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들을 낳았다고 보도한 뒤 당사자 여성 임아무개씨가 이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조선일보>는 임씨가 '월세를 안 내고 야반도주 했다'는 등의 전언을 보도하며 '못 믿을 사람'으로 만들 기세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추가의혹 공세'는 모순을 노출했다.
<조선일보>는 11일 치 1·2·3면에 걸쳐 자신들이 제기한 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 관련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채 총장의 아들이라고 지목된 초등학생의 모친이라고 밝힌 임아무개씨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편지를 보내 "우리 아들은 채 총장과 관련 없다"며 학교 기록에 아이 아버지 이름을 채동욱으로 기입한 이유를 해명한 것을 전하면서 "이런 비상식적 주장의 배경에는 언론을 통해서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라고 해설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를 통해 임씨의 해명 내용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평소 세 꼭지씩 싣던 사설도 두 꼭지로 줄이고 채 총장의 처신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문의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임씨의 해명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지만, 임씨에 대해서도 '혼외 자식 보도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 총장의 처신에는 문제가 있으니 검찰총장으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폈다.
9일 치 보도에는 '전세 거주'... 11일에는 "월세 못 내 야반도주"그러나 임씨를 '못 믿을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조선일보>의 보도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치 3면 기사에서 임씨가 "채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전날인 지난 4월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삼성동 아파트엔 월세도 제대로 못 냈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삼성동 집주인과 아는 사이라는 인테리어 업자 A씨'를 인용해 "임차인이 이사 간 뒤 집주인은 '임차인이 월세를 못 내서 보증금에서 제하고 있었는데, 야반도주를 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월세를 내지 못해 몰래 이사간 곳이 임차료가 훨씬 싼 집이 아니라 훨씬 비싼 새 아파트라는 점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서 월세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간 집의 임차료를 임씨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부담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임씨를 '못 믿을 사람'으로 인식하게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조선일보>가 지난 9일 치에서 같은 기자 이름으로 보도한 내용과 상반된다. 당시 기사에는 "Y씨(임씨)는 처음 입주할 때는 월세로 계약했다가 나중에 전세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9일 치에는 전세로 보도했다가 11일 치에는 '월세를 내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 만약 취재내용이 서로 상반되는 상황이라면 직접 당사자인 임차인도 아닌 인테리어 업자 A씨가 '월세를 안 내고 야반도주를 했다더라'고 한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조선일보>에는 이런 점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조선일보>는 11일 치 기사에서 임씨가 "학적부(에 아버지를 채동욱으로 기재했다는) 말이 (친구들에게) 퍼져 '채동욱 검사가 아버지 아니냐'고 여러번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고 쓴 것도 비논리적인 주장의 사례로 꼽았다. <조선>은 "우선 친구 아버지가 '검찰총장'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들에게는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어야 맞는다"고 지적하면서 편지 내용에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임씨 아들이 미혼모 가정에서 자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조선일보>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서도 "같은 반 친구는 '걔네(채군) 아버지 부인이 두 명이라고 하더라'고 했다"고 학교 친구들의 말을 인용했듯, 결국 어머니가 미혼모라는 사실은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상관없이 '놀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건 한국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고 초등학생의 경우엔 더 심할 수 있다. 임씨 편지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도가 너무 강한 나머지 사회 현실이나 편지의 전반적인 문맥을 도외시한 결과로 보여진다.
<조선일보>가 또 문제 삼은 부분은 '임씨가 편지를 너무 잘 썼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11일 치 기사에서 익명의 법조인의 말을 빌려 "주점을 운영하던 여성이 썼다고 보기에는 편지의 문장이나 논리가 정연해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임씨가 주점을 운영했다는 사실과 문장력·논리력은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주점을 운영했더라도 글을 잘 쓸 수 있다. <조선일보>가 임씨 해명편지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급급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추가 단서 제시는 언론의 몫... 유전자검사 강요할 수 없다채동욱 검찰총장과 임씨의 아들이 부자관계인지 가장 확실한 방법이 유전자 검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의혹을 제기하며 <조선일보>가 내민 핵심 단서는 '아이 학교 신상기록에 적힌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이라는 것 한 가지뿐이다.
제기한 의혹을 뒷받침할 단서를 찾아 추가로 제시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지, '의혹 제기가 억울하면 당사자가 유전자 검사로 입증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모순된 사실관계를 동원해 보도 당사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데 골몰하다면 '언론 폭력'이라 불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