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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구 내 한 부동산의 아파트 매물표의 모습. 2012.9.17
마포구 내 한 부동산의 아파트 매물표의 모습. 2012.9.17 ⓒ 연합뉴스

"고민만 하고 있는 거지. 대책이 어디 있어.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치솟는 전세난 때문에 주부 김애숙(53·가명·서울 강동구)씨는 고민이 많다. 집주인이 이번 재계약 때 전세금을 5천만 원이나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애숙씨가 강동구 30평 조금 넘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은 지난 2003년. 당시 1억 원에 전세로 이사왔는데 3년 전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3천만 원을 올려줬다. 주변 아파트 전세가 오르는 동안 집 주인은 한번도 전세를 올리지 않았다. 때문에 항의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좋은 집주인을 만나 그동안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에 편하게 살았는데, 워낙 주변 전세가 오르니까 집주인도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애숙씨는 전세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 50만 원씩을 내고 있다.

그는 "오는 10월 전세재계약이 다가오는데, 결정도 못 내리고 이것저것 고민만 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남편인 박성재(56·가명)씨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 중이다. 전세금을 올려주고 계속 사는 방법과, 이사를 가는 방법, 아니면 지금처럼 월세를 50만 원씩 부담하며 사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모두 어려운 대책들이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목돈이 없는 경우 전세금을 올려주려면 전세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성재씨의 생각도 전세대출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은행에서도 소득이 있어야 대출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상담을 받아 보니 5천만 원은커녕 2천만 원도 나올까 말까 하다"고 말했다.

부인 김애숙씨는 개인 사업장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가 따로 신고를 하지 않아 수입이 측정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소득도 서류상으로는 없게 나온다. 박성재씨는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전세대출도 소득이 낮은 서민들에게는 쉬운 것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집을 사려해도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부인 김씨의 솔직한 심정이다. 김씨는 "지금 집 같은 곳을 사려면 4억은 들 텐데, 전세금 5천만 원도 못 올려 주는 판에 그 돈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했다. 정부에서는 취득세 인하와 같은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그것 가지고는 역부족"이라고도 했다.

집을 매매하더라도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것도 문제다. 남편 박씨는 "집값이 오를 기미를 안 보이는데 세금 내 가면서까지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씨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집을 못 사고 깡통 집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전세 자체가 없으니"... 올려주고 그냥 살아라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에는 부동산도 많지만, 전세난 때문에 업소마다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이 몇 명씩 대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서울 강동구 지역 한 아파트 단지에 5개의 부동산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이들 말고도 주변에 3개의 부동산이 더 보였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에는 부동산도 많지만, 전세난 때문에 업소마다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이 몇 명씩 대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서울 강동구 지역 한 아파트 단지에 5개의 부동산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이들 말고도 주변에 3개의 부동산이 더 보였다. ⓒ 황혜린

기자가 만나본 부동산업자들은 전세 재계약이 다가온 세입자들에게 '올려주고 그냥 살 것'을 권한다고 했다. 강동구 공인중개사 정아무개씨는 "원래 살던 분들은 전세를 올려주고 재계약을 하라고 한다"며 "전세 자체가 없으니 이사를 안 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기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부동산업자들은 주변에 아파트가 몇천 세대씩 있는데도 전세 물량은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서 지난 2일 만난 김아무개씨는 "옆 아파트가 3천세대인데도 전세는 구경하기 힘들다"며 "주인이 가격을 올려도 세입자들이 막 쫓아온다"고 했다.

성북구의 오아무개 공인중개사도 "물량이 없는 것 자체가 고민"이라며 "가격도 높여서 내놓고 있고, 더 귀하니까 가격은 더 올라간다"고 했다. 보문역 근처 부동산의 장아무개씨도 "세입자들이 발품을 팔고 돌아다녀도 전셋집은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사 날짜를 받아놓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몇천만 원씩 더 주고 계약을 하거나 외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5년 전 재개발을 완료한 강동구의 한 아파트도 마찬가지이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정씨는 "3200세대가 있는 단지는 물량이 한 건도 없고, 1600세대 단지에는 융자가 있는 1층이 하나 나와 있는 정도"라고 했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신명옥씨도 "대기자가 평형당 3-5명 정도 된다"며 "이 주변 3500세대를 38개 업소가 맡고 있는데, 다들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빼곡하게 적힌 대기자 명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세 5천만 원까지 올라... "매매로 돌아서는 추세"

2일과 3일에 걸쳐 만난 지역(마포구·성북구·강동구)의 공인중개사들은 모두 '올해 초에 비해 전세가가 많게는 5천만 원씩 올랐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도 70-8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전세가가 이 정도로 오르니 울며 겨자먹기로 매매로 돌아서는 사람도 꽤 있다. 공인중개사 신명옥씨는 "전세가가 75% 가까이 되다 보니 매매로 돌아서는 추세"라고 말했다.

기자가 3일 오후 이 부동산에 들어가기 직전 만난 젊은 부부도 원래 전세를 구했는데, 물량이 없고 가격도 올라 매매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공인중개사들 쪽에서도 아예 집을 사 버릴 것을 추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업계도 힘든 상황이다. 공인중개사 신명옥씨는 "다 때려치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상가나 빌라 계약이 있어 다행이지, 아파트만 보고 사는 업자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마포구의 최아무개 공인중개사도 "매매 하나가 나오면 여러 부동산에서 달려들 정도로 다들 힘든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어떻게든 집을 구해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다. 전세금 5천만원을 올려줘야 하는 처지에 있는 애숙씨는 "별다른 해결책도 없고 고민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사 갈 곳도 없고 집주인이 좋으니 그냥 매달 50만 원 부담을 안고 살까'라고도 생각 중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을까 하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짙은 한숨에서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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