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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수야, 큰아버님이 사다리에서 떨어지셨어. 지금 김천의료원의 응급실이다." 

지난 11일, 고향의 같은 마을에 살고 계신 5촌 작은어머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추석을 앞두고 호두를 따기 위해 사다리를 받치고 지붕에 올라가시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아들과 직접 통화하고 싶어 하니 지금 즉시 전화 해봐라."

응급실의 일반외과의 담당의사와 바로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첫째는 늑골 3개가 골절되고 두 번째는 왼쪽 쇄골이 골절됐고요. 그리고 흉요추부의 척추뼈에 압박골절이 있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쇄골은 수술을 하는데 어르신은 연세도 많으시고 폐도 다쳐서 수술이 힘들 것 같습니다. 쇄골은 깁스로 치료하면 될 것 같고 척추 쪽은 수술을 하긴 해야 될 것 같은데 현재 폐에 피가 찼어요.

현재는 피의 양이 많지는 않아서 이 정도에서 더 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데 피의 양이 늘어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혈류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데 문제는 저희병원에 흉부외과가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저희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지만 더 악화된다면 결국에는 흉부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셔야 됩니다. 구미나 왜관으로…. 아드님이 서울쪽에 사신다하니 그쪽으로 모셔 가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거든요." 

 시골의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는 추석을 준비할 요량으로 호두를 따기 위에 사다리에 오르셨다가 낙상을 당해 병실에서 추석을 맞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는 추석을 준비할 요량으로 호두를 따기 위에 사다리에 오르셨다가 낙상을 당해 병실에서 추석을 맞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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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응급조치를 하고 대구의 누이들을 동원해 안정을 취하시게 한 다음 다음날 바로 앰뷸런스로 서울의 3차의료기관으로 이송했습니다.

크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병원에서의 종합소견은 통원치료를 해도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안정을 위해 3차의료기관대신 2차의료기관에 입원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안도를 했지만, 아내의 고행이 시작됐습니다.

낮에는 직장 근무를 하고 밤에는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고 잠시 짬이 허락되는 시간에 집에 들러서 치매를 앓고 계신 장모님의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을 시켜드려야 했습니다.  

첫째 딸은 영화 촬영을 시작해서 밤샘 중이고 둘째 딸은 풀타임 근무를 하는 중이며 아들은 출국했습니다. 저는 제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아버지와 장모님에 대한 부담이 아내에게 실리게 된 것입니다.

89세 아버지의 며느리 걱정

 각각의 일들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하루의 일과를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을 살아야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가족 중에 누군가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참으로 난망합니다. 이 응급사태를 감당하기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조금씩 시간을 쪼개고 서로 협력하는 일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요.
 각각의 일들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하루의 일과를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을 살아야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가족 중에 누군가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참으로 난망합니다. 이 응급사태를 감당하기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조금씩 시간을 쪼개고 서로 협력하는 일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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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쉬는 일요일 정오 무렵, 아내가 아버지가 병상에서 식사하는 모습과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온 모습의 사진을 카톡 가족방에 올렸습니다. 그 사진을 본 첫째 딸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잘 드셔? 난 촬영 왔어."

1인 3역의 엄마를 도울 수 없는 처지의 첫째딸이 면피용 질문을 올렸습니다. 딸의 물음에 아내가 단 대답으로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모습이 단지 산책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 먹으라고 자꾸 덜 드셔. 그래서 밖에 6000원짜리 식당 많이 있다고 보여드리려 나간 거야. 누워계셔서 소화도 시킬 겸."

끼니때마다 환자식을 받는 89세 시아버지는 옆에서 밥을 굶고 있는 며느리가 걱정돼 식사의 반을 남겼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온 것은 도회지의 생활에 어두운 평생 농부였던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밥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원 밖에 싼 식당들이 많아서 짬짬이 나와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확인시켜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입원#며느리#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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