까. 작품 제목과 내용 중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들어 있었다.
글을 배운 후 운전면허증을 딴 50대 중반 주부는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배움의 기쁨을 표현했다. 일흔 둘에 한글을 배우고 시를 써서 상을 탄 여성은 "이 순간 숨을 쉬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열심히 하는 나를 보며 행복하다"고 했다.
과거 어렵던 시절, 가족 뒷바라지를 하느라 배우지 못했던 여성들이 배움의 한을 풀고 멋들어진 시도 지었다. 6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1층 전시실에서 개막된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는 이처럼 배움에 한이 맺혔던 여성들의 시화 작품 80편이 전시됐다.
일흔 둘에 공부 시작, 4달 만에 검정고시 합격 "대학공부 할 것"올해 일흔 두 살인 이정자씨. 충청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후 초등학교 3학년 초반까지 학교를 다니다 집안이 어려워 배움을 멈췄다.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시집을 갈 때까지 조카를 보살피며 살았다. 배움에 대한 굶주림이 그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는 집안살림을 하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50대 초반인 20년 전 주위에 야학이 있어 기회가 왔다. 공부를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남편이 극구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정자씨는 나이 칠십이 넘어서 문해기관(엣 야학)인 울산시민학교에 들어왔다. 지난 4월부터 공부를 시작한 그는 4개월만인 올해 8월 초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떡하니 합격해 울산시교육청이 발표한 최연장자 이름에 올랐다.
이정자씨는 "태어나서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나이들어서는 남편의 반대로 공부를 못했다"며 "70이 넘어 이제 내 마음대로 공부하고 싶다, 나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의 기쁨에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는 그는 "대학까지 가볼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어 공부를 한다"며 "젊은 세대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칠순에 공부를 시작해 4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비결은 뭘까? 궁금해 물으니 "하루 3시간 자고 공부한다"고 말했다.
울산성인문예교육 시화전에서 아름상(울산문해교육기관연합회장상)을 탄 그의 시 '행복'에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어 행복하다. 자부심이 있어 뇌가 고맙다"고 적었다. 기자가 "'내'를 '뇌'로 잘못 적은 것 아니냐"고 물으니 "뇌가 행복하다. 바로 적은 것"이라고 했다.
조순향(58)씨는 한글을 배우고 면허증을 딴 뒤의 행복함을 시로 적었다. 그의 시 '면허증을 따고 보니'는 "한글을 배우면서 운전 면허증을 도전했다. 무엇 때문에 딸려고 했는가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하여…"라고 했다. 그는 시에서 "차 사서 돌아다니며 간판글도 읽어보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넓은 세상구경도 하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나와 상관 없던 영어, 배우고 나니 옆 사람 영어 발음 슬쩍슬쩍 들려"
울산지역 최고상인 으뜸상(울산광역시장상)을 수상한 박옥순(울산시민학교)씨는 '행복합니다'란 시에서 수십 년 장사하며 본 적 없던 수학공식, 처음엔 남감했지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영어는 상관 없는 언어라며 들리지도 않던 귀에 슬쩍슬쩍 들리는 영어 발음에 행복합니다"고도 했다.
박옥순(56)씨는 6녀 1남 남매 중 6째로 태어나 3대 독자인 오빠 뒷바라지를 위해 배움을 포기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만 다니다 일찍 결혼을 했다. 배움이 한이 맺혀 시동생 공부 뒷바라지에 열중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이제 공부를 해 보려니 당뇨병이 와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다 지워졌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하고 싶었지만 환경이 그러질 못했다"며 "장사를 하다 당뇨 때문에 쉬는 기회에 공부를 하는데,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10년간 장사를 하면서 계산은 했지만 공부를 하면서 수학공식을 배우니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며 "영어공부를 하니 다른 사람 발음도 들리고 간판에 적힌 영어도 보인다"고 기뻐했다.
6일부터 일주일간은 세계문해교육주간. 문해교육주간을 맞아 6일부터 12일까지 울산시청 본관 1층 전시실에서 '문해, 시와 그림으로 행복을 말하다'를 주제로 '울산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시화전은 그동안 문해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글을 배우고 난 후 자신의 손으로 지은 시와 그림을 뽐내는 것이다. 이번 시화전은 교육부가 주최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그리고 지역거점 문해교육기관인 울산시민학교(교장 김동영)가 공동 주관해 열리며, 울산문해교육기관연합회 소속 학생들이 출품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위 사례처럼 이번 전시회에는 적령기에 교육기회를 잃어버린 어르신들의 문해 해독과정을 담은 애틋하고 감동적인 사연들이 담겨 있다.
울산시민학교 김동영 교장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분들이 배움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보는 것 같다"며 "자원봉사 교사들은 이들이 공부하면서 기뻐하고 행복해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인문해 교육은 학령기에 기초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며 울산의 경우 교육은 중구 반구동에 있는 울산시민학교, 남구 신정동에 있는 울산푸른학교, 동구노인복지관, 울산동광학교 등 17개 기관이 맡고 있다.
배움의 한 못 푼 비문해자, 국내에 수백 만명국립국어원이 지난 2008년 국민의 기초문해력 조사를 한 결과 20세 이상 우리나라 성인남여 3676만여명 중 7%인 260만명이 읽고 쓸 수 없거나, 읽을 수 있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초등교육을 배워야 할 잠재 수요자는 192만여명(5.2%)에 이르고, 중학교 교육 잠재수요자는 385만여명(10.5%)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이들 비문해자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의 문해기관을 선정해 일정의 예산을 지원해 왔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을 통해 지원되는 예산은 2006년 전국 178개 문해기관에 13억7500만 원이던 것이 2013년 261개 기관 19억5000만 원으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