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선 직전 국가정보원과 여권 정치인·경찰 관계자가 수시로 연락,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축소·은폐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조사 특위 위원들은 11일 "언론에 밝혀진 통화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 6일 동안 국내정보를 총괄하는 차문희 국정원 2차장과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서울경찰청 담당 국정원 안아무개씨가 경찰측 관계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권영세·서상기 전·현직 정보위원장들과 수 차례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경찰이 허위 수사결과를 발표한 날까지 6일 동안 국정원 국내담당 간부들과 새누리당 고위인사, 경찰 수뇌부가 집중적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과정의 배후로 지목된 가운데 야권은 이들이 수사내용을 공유하고 수사결과 발표 시기와 수위 등을 조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댓글 작성을 주도한 대북심리전단이 소속된 국정원 3차장 외에 국내담당인 2차장 라인까지 경찰 수사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축소 핵심 인물로 떠오른 차문희 민주당 특위 위원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권영세-박원동-김용판으로 이어지는 3각 편대는 사건 발생 직후 수시로 통화하며 사건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명 국정원 3차장이 김용판 청장과 통화한 사실과 함께 국정원 지휘부와 새누리당 고위관계자들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응 전략을 세워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국내정보를 총괄했던 차문희 전 2차장이 서상기 정보위원장과 수시로 통화하고 원세훈 전 원장에게 보고한 사실 등이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새로 밝혀진 것을 주목했다. 이들은 "서울청 국정원 연락관 안모씨-박원동 국장-차문희 2차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경찰의 축소·은폐 수사에 조직적으로 적극 개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주목 받지 않았던 차문희 전 차장이 새로운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검찰과 야권은 그동안 국정원의 대선개입 인터넷 활동을 담당한 대북심리전단을 지휘했던 이종명 전 3차장을 주목했지만, 당시 상황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주도한 건 차 전 2차장이라는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 6월 국정원 댓글 공작의 실행부서인 심리전단이 직제상으로는 3차장실에 있지만 실제로는 2차장실에서 지휘했다는 의혹을 처음 보도한 바 있다(
관련기사: MB정부 국정원 3차장은 억울하다?) '댓글 공작'으로 불리는 인터넷 여론 조작을 대북심리전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차문희 전 2차장 아래에는 '국익전략실'과 '국익정보국'이라는 조직이 있다. 신아무개 실장이 이끈 전자는 국내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부서로, 최근 논란이 됐던 '반값등록금'과 '박원순' 관련 문건을 생산한 곳으로 지목되었다. 박원동 전 국장이 이끈 후자는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곳이다. 검찰은 차문희 전 2차장이 박원동 전 국장과 서울경찰청 담당 국정원 연락관인 안씨를 통해 여당 정치인 및 경찰들과 연락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특위 소속 진선미 의원은 "3차장 산하 대북심리정보국이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 사건을 수습한 게 아니고, 2차장인 차문희의 지휘로 국내 정치파트와 경찰·새누리당 커넥션을 통해 공작에 개입한 것"이라며 "3차장 산하에서 인터넷 댓글로 여론 조작에 개입했고, 2차장 산하에서 사건 공작을 기획해서 경찰 수사 결과를 뒤집는 역할을 했다고 추측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특위 위원들은 "이런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검찰이 추가적인 보강 수사를 통해 실체규명을 하지 못하고, 원세훈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조차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외압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권영세 현 주중대사의 불법적인 역할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물론, 원세훈 전 원장과 박원동 전 국장의 통화 내용을 밝혀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작하고 어떤 협의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지난해 대선 당시 차 전 차장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정보위 소집을 반대하는 서상기 정보위원장과 차 전 2차장이 서로 협의한 사항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검찰은 9일 열린 원 전 원장의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종명 전 차장이 지난해 12월 11일 김 전 청장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데 이어 당일과 14일, 16일 등 총 3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공개했다.
민주당 특위 위원들은 이날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사과는 물론, 권영세 대사의 소환 조사 등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 9일 원 전 원장 공판 당시 2012년 12월 11일부터 16일 사이, 이종명 전 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관계자들의 통화내역을 법원에 증거물로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