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일학년이 끝나고 이학년을 맞이하기 직전 사귀던 여자로부터 이른바 '이별통보'를 받은 경험이 있다. 예감이 이상해서 찾아간 날, 단발이던 머리카락을 얼마나 짧게 깎았던지 귀밑 피부까지 면도자국으로 시퍼런 남자머리모양을 하고 나타난 그녀를 대하면서 만남의 끝을 예감했었다. 이미 그녀는 모질게 자신부터 닦아세운 뒤였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애인이 애인이기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면?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線)을 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 흘러간 강물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 올 수 없듯이.
다자키 쓰쿠르는 그렇게 외톨이가 된다. 절친 네 명으로부터 한꺼번에, 그것도 전화 한 통화로 슬퍼할 틈조차 없이. 감정의 진공상태를 맞이한 쓰쿠루는 숨쉬는 시체로 반년을 견뎌낸다. 7킬로그램이 빠지고 얼굴의 모양도 변한다. 슬픔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온몸을 적셔버린다. 친구로부터 당한 절교는 세상으로부터 내가 튕겨져 나온 것이기에. 친구들과의 말과 행위들은 곧 내가 대면한 세계 그 자체이다 보니 그 상실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색채와 음악을 버무려 소멸하는 청춘을 설명한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를 들고 무라카미하루키가 현해탄을 건너왔다. 민음사에서 거액의 판권료를 지불했다는 소문과 함께. 올 7월 1일 1쇄가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4쇄를 펴냈으니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무라카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읽기도 전에 몇 만권을 그냥 사 제꼈다는 얘기다.
개인의 감성과 이성에 대한 탐사가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고 그 묘사가 유려해서 읽는 내내 젊은 날로 돌아간 듯, 일상에서 해방된 듯 모처럼 여유롭다. 그의 소설에는 시벨리우스의 생가가 있는 유럽의 한 도시가 등장하고 와인과 클래식이 어우러져 교양과 탐미가 조화롭다.
어느 비평가는 이 책의 제목을 두고 '이런 긴 문장으로 된 제목은 저자가 이미 브랜드화 된 경우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라카미 자체가 이미 새 책 제목이라는 얘기다. 제목을 대하고 새 책은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도 환갑을 훌쩍 지난 노작가의 구력으로 생과 우주에 대한 구도자적 태도를 견지하며 독자들을 순례의 길로 이끄는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다. 또 한번 재미있게 읽힌 소설 목록에 꽂혀야 하는 책이 될지 두고 두고 좋은 느낌을 주는 책으로 남겨야 할 지… 아무래도 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르의 독백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일지도 모른다'처럼.
무라카미는 주인공을 고립시킨 친구 넷을 '미스터 레드, 미스터 블루, 미스 화이트, 미스 블랙'으로 상징화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일본식 이름은 따로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 넷의 이름 속에는 모두 색이 존재하는데. 빨강, 파랑, 하양, 까망 등의 '인물을 상징화한 이 색채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그 인물들의 삶과 각각의 색을 대비해 보기로 했다. 쉬운 작업이다.
빨강의 아카(赤)마쓰 게이는 학창시절 똑똑했다.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 새로운 사업을 벌여 정열적인 삶을 산다. 그 삶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가 없다. 파랑의 오우(靑)미 요시오는 토요타 렉서스 영업사원이 되었다. '렉서스(LEXUS)란 브랜드는 뉴욕의 광고회사에 의뢰해 만든 고급스럽고 깔끔하지만, 의미는 따로 없는 이미지의 단어라고. 딴 얘기 잠깐, 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꿈을 펼치는 영업사원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토요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밑바탕이 되는 이론을 연구하는 우익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시라(白)네 유즈키는 스무살에 강간을 당하고 서른 초반 처참하게 살해 당한다. 그녀가 고교시절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뒤 페이> 중 <순례의 해>를 연주하는데 주인공 쓰쿠루가 추억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순수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구로(黑)노 에리는 친구의 고통을 위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역할을 맡았다, 16년 만에 만난 쓰쿠루에게 자신을 구로가 아닌 에리로 불러달라고 한다. 모든 것을 덮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인물들의 삶과 색채가 '수상쩍은 균형'을 이루면서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여기에 '미스터그레이'로 별명되는 신비의 인물 '하(灰)이다'와 미도리(綠)가와가 등장하면서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색채가 없는 쓰쿠루가 튀어 나온 못이 된다. 그렇게 세상의 색으로부터 분리된 주인공의 삶은 절대 고독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
저자가 천착하는 부분인 듯 보이는 이 지점에 가면 제목에 포함된 '순례'는 단순히 리스트의 곡(曲)명 중에 들어 있으면서 주인공 쓰쿠루의 청춘에서 시작된 고독과 그 고독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진정한 '순례'도 의미하는 중의(重義)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이 주인공의 16년 전의 과거가 현재를 좇아 거슬러 올라오면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일치하는 지점을 찾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렇게 계산된 앞과 뒤를 추론하고 추리하는 재미가 사유의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곧 휘발되어 버리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작가의 중량감 만큼 기대한 문학적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한 느낌 말이다.
쓰쿠루가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독백에 공명하게 되는 건 어쩌면 하루키가 유도한 것이다. 그래 놓고 구로 아니, 그녀가 불러달라고 한대로 하자면 '애리'의 남편 올가의 입을 통해서는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죠.'라는 설명을 덫 붙인다. 그것은 유즈키에 대한 강간의 주체와 살인의 주체를 없애 버려 신비를 추구하는 무리수를 둔 후유증을 변명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인간들이 모인 조직, 그게 연인처럼 둘이던 동아리나 학과나 회사의 모임처럼 여럿이건 간에 자연스럽게 모이고 흩어지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인간사를 저자는 쓰쿠루의 입을 빌어 설명한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 중략… 시로는 아마 누구보다도 빨리 삐걱대는 마찰음을 들었을 것이다.'
저자의 설명처럼 스물 무렵의 그녀와 나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처럼 헤어졌으리라. 그녀로 인해 갑자기 휙 떠났던 학교에 돌아간 이 년 후 이미 그녀와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번쯤 젊은 날의 초상에 빠져들고 싶은 중년들에게 나름 재미를 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물은 사실, 그냥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