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9살 많은 언니는 어릴 때부터 왼손을 자주 사용했다. 다른 일상적인 활동은 오른손을 사용했으나 밥 먹을 때만 왼손을 사용했으니 반(半) 왼손잡이라고 해둬야겠다.
수년 전 어느 날, 할머니와 식사하던 때였다. 언닌 평소대로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했고 할머니는 '이유 없이' 호되게 언니를 혼내셨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었다. 할머니는 무조건 "왼손은 나쁜 것, 안 좋은 것"이라며 오른손 사용을 강요하셨다. 기분이 상한 언니는 '일단 항복'하는 셈치고 오른손으로 다시 수저질을 배웠다.
몇 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온 집안 식구들이 한동안 슬픔에 잠겼다. 할머니의 장례가 설 연휴 직전에 있었던지라 명절에 고향 내려오면 '시집가라'는 말 듣기가 싫어 오지 않던 언니가 유일하게 있던 때였다. 할머니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곧 설날이 되었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떡국을 먹으며 새해 덕담도 나눴다.
헌데 내 옆에 앉은 언니가 다시 왼손을 쓰고 있었다. 언니에게 "왜 다시 왼손 써?"라고 묻자 언니는 "이제 할머니 안 계시잖아"라며 자신의 수저질에 평화가 찾아왔음을 밝혔다. 왼손으로 밥 먹지 말라고 호통 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름과 동시에 '자유'를 맞은 언니의 신난 왼손 수저질에 왠지 웃음이 났다.
그러나 언니의 자유는 금방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오른손으로 일상생활을 해왔고 젓가락질도 오른손으로 고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온 식구가 이상해하자 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 어기기 싫다"는 핑계를 댔다. 언니한테 "오른손을 다시 쓰는 이유가 정말 무엇이냐"고 묻자 언니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왼손으로 밥 떠먹으면 나는 편한데,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땐 자꾸 팔이 부딪혀서 불편하거든"이라고.
힘없이 오른손으로 수저질하는 언니를 보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물론이고 사촌오빠들도 '숟가락으로 맞아가며' 할머니에게 혼났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할머니가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예체능 쪽으로 뛰어나고 양손잡이는 그보다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진즉에 들으셨다면 아마 왼손을 적극 권장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야 왼손잡이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일상 곳곳에 불편함은 남아 있다. 대학 강의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가 그 예다. 각종 기자재와 시설물을 현대화한다고는 하지만 'ㄱ'자의 책상과 의자가 연결된 것이 많다. 이 책상은 오른팔을 올릴 수 있는 팔걸이가 의자에 연결되어 있어 오른손잡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책상에서 필기를 할 수 있지만 왼손잡이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다. 필기를 하려면 왼팔이 공중에 붕 떠있어 글씨가 잘 써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옆에 있는 책상을 끌어다 왼팔을 받치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위도 마찬가지다. 오른손잡이화 되어 제작된 가위를 왼손잡이가 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일단 손가락이 손잡이에 맞지 않을뿐더러 종이가 칼날에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잘 잘리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는 밥 먹을 때 빼곤 주로 오른손을 사용했기에 몰랐는데 왼손잡이 친구를 보니 가위질 하는 모습이 영 어설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론 조금 미안했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왠지 나는 편의를 보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대형 문구점에서 왼손잡이용 가위를 판매한다는 것은 다행이고 반가운 소식이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라며 덕담 해주시던 할머니도 무조건 '바른 것, 좋은 것'만 찾는 사회에 자신도 모르게 치우쳐지셨을지도 모른다. 왼손잡이도 나름대로의 장점과 우월성이 있는데 말이다.
우리의 대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는데, 왼손을 쓰는 사람들은 우뇌가 더 발달돼 있다. 우뇌는 미술, 음악, 체육 등과 같은 예술, 동작성 지능과 관련이 있다. 왼손잡이는 우뇌를 많이 사용하므로 이 분야에 특출한 사람은 왼손잡이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그 예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가를 들 수 있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중 누가 옳고 그르냐 혹은 누가 더 낫냐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오른손은 오른손 나름의 장점이 있고 왼손은 왼손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오른손잡이가 많다고 해서 오른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다수의 오른손잡이에 의해 형성된 오른손 문화가 왼손잡이들의 자유를 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왼손에 대해 우리가 가진 편견은 말 그대로 한 쪽에만 치우친 의견일 뿐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와 원고의 말을 다 듣고 결론을 내리듯 오른손이 하는 일 만큼 왼손도 중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