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철도민영화 논란을 빚고 있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일단 공공연기금 투자없이 출범시킬 방침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12일 복수의 국토부·철도공사 관계자와 민주당 신기남 의원실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올해 말까지 철도공사 지분만으로 수서발 KTX 운영법인을 세워 철도면허를 부여할 계획이다. 우선 회사부터 출범시킨 후 이 회사로 하여금 수서발 고속철도 노선이 개통되는 2015년 이전까지 공공투자를 채워넣는다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지난 6월 철도공사를 지주회사로 만드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일자,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지분 30%를 공사가 갖고 70%는 공공연기금에서 출연하는 방안을 안전장치로 제시한 바 있다.
국토부 "회사부터 세우고 연기금 투자 확보할 것" 관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연말까지 설립되는 수서발 KTX 운영법인은 100% 철도공사 지분으로 설립된다. 국토부는 올해 안에 이 법인에 철도면허를 일단 부여한 후 법인으로 하여금 공공연기금의 투자유치를 받아서 지분 비율을 30(철도공사)대 70(공공연기금)으로 맞춰가도록 감독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 법인의 철도면허 발급 조건에 '30대 70'의 지분 비율을 맞춰야 철도운행이 가능하도록하는 내용을 넣고 정관에도 같은 내용을 명시하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간의 철도민영화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민간투자가 포함될 가능성은 0%"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형태로 수서발 KTX 운영법인을 출범시키는 이유에 대해 "개통 이전에 사전 사업을 수립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5년 개통과 동시에 매끄럽게 열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차량확보, 관련인력 양성 등 '사전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투자) 유치를 정식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 의향들은 조사를 마친 상태"라며 "새 법인이 충분히 70% 지분에 해당하는 공공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조건부로 협상을 해서 투자를 이끌어내는지는 철도공사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애초 계획보다 적은 돈을 가지고 회사설립을 하는 것일 뿐 2년 후에 있을 열차 운행 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국토부 측에서 공언해 왔던 청사진과 같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인 설립 당사자인 철도공사 측의 말은 달랐다. 한 철도공사 관계자는 국토부의 새 방침에 대해 "공공부문 투자 유치가 여의치 않아 우리가 먼저 국토부에 그렇게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6월 국토부가 '수서발 KTX 운영회사 지분액의 70%를 연기금에서 투자받겠다'고 밝히자 "(수서발 KTX 운영사에 대해)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에는 철도노조 측에 이 사업과 관련 국토부와 투자 협의를 진행한 사실도 없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반대 여론 많으니 일단 회사 만들고 밀어붙이겠다는 것"철도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국토부 방침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보냈다. 철도민영화 반대여론을 돌파하려는 전형적인 '꼼수'라는 것이다. 이들은 "국내 공공기금 운용 특성을 보면 사실상 공공부문 투자 유치가 어려우며 결국 필요한 투자금이 채워지지 않으면 민간 자본이 들어오거나 파행 운행이 생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투자 의향이 없다고 밝혔고 연기금이 수서발 KTX 운용사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연기금 법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연기금은 시중금리 이상의 수익률이 나오는 곳에다만 투자할 수 있으며 투자 지분에 대한 매각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수서발 KTX의 경우 이미 국토부에서 공공투자 지분 매각 불가 방침을 전제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영수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토부에서 발표한 경쟁체제 도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으니 일단 자회사부터 만들고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당장 2015년에 수서발 KTX 개통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일단 법인이 세워지면 실질적으로 그 이외의 다른 방향은 모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30대 70'의 투자비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철도면허를 쓸 수 없게 만들겠다는 국토부의 약속은 실질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철도면허는 국토부 장관이 부여하는데 장관이 바뀔 경우 정권 입맛대로 얼마든지 약속이 뒤집힐 수 있다는 얘기다. 윤 사무처장은 "준비가 안 된 '졸속' 계획임이 드러난 만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국토부의 무리한 계획으로 인해 재벌 및 대기업이 수서발 KTX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토부 계획 자체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철도민영화 정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면서 "공공기금 투자를 받지 못해 결국 필요한 투자금이 모자라면 '어쩔수 없다'는 논리로 민간 자본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