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마이뉴스> 메인에 실린
'못 믿을 추천서? 교사는 분노한다'라는 기사를 보며 과중한 입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사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사 추천서의 대필, 표절 그리고 이로 인한 신뢰성 추락의 원인을 전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자체에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난 2년 간 입학사정관으로서 겪은 것을 바탕으로 현재 입학사정관제에 쏟아지는 불만들의 원인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고자한다.
대부분 입학사정관제를 이명박 정부의 교육브랜드로 생각하지만 사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새로운 대입전형방식으로 검토되었던 제도이다. 어쩌면 입학사정관제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몇 안 되는 정책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억제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것도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들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학자율화라는 대의 아래 정부라고 해도 대학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바로 지원금이다.
대학들 입장에서 입학사정관제는 매력 있는 제도였다. 내신성적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된 시점에서 상위권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통해 3불정책으로 금기시 되어왔던 본고사, 고교 등급제를 우회적으로 돌려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고사 대신 심층면접을 통한 학습능력 가려내기, 비교과 평가 시 특목고 출신 학생 우대 등으로 대학 입맛에 맞는 학생선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돈 까지 대준다고 하니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정부가 지난 2008년부터 올해까지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으로 쏟아 부은 돈이 1900억 원에 가깝다. 그런데 대학들은 계속해서 정부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 정부 지원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입학사정관들의 계약기간을 보면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태도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대학들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정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율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였지만, 지난해 통계를 보면 53%의 입학사정관이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이들의 계약기간은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기간으로 한정되어 정부지원사업 종료시 계약을 종료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말은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입학사정관제를 그만 두겠다는 의미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실제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지방의 한 대학은 올 초 향후 박근혜정부에서 입학사정관제 지원이 불확실해지자 내년에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고 비정규직 입학사정관들은 전원 계약을 해지하며 무기계약인 입학사정관은 대학 입학홍보요원으로 활용한다는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두기도 하였다.
애초에 제도의 순기능을 살려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사교육비를 억제하려는 의도보다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각 대학 입맛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과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을 도입하면서 경제논리를 도입하여 밀어붙이기식 성과주의의 행정을 펼친 정부의 책임이 클 것이다.
입학사정관제 실시 전 인프라부터 구축했어야
정부는 지난 2007년을 입학사정관제 시범기간으로 정하고 10개 대학을 선정·지원하였다. 그 다음 해엔 40개로 늘렸다. 입학사정관제 실시 대학은 매년 증가하여 올 해엔 정부지원대학과 지원을 받으려고 독자 실시한 대학을 합치면 총 120여개의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양성과 고교의 진로 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사정관제 실시는 뽑는 쪽이나 뽑히는 쪽이나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뽑아야 할지조차 체계가 안 잡힌 상태에서 초보 입학사정관들은 일단 해보자는 식이었다.
다양한 경륜을 갖춘 입학사정관을 확보하여 학생선발에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초기 몇몇 교장 출신 사정관들로 구색을 맞추고 대부분은 대학 행정직원 뽑듯 대학 행정체계에 맞은 사정관들로 채워졌다. 입학사정관들의 자질문제가 끊이지 않은 이유이다.
고교 진로교육도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진로진학상담교사라는 새로운 과목의 교사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들은 진로와 상담을 전공한 전문가라기보다는 기존의 교사들 중에서 전과를 신청한 선생님들이었다. 이들이 일정 시간 연수를 받고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재탄생하였다. 입학사정관들이 주로 기간제 교사나 대학 강사 신분에서 갑작스런 입학사정관으로 재탄생한 과정과 비슷하다.
입학사정관제 시행 6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상태에서 초창기에 입학사정관제를 어떻게 실시했는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많이 당황하셨어요?"가 대학과 고교 현장 여기저기서 발생하였을 것이다.
고교현장에서도 입학사정관제에 신중하게 접근했어야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정책이 바뀌다 보니 고교현장에선 이명박 정권 내내 정권이 바뀌면 입학사정관제는 없어진다라는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 교사들 사이에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일선 고교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준비될 리 없었다. 고교-대학 연계프로그램으로 대학들이 고교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 고교에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정착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특히 진로진학상담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과목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입학사정관제 자체에 무관심했다. 고1때부터 각 교과에 맞는 준비를 해야 되지만 입학사정관제는 봉사활동이나 많이 하고 스펙 좋은 애들이나 준비하는 제도라고 인식하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고1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또 자신이 선택할 전공과 관련된 교과의 집중적인 관리, 다양한 교내 활동 등 담임선생님, 교과 선생님 등 모든 교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야한다. 특히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으로 자기소개서 작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진학 담당 교사 외에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교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기소개서, 추천서는 받지 말아야나는 지난 9월 7일 <오마이뉴스>에
'수시 자기소개서 쓸 때, 이것부터 알아야 한다'란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를 대학 제출 서류에서 금지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이유는 학생부를 충실하게 작성하면 굳이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볼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이런 주장을 했던 이유는 자기소개서와 추천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앞서 '못 믿을 추천서? 교사는 분노한다'라는 기사를 쓴 서부원 시민기자도 인정했듯이 고교 현장에선 교사들의 자기소개서에 대한 첨삭 지도가 일반화 되어있고 첨삭 지도를 넘어선 경우도 허다하다. 사설업체에서 받은 첨삭지도는 문제가 되고 공교육에서 받은 첨삭지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사실 자기소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작성해야하는 것이 공정하다. 일부 고교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학교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소문도 있다.
교사추천서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온정주의가 문제의 원인이다. 내가 2년 간 받아 본 교사추천서의 99%는 칭찬 일색이었다. 칭찬을 넘어 찬양 수준이 경우도 많았다. 서부원 시민기자가 말했듯이 교사들은 제자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추천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나 학생이 요구한 추천서 내용을 그대로 써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추천서의 내용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교사에게 돌아갈 것이 뻔 하기 때문에 추천할 것이 없는 학생도 두루뭉술하게 추천하는 것이다. 대학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추천서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언론, 입학사정관제 흠집 내기 앞장서언론들의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공격은 집요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오점이 이명박 정부의 오점인양 입학사정관제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도하는데 집착했다. 언론들은 입학사정관제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제도, 사교육을 부추기는 제도 등으로 보는 견해들을 집중 부각시켰고 입학사정관제와 관련된 특정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는 전체적인 전후 사정 보다는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보도를 취했다.
'지적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범이 봉사 왕으로 성균관대 입학', '구멍 뚫린 입학사정관제 초비상', '교육양극화만 심화시키는 입학사정관제도' 등…. 인터넷에 '입학사정관제'를 검색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이번 KBS의 '못 믿을 추천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의 원인이나 보완점을 제시하기 보다는 일단 시청자나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이렇게 두들겨 맞다보니 입학사정관제의 상처가 썩고 곪아 터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쪽에선 아예 잘라버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입학사정관제는 이제 겨우 6살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면서 아직 6년밖에 안 된 제도를 없애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불과하다. 더욱이 입학사정관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입학사정관제의 본래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이들이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시행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을 너무 과대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6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입학사정관제를 제대로 하기 위한 많은 준비가 이루어졌다. 입학사정관제의 본 취지를 십분 살리고 있는 대학에서는 입학사정관전담교수라는 직책까지 만들어 전문 입학사정관을 양성하였고,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 등 공교육을 살리는 입학전형을 개발하여 정말 고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을 선발하려하고 있다.
일선 고교현장에서도 차츰 자리잡아가는 진로교육과 더욱 확대된 고교-대학 연계프로그램 그리고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으로 입학사정관제의 순기능을 이야기 하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이다. 정부에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취하여 고교와 대학에서 혼란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당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처럼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면 그동안 준비해 온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
나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일부의 학생들이라도 입시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현재 유일한 입시제도라고 확신한다. 제때 가지치기를 해 주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듯이 입학사정관제 또한 우리 실정에 맞게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지를 치려다 기둥을 자르는 우는 범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혁제 기자는 2011년 5월 부터 2013년 4월까지 2년 간 입학사정관으로 근무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